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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쓰니 Sep 14. 2023

마른 사람을 위한 항변

NPC는 얼마든지 떠들라 해.

 비만인한테 살쪘다고 하면 실례다. 반대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마른 사람에게 말랐다는 말은 외모 지적이다. 선을 넘는 무례한 발언이지만 모르는 경우가 많다. 미디어가 연예인의 군살 없는 몸을 찬양해서일까. 마른 사람 앞에서는 말랐다는 얘기를 얼마든지 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칭찬인 줄 아는 경우도 있다.


 이 글에서 다루는 '마름'은 적당한 날씬함과 다르다. 보기 좋게 날렵한 몸을 두고 "몸매가 예쁘다"라고 하지 "말랐다"라고 하지 않는다. 고로, 너는 말랐어! 는 칭찬이 아니다. 배려가 부족한 실언이요 심리적 공격이다. 쓸데없이 건강을 염려하며 조언을 건네는 유형도 흔하다. "어디 아픈 거 아냐?" "밥 좀 많이 먹어" 이 또한 짜증을 유발하거나 상처를 준다.




 마른 체형으로 살면서, BMI 측정기에 빙의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그들은 속마음은 뇌를 거치지 않고 출력된다. "너무 말랐다." "왜 이렇게 말랐어." 이 정도면 양반이다. 말랐다는 동사 앞에 '비쩍'이라는 부사를 곁들이면 최악의 문장이 된다.


 어떤 비만인은 살 얘기에 민감하면서도 마른 사람에겐 거침없이 팩폭을 날렸다. 체중 문제에 있어서는 까방권이라도 획득한 듯 군다. 과체중인 아이와 짝이 된 적이 있다. 내 옆에 있으면 뚱뚱함이 부각된다며 싫어했다. 싫은 건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나의 불만은 차마 얘기할 수 없었다. 몸무게에 관한 한 마른 자는 발언권이 없다는 암묵적인 분위기가 있다. 배 부른 소리라는 듯이. 됐고 넌 빠져라는 식이다.


 한 지인은 나를 볼 때마다 살이 빠졌냐고 물었다. 내 몸무게가 주가도 아닌데 등락에 어쩜 그리 관심이 많은지. 그때마다 아니라고 했는데, 만나는 간격이 며칠이건 몇 주건 관계없이 항상 같은 질문을 했다. 기억도 못할 거면서 왜 자꾸 물어보는지.


 마른 사람이 밥을 적게 먹으면 "저러니까 살이 안 찌지"라 하고, 많이 먹으면 "의외로 많이 먹는다"라고 한다. "먹는 게 다 어디로 가냐"는 의학적 호기심을 내비치기도 한다. 주변에 답을 내놓을 전문가도 없는데 질문하는 걸 보면 헛소리를 즐기는 타입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안다. 아픈 데도 없고, 살 뺀 적도 없다. 말랐으면 그래서 뭐? 어쩌라고! 속으로 몇 번을 외쳤는지 모른다. 물만 먹어도 살찌는 체질이 있듯, 밥 잘 먹고 건강 이상 없는데 마른 유형이 있다. 내 경우는 날 때부터 2.4kg로 저체중이었다. 이건 너무 TMI고, 보통 "원래 체질이에요"하고 넘겼다. 이걸 왜 해명해야 하나. 해명은 정치인한테나 가서 요구해라.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잊지 못하는 사건이 있다. 반 아이 하나가 내 손목을 잡더니 "너무 가늘어서 징그럽다"라고 했다. 다른 애들도 달려들어 손목 둘레를 쟀다. 그 이후로 자아상이 바뀌었다. 저체중을 의식하게 되자 맘에 안 드는 부분이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체육시간이 싫어졌다. 종아리가 얇아 체육복 바지가 헐렁하게 남는 게 부끄러웠다. 다리에 감싸지지 않고 남는 천이 바람에 날려 파닥거리는 장면을 상상했다. 남들에게 그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달리기조차 꺼려졌다. 글로 적고 나니 별 게 다 힘들었구나 싶다. 콤플렉스는 사람을 한없이 작아지게 만든다.


 같은 반에 나와 비슷한 키와 체형을 가진 아이가 있었다. 당시 루즈 삭스가 한창 유행이었다. 신어봤더니 종아리가 양말 고무줄 둘레보다 작아서 아래로 줄줄 흘러내렸다. 일찌감치 포기한 나와 달리 그 친구는 계속 끌어올리면서 신고 다녔다.


 가까워지고 나서 물었다. "있잖아, 난 내가 마른 게 싫어. 넌 어때?" 이어지는 대답이 신선해서 아직도 기억난다. "뭐.. 괜찮아. 마른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어!" 갑자기 음료수 병뚜껑이 뽕! 하고 날아가는 듯했다. 그런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는데. 벽이 무너지고 시야가 트이는 순간이었다.


 마음속에 고정불변의 이상형을 못 박아두고 비교하니 힘들 수밖에. 다른 사람의 시선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았어야 했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도, 그럴 필요도 없는 거였다. 친구의 생각에도 한계는 있다. 타인의 인정을 전제로 한 자신감이니까. 온전한 자기애는 아니지만 깨닫기에 충분했다. 그제야 비로소 스스로를 가둔 감옥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후련한 해방이었다.


 시간이 지나 체지방이 늘었지만 성인이 되어도 여전히 '말랐다무새'를 만났다. 여전히 성가시지만 그뿐이었다. 그러든가 말든가 난 내 몸이 좋으니까. 이제 더 이상 말랐다는 소리에 타격받지 않는다. 소중한 내가 상처 입게 두지 않는다. 게임 NPC의 잡설이다 여기며 신경 쓰지 않는다. 어차피 Non-Player Character 아닌가. 그들은 내 게임에서 플레이를 할 수 없다. 쓸데없는 대사를 백 날 던져 봐라. 내 인생에 영향력 행사, 불가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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