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안녕, 횡단열차
마지막은 언제나 아쉽다. 열차를 탄 후로 시간 감각이 없어서 내려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는 사실도 믿어지지 않는다. 아쉽다는 말을 접어두고 싶지만, 아쉬운 마음을 어쩔 수는 없다. 달리는 열차에서 미친 듯이 셔터를 누르고, 일기를 쓰고. 창 밖 풍경이 영화 같다 생각하며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삶을 언제 또 살아볼 수 있을까.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사람과 웃으면서 친하게 지내고, 음식을 나누어 먹고, 양보하고, 배려하는 하루하루가 내게 또 있을까?
와중에도 나의 의심은 여전해서 그냥 한국 동전을 가지고 싶었던 사람을 괜히 경계하며 겨우 100원을 꺼내어주기만 했다. 여행에서 현지인이랑 이야기 좀 하면서 돈 몇 천 원 주는 게 뭐가 큰 일이라고 그렇게까지 경계했을까. 그녀는 나에게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 하고 웃으며 15 루블을 건네주었다. 괜스레 얼굴이 붉어졌다. 내 경계가 조금은 부끄러워서.
식단표까지 짜가면서 알뜰살뜰 밥을 먹다 식당 칸에도 다녀왔다. 매일 먹던 컵라면, 잠시 정차한 곳에서 샀던 빵들보다 훨씬 맛없고 비쌌다. 거기다 우리가 만난 건 "머리가 아파"라는 한국어만 할 줄 아는 청년과 자꾸만 북한 이야기를 하는 피곤한 아저씨였다.
초초와 조금은 경계했던 주황 청년과 마지막 날 아침에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름은 니키타, 93년 생. 얼마 전 베트남, 필리핀을 다녀왔다며 나에게 자신의 여권과 베트남 돈을 보여주었다. 너무나도 쉽게. 겉으로만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되는데 열차를 타고 몇 번이나 그런 실수를 범했다. 내 실수를 비웃듯 그는 더 친절하게 나에게 다가왔다. 승무원에게 볼펜까지 빌려서 병원, 경찰 번호, 갈만한 식료품점, 관광지를 모두 적어줬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호객 행위하는 현지인도 대신 쫓아주었다.
첫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비하여 짧았던 것 같다. 열차에서 너무나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눈을 뗄 수 없는 황홀한 경치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신식 열차의 청결함도 열차 생활을 더욱 행복하게 만들어주었다. 열차에서 내리고 우리와 스친 많은 인연들과 작별 인사를 했다.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슬프기도 하지만 그래서 추억으로 더 아름답게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