‘좋아한다, 싫어한다.’
열일곱의 순진함이 길가에 핀 코스모스를 아무렇게나 뜯어 사랑 점을 본다.
여덟 잎의 꽃잎은 쉽게 사랑을 내어주지 않는다. 다시 손을 뻗어 꽃잎을 매만진다. 일곱 개의 잎을 보자 이루어지지 않는 잘생긴 총각 선생님을 버리고,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그 아이를 떠올린다.
‘좋아한다.’에서 떨궈진 꽃잎처럼 수줍은 미소가 바람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안다, 그 아이를 향한 내 마음이란 걸. 나를 보는 그 아이의 눈빛이 아니라는 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어 진다. 다시 꽃 한 송이를 꺾는다.
‘나를 좋아할까? 싫어하나?’
코스모스는 냉정하다. 그러나 애가 타는 마음은 원하는 답이 나올 때까지 청초하게 흩날리는 코스모스를 잔인하게 죽인다. 기운 빠진 걸음 위로 코스모스 꽃잎이 덮인다.
수많은 코스모스는 마주 보고 서 있는 법이 없다. 땅을 내려 보고 있다 해서, 하늘을 올려본다 해서, 무리에 섞이지 못하는 건 아니다.
수줍게 고개를 숙인 분홍이, 찬란하게 나부끼는 하양이, 요란스럽게 춤을 추는 보라. 모두가 어우러져 예쁜 꽃길을 만든다.
나의 스물도 그러했다.
큰 뜻을 품고 간 큰 도시의 하늘은 높았고, 땅은 넓었다. 꿈은 찬란했으며,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요란스럽게 떠들어 대던 나는, 어느새 고개 숙인 코스모스가 되었다.
바람에 코스모스 꽃잎이 분분히 흩어질 때, 내 사랑은 아픔으로 조각났다.
비속에 코스모스가 꺾일 때, 열정만으로 덤벼든 내 신념도 잔인한 손길에 꺾였다.
점점 힘에 부칠 때, 나의 손에 다시 코스모스가 쥐어졌다.
‘해야 한다, 하지 않아도 된다.’
일곱 잎의 코스모스는 하라고 한다. 어릴 적 그때처럼 원하는 답을 들을 때까지 다시 코스모스를 죽인다.
억울함과 서러움에 운다. 말없이 자신의 몸을 내어준 코스모스의 꽃잎이 눈물이 되어 내 발을 덮는다.
바람에 날리고, 비에 씻겨 사라져 버리는 것만 같다.
그러나 코스모스는 꿋꿋하게 그 자리를 지킨다.
바람에 자신의 몸을 내어 주어도 흔들릴지언정 단단히 박힌 뿌리는 뽑히지 않는다.
잠시 들리는 잠자리와 수다로 외로움을 달래지만, 이내 혼자 남겨짐에 고개를 흔든다.
몸 위로 내리는 비에 눈물을 씻어 보내고, 그 눈물에 파이는 몸이 분신 같은 꽃잎을 떨궈 아파도, 누군가에게 한없이 예쁘게 보였던 지난날을 회상하며 그 자리에 다시 씨를 뿌린다.
‘이루어진다, 이루어지지 않는다.’
여덟 잎의 꽃잎은 여전히 내게 사랑을 주지 않지만, 바람을 같이 맞았고 싸늘한 아스팔트 위에 같이 떨궈졌다.
같이 울어준 그에게, 이제는 답을 찾으려는 것이 아니라 그저 길을 묻는다. 내가 가는 그 길가에 언제나 코스모스가 반겨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