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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쓰니 Aug 15. 2023

프로이사러에게 집이란?

집우집주. 집은 나의 우주다.

 반지하 셋방에서 태어났다. 열 살이 되던 해에 드디어 '우리 집'이 생겼다. 그전까지 이사를 자주 다녔다. 마치 유랑민처럼. 같은 서울 안에서 동네나 집이 바뀌었다. 내가 기억하는 세 번째 집에서 동생이 태어났다. 큰 변화도 있었다. 서울에서 지방 소도시로 대이동을 하고 할머니 댁에서 대가족 생활도 해봤다.


 두 번째 격변은 스무 살에 맞이했다. 인서울 대학에 입학해 홀로 상경한 것. 12년 만의 서울살이가 시작됐다. 하숙과 자취를 하며 거의 모든 주거형태를 경험했다. 원룸뿐 아니라 '잠만 자는 방'까지. 더러는 혼자 살았고 룸메이트와 함께인 시기도 있었다.


  20대의 끝자락에 결혼한 뒤에도 거주지를 옮기는 일은 계속되었다. '집값 폭락론'을 믿고 전세로 버텼다. 자의 혹은 타의로 2년마다 이사했다. 집값이 한창 치솟던 2018년, 서울 아파트를 매입했다. 기혼자로 맞은 다섯 번째 집, 결혼 8년째였다. 부모님보다 2년 빨랐다.




 집은 무엇일까? 사전적 정의는 '추위, 더위, 비바람 따위를 막고 그 속에 들어가 살기 위해 지은 건물, '가정을 이루고 생활하는 집안'이다. '잠만 자는 방'에 살면서 이건 집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전에 따르면 집이 맞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냉난방이 되는 데다 불편하게나마 생활을 영위할 수 있으니까. 다만 주거의 질은 별개다.


 '잠만 자는 방'은 물가 상승으로 하숙이 사라진 자리에 생겨난 대학가 주거 밀집 지역의 특수한 주거 환경이다. 하숙은 식사와 세탁 서비스를 제공한다. 하숙 - 서비스 = 잠만 자는 방이다. 주방과 화장실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점에서 고시원과 같다. 쪽방과는 한 끗 차이다. 쪽방은 냉난방을 안 하니 집의 조건에 미달이다. 즉, '잠만 자는 방'은 집이라 부를 수 있는 최소 요구 조건을 가까스로 만족시키는 주거 형태다.


 한자로는 어떨까. 집을 나타내는 한자는 우와 주 두 가지다. 우()는 동서남북 네 방향과 위아래 표현할 수 있는 모든 방향을 가리키는 공간적인 단어. 주(宙)는 집이란 의미 외 시간, 하늘을 뜻한다. 공간적 개념으로만 인식했던 집에 시간의 의미가 숨어 있는 게 놀랍다.


 그래서일까. 전에 살았던 주거지를 떠올리면 그곳에서 보낸 시간도 기억에서 딸려 나온다. 공간은 시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가 보다. 모든 집은 내가 살아온 시간을 담고 있다. 과거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면, 지난 시간 거쳐온 집은 나를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다. 구질구질한 기억이건 빛나던 추억이건 간에 말이다. 내 세계관의 한 축, 집은 나의 우주다. 내 이야기를 쓴다면 첫 번째 주제는 집이어야 했다.




 집만큼 계층을 여실히 드러내는 자산도 없다. 30대 이후에 더 뼈저리게 느낀 부분이다. 초면에 어디에 사느냐는 질문이 실례인 이유가 거기에 있다. 거주지는 가치관도 반영한다. 직주근접지를 택한 사람과 외곽의 넓고 쾌적한 집에 사는 사람은 인생관이 다르다.


 서울 아파트가 있지만 경기도 신도시에 사는 친구 A가 있다. A의 서울집엔 세입자가 산다. 부동산과 재테크에 관심이 많던 A는 집값 폭등 전에 갭투자를 했다. 그는 왕복 2시간이 넘는 출퇴근 시간도 기꺼이 감수한다. 비싼 집에 세를 놓지 않은 채 깔고 사는 건 A에게 낭비다. 다른 친구 B는 이사 다니는 데 지쳤다. 회사 가까이에 사는 게 좋다며 회사에서 버스로 20분 거리에 있는 소형 아파트를 매입했다. C는 아파트가 오래되었다고 한다. 지은 지 4년이 지난 점이 아쉽다. 반면 D는 구축 아파트에 살아도 주변 인프라가 만족스러우니 신축에 미련이 없다.




 40년을 살며 이사를 스무 번도 넘게 다녔다. 이사를 많이 다니는 데는 사연이 있다. 집이 소중하지 않아서 살던 집을 바꾸는 게 아니다. 오히려 주거지의 소중함을 알기에 생활 패턴에 맞춰 옮기는 것이다.


 사회 초년생 때는 경제적인 이유가 가장 컸다. 가치관을 따지며 집을 고르는 건 사치였고, 무엇보다 월세를 부담할 수 있느냐가 중요했다. 청년층의 주거 빈곤 문제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다. 앞서 소개했듯 별의별 주거 형태를 거치며 자본주의의 어둠을 보았기 때문이다. 한 푼도 손해보지 않으려 억지를 부리던 수전노 같은 집주인도 많이 만났다.


 세상물정 모르던 스무 살 청년이 집을 잘못 구해서 생긴 일, 부족한 예산으로 신혼집을 구하며 느낀 점, 내 집 마련 성공기까지 생생한 경험을 풀어보려 한다. 내 실패담이 누군가에게 타산지석이 될 수 있을까. 어쩌면 무거울지 모르지만 비슷한 경험을 하신 분이라면 공감하실 수도 있겠다. 부푼 꿈을 안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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