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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쓰니 Aug 15. 2023

핵인싸와의 자취 생활

둘이 살면 집세가 절반, 그러나...

 첫 자취, 첫 룸메. 인싸 선배와 함께 하는 원룸 생활! 시작부터가 남달랐다. 이사하던 날부터 언니의 인간관계 덕을 톡톡히 보았다. 언니는 남녀, 선후배를 불문하고 두루 친했다. 열댓 명쯤 모였을까. 방학 중에도 학과 사람들이 우리의 이사를 돕겠다고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서 주었다.


 학교 근처 주거지는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하숙집에서 새 자취집까지 도보로 20분은 족히 걸렸다. 언덕에 있던 S동에서 내려와 번화가를 가로질러 다시 언덕을 올라가는 여정. 한 여름의 무더위를 헤치고 내 살림살이를 날라 준 그들이 정말 고마웠다. 트럭을 빌리기엔 짐이 적고, 손으로 들고 가기엔 많고. 학교에서 쓰던 리어카라도 한 대 구해 올 걸. 그땐 왜 그렇게 미련했는지. 시간과 체력은 넘치던 20대라 가능한 일이었다.




 자취집은 방앗간 건물 2층이었다. 현관을 들어서면 작은 주방이 있고, 문을 열면 나오는 방 한 칸. 화장실은 방 안에 딸려 있는 구조였다. 방 모양은 사다리꼴로 비뚤비뚤했지만 주방과 방 모두 창이 있어 채광이 좋았다. 마주 보는 건물이 가까이에 없어 문 열고 지내기에도 편했다. 학교와 먼 게 단점이었지만 집은 쾌적했다.


이보다 아랫변이 더 긴 형태였다. 사진은 <선릉역 청년주택> 19㎡ A타입 평면도.


 계약자는 언니. 그녀가 이미 살고 있던 집이었다. 보증금 2천만 원에 월세 25만 원. 보증금을 언니가 냈는데 월세를 정확히 반 반 내기도 뭐 해 내가 20만 원을 부담했다. 지금이라면 대출을 받아서 보증금과 월세를 반씩 낼 생각을 했겠지만 그땐 아니었다. 보증금을 안 냈으니 5만 원 더 내는 걸 합당하게 여겼다. 하숙비보다 무려 18만 원이 굳었고. 다시 생각해 보니 경제관념이 정말 형편없었다. 계약서도 확인하지 않았다. 그저 언니의 말만 믿었을 뿐. 부끄럽지만 그땐 그랬다.


 첫 동거. 나쁘지 않았다. 언니는 외향형이라 약속도 많고 귀가가 늦었다. 집에선 거의 씻고 자기만 했다. 우리가 함께 집밥을 해 먹는 일은 손에 꼽힐 정도였다. 드물지만, 밤에 같이 누워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잠들던 추억도 있었다. 확실히 혼자 하숙할 때보다 나았다.




 그래서 그 집에서 오래오래 살았냐면... 아쉽게도 그렇지 않다. 초기의 허니문이 끝나고 불편한 점이 하나둘씩 생겼다. 대놓고 싸울 만한 사건은 없었다. 다만 서운함이 쌓여만 갔다. 미리 얘기도 없이 친구들을 데려와 방을 가득 차지하고 놀거나, 싱크대엔 치약과 칫솔을, 책상 위엔 화장품을 늘어놓은 채 나가기. 따져보면 시시콜콜하다. 누군가와 함께 산다면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입장 바꿔 생각하면 언니도 불편한 게 있을 테고.


 그 해 가을, 언니에게 남자친구가 생겼다. 상대는 나이 많은 직장인. 보통은 나이가 비슷한 남학생을 사귀는데 직장인 남자 친구와의 교제는 처음 보는 케이스였다. 언니의 남친은 나와 공통분모가 전혀 없는 완전한 타인이었다. 문제는 언니가 낯선 그 사람을 자꾸 집 안으로 들이면서 시작됐다. 사전에 양해를 구하고 방에 들어와 얘기를 나누는 것까진 괜찮았다.


 그러던 어느 밤, 늦게 들어온 언니가 내게 말했다. "미안한데 남자친구 좀 주방에서 재우면 안 될까? 날이 밝는대로 내보낼게" 거절하면 도리어 내가 미안해지는 상황. 똑 부러지게 거절할 용기가 없던 나는 마지못해 그 부탁?을 들어주었다.


 집도 괜찮고 정 붙이고 살아보려 했는데 이런 식이면 곤란했다. 서로 안 맞는걸 억지로 참고 살 순 없었다. 하숙집에서 속옷을 도난당한 악몽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의지와 관계없이 내 공간이 침범당한다는 생각. 나만의 공간이 다시 절실해졌다.


 결국 다음 학기는 다른 집에서 보내게 된다. 그 집으로 이사를 오던 여름날처럼 그날도 직접 짐을 날랐다. 이번엔 언니와 나 단 둘이서. 떠들썩하게 시작한 자취의 마지막은 차분했다. 날이 찼다. 새 집 대문 앞에서 언니와 인사하고 헤어졌다. 학년도 전공도 생활 반경도 서로 다른 우리는 그 뒤로 마주치는 일이 거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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