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러기로 버틴 시간
사람은 집에서 잠만 자지는 않는다. 먹고 씻고 쉬며 생활한다. 그런데 '잠만 자는 방'이라니? 이상한 말이다. 직접 살아보고서야 정확한 표현임을 알았다. 타지에서 온 서울 유학생에겐 몇 가지 옵션이 있다. 하숙, 원룸 자취, 잠만 자는 방, 고시원. 기숙사 입소는 하늘의 별 따기나 다름없으니 제외하고.
'잠만 자는 방'은 대학가 자취촌에 있는 특수한 주거 형태다. 방을 각자 사용하며 주방과 욕실은 공용이다. 주거가 독립되지 않은 점에서 다가구 주택과 다르다. 소유자가 한 명인 다중주택으로 분류된다. 고시원과 기숙사는 주택법 상 주택이 아닌 준주택이다. 법적 기준과 실생활에서의 체감은 차이가 있다. 지난 경험에 비춰보면 고시원보다 방의 개수가 적을 뿐 생활은 비슷했다.
대학 새내기 시절, 어리바리했던 하숙과 자취생활을 접고 2학년때부터 3년을 '잠만 자는 방'에서 지냈다. 오래 산 데는 이유가 있다. 방이 넓었고, 주거비가 저렴했다. 큰 책상과 책장, 화장대, 옷장을 뒀다. 2층이라 큰 창으로 볕도 잘 들었다.
학교로부터는 좀 멀어졌다. 지하철로 몇 정거장 떨어진 아예 다른 동네였다. 같은 대학가였지만 집값이 더 쌌다. BTS의 RM처럼 돈으로 시간을 벌면 좋았겠지만('Still life' 노래 가사) 별 수 없이 시간을 태워 돈을 지켰다. 내 선택은 택시보다 Bus, Train, Subway. 시간은 금이 아니었다. Real Money, 현금이 금이던 시절.
집주인은 60대 할머니였다. 혼자 살았고 가끔 자식들이 찾아왔다. 2층의 방 세 칸은 모두 세를 줬다. 할머니는 종종 나를 불러다 같이 밥을 먹었다. 두세 번 겸상하며 둘러본 주인집은 굉장히 조용했다. 적막함 속에서 독거노인의 외로움이 배어 나왔다. 할머니는 식구가 없었다. 한 지붕 아래 세 명이나 더 살았는데도.
실은 그 집에 사는 모두가 독거인이었다. 드라마에 나오는 정다운 하우스 메이트가 아니었다. 마주치거나 인사 나눌 일이 없는 사이. 서로에게 얼굴 없는 존재였다.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리면 나가지 않았다. 눈치게임하듯 문 닫히는 소리가 들리면 그제야 방문을 나섰다. 먼저 입주한 사람들이 만든 암묵적인 규칙이었다. 따르지 않을 수도, 그럴 이유도 없었다.
방에 한정된 생활은 갑갑했다. 몸은 갇혀 있어도 정신은 자유롭고 싶었다. 책상 앞에 앉아 과제에 파묻히면 한결 나았다. 싸이월드에서 파도를 타고 네이트 온 채팅창을 넘나들었다. 한정된 자원으로나마 취향을 계발하고 싶었다. 음악을 찾아들었다. Clazziquai에서 Jamiroquai로 이어지는 나만의 알고리즘.
마크 로스코와 피카소에도 꽂혔다. 콘서트장과 피카소 미술관에 못 가는 아쉬움을 mp3와 jpg 파일로 달랬다. 진짜 체험은 디지털로 할 수 없다. 실제 경험은 아날로그적이다. 디지털은 값비싼 아날로그의 대안이 되어주었다. 미래의 디지털 기술을 기대하던 2000년대 초반, 내겐 아날로그가 가상이고 디지털이 현실이었다.
잠만 자는 건 너무 삭막하다. 꿈도 꿔야 한다. 특히 청춘은 더욱. "아직 우린 젊기에, 괜찮은 미래가 있기에"(서태지와 아이들, 'Come back home' 노래 가사). 꿈꿨기에 '잠만 자는 방'에서의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 꿈을 꿈으로만 둘 수 없어서 그 방을 떠났다. 이제 시간이 필요해졌다. 돈 없이 시간을 벌기 위해, 룸메이트를 찾았다. 학교 앞 옥탑방 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5화 '옥탑방 똑순이'들로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