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초년생, 투룸 빌라와 복도식 아파트
선 취업 후 졸업. 학생으로 보내는 마지막 겨울은 여유만만했다. 수능을 마친 고3처럼 득의양양. 보상심리를 채우기 급해서 살 집에 대한 궁리는 미뤘다. 사실 그 문제는 깊게 고민해야 마땅했다. 다섯 살 아래의 동생이 내 바통을 이어받아 서울 유학을 앞두고 있었다. 강북의 학교와 강남의 회사. 그 사이 어딘가에 같이 살 집을 구해야 했다.
덮어놓고 놀기 바쁜 사이 엄마가 나섰다. 경기도 A시의 이모가 사는 동네로 집을 구해 계약까지 마친 것. 남매 둘 다 통학과 출퇴근으로 매일 2시간씩 쓰게 생겼다. 엄마는 남매를 가까운 친척 근처에 둬야 안심이 된다고 여긴 듯하다. 어쩐지 동생의 타향살이에 걱정이 많은 엄마였다.
자취하는 다른 친구의 냉장고를 보고 놀란 적이 있다. 집에서 보내 준 냉동국이며 반찬이 가득했기에. 내 자취에는 의연하던 엄마가 아들의 끼니에 전전긍긍했다. 동생과 함께 사니 냉장고가 친구네처럼 변해갔다. 아수라처럼 딸과 아들을 다르게 대하는 엄마. 나중에 결혼하면 한 명만 낳으리란 결심이 그렇게 굳어갔다.
투룸이라 집은 편해도 역시 고단했다. 출근은 통근버스로, 퇴근은 지하철로 했다. 도어 투 도어로 1시간 반. 책을 가지고 다니면 이틀에 한 권을 다 읽을 수 있는 거리. 야근이나 회식으로 막차를 놓치면 택시를 타야 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서울의 야경은 아름다워도 서글펐다. 금강산도 '수면'후경이다. 피곤에 찌든 직장인에겐 감상도 사치였다.
한밤중의 주택가는 무섭다. 적막하게 가라앉은 밤공기도 무겁다. 귀가가 늦어지면 동생을 부르거나 택시를 타고 집 앞에서 내렸다. 당시 '발바리' 사건으로 전국이 시끄러웠다. '발바리'는 연쇄 성폭행범의 별명이다. 보안이 취약한 다세대 주택에 혼자 사는 여성이 범행 대상이 되었다. 범죄자는 높은 층도 외벽의 가스관을 타고 침입했다.
경기 북부 발바리의 검거 소식을 뉴스로 보았다. 발바리가 살던 동네며 벽을 탔다는 건물이 낯익었다. 다른 동네와 건물이지만 서로 닮은꼴. 들리는 소문에 우리 빌라 옆 골목에서도 피해자가 나왔다고 했다. 남동생과 함께 살았기에 피해 갈 수 있었던 걸까. 엄마의 '아들내미' 덕을 본 건지.
안전한 집에서 살고 싶었다. 빌라 전세금에다 모아둔 돈과 대출을 합쳤다. 영혼을 한껏 끌어 모아 인근의 복도식 아파트로 이사했다. 부엌이 빌라보다 좁았지만 로열층이라 채광도 잘되고 시원했다. 발바리가 스파이더맨이 아닌 이상 벽을 타고 올라올 수 없었다. 단지 안의 길도 해가 지면 무서웠지만 곳곳의 CCTV가 든든했다.
직장을 오래 다니려면 할부로 자동차를 사라는 말이 있다. 꼬박꼬박 할부금을 갚으려면 월급을 벌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내 경우는 집이었다. 전세 대출로 배수진을 치고 회사를 다녔다. 회사 3대 '개'로 악명 높은 팀장 밑에서도 버텼다. 막내인 나의 고충은 같은 층의 모든 직원이 다 알았다. 개 이야기를 꺼낸 직원이 미처 말하지 못한 이야기 - 그중에서도 우리 팀 '개'가 독보적인 원탑임을 곧 알게 되었다.
한 손에 커피를 들고 마천루를 누비는 대도시의 직장인. 그 점에서는 꿈을 이뤘다. 겉보기엔 좋아 보인다. 깔끔한 비즈니스 캐주얼, 목에 걸린 사원증. 전업주부가 된 동창은 페이스북에 이렇게 썼다. "회사 다니는 친구들은 잘 꾸며서 반짝반짝한데 주부인 나는 맨날 티 쪼가리만 입는다"며. 그 글을 읽던 때도 눈이 시렸다. 안경을 쓰면 팀장이 "남자친구가 있다고 너무 편하게 하고 다닌다"며 쏘아댔다. 불편해도 렌즈를 껴야만 했다. '티 쪼가리'를 입고 안경을 썼다면 빛나진 않아도 덜 피곤했을 텐데.
멀리서 보면 희극이요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던가. 화려한 고층빌딩 속 사무실은 스파르타였다. 그 해 개봉한 영화 <300>이 꼭 내 이야기 같았다. 미친 듯이 고함치는 상사 아래서, 신입사원에게 결코 관대하지 않은 사무실에서, 생계에 내몰려 굴욕에 맞서는 병사가 나였다. 전세 아파트를 사수하는 2인 가족의 가장, 갑옷도 없는 맨 몸으로 전장에 나서던 스물다섯의 나. 찬란하게 빛나기는커녕 온통 회색빛이 가득했다. 하긴, 스파르타 전사는 반짝이지 않는다. 영화에서도 화려한 건 크세르크세스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