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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쓰니 Aug 17. 2023

옥탑방 똑순이들

취준생과 고시생, 동고동락하다.

 자취 생활의 전성기는 대학 4학년 때였다. 피카소가 우울한 청색 시대를 지나 장미 시대를 맞이했듯, 내게도 봄날이 왔다! 하숙과 선배와의 동거 이후 학교에서 몇 정거장 거리를 두고 살았다. 졸업반을 앞두고 취업 준비에 올인하려면 통학 시간을 줄여야 했다. 마침 룸메이트를 구하던 대학 동기를 만나 다시 학교 앞으로 옮겼다.


 동기는 매사에 똑 부러졌다.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내 빅 데이터가 같이 살 수 있다고 판단했고, 그 생각은 맞았다. 중학생 때부터 기숙사 생활을 해 온 그녀는 자취 만렙이었다. 집안일을 야무지게 하는 데다 아침을 거르지 않았고, 제철과일도 잘 챙겨 먹었다. 집에 오면 가라앉던 나와 달리 활기찬 템포를 유지했다.


 활달한 사람이 좋았다. 햇빛에 광합성을 하는 식물처럼 곁에 머무르면 그 기운이 내게도 전해질 거라고, 그렇게 여겼다. 함께 지내며 물드는 것. 그 경험을 두 번째이자 마지막 룸메와 했다.




 그 옥탑방은 번화가의 곱창집 건물에 있었다. 탑층에서 샌드위치 패널로 연장한 구조. 한 층은 건물주가 썼고 나머지는 모두 원룸이었다. 주인 할아버지는 매월 납입일이 되면 직접 찾아와 알렸다. 정말 성가셨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날짜를 지키지 않는 세입자가 있었다고. 신뢰가 쌓이자 '자네들은 신용이 확실하다'며 추켜세웠다. 그렇게 우리는 타칭 '똑순이'가 되었다.


 드라마에 옥탑방이 나오면 꼭 바비큐 파티를 하던데. 그 흔한 클리셰도 현실에선 이뤄지지 못했다. 여유 공간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 옥상엔 방이 하나 더 있었다. 옆 방 사람이 출입하려면 우리 베란다 앞을 지나쳐야 했다. 정말 이상한 구조인데 주인에겐 경제적으로 합리적이었을 것이다.


 공간은 돈이 된다. 잉여 공간을 방치하는 건 곧 낭비다. 주인은 옥상의 남은 자리를 화분으로 채우며 빈 틈 없이 알뜰하게 활용했다. 꽃이 가득한  그곳에 낭만이 꽃필 틈은 없었다. 어떤 낭만은 값이 비싸다.


그런다고 질 순 없었다! 똑순이들은 제 몫의 낭만을 스스로 찾았다. 비가 오는 날이면 친구를 초대해 부추해물전을 부쳤다. 참가비는 막걸리와 설거지. 빗소리를 들으며 먹고 마시는 술자리는 나름 운치 있었다. 낭만이 별 건가. 젊음과 시간은 낭만의 좋은 재료다.


비 오는 날엔 역시 파전에 막걸리

 

 그뿐인가. 우리는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김태리 못지않게 잘해 먹고살았다. 나는 근처 시장에서 방울토마토나 딸기를 샀고 똑순이는 자몽을 한 상자씩 주문했다. 자취 경력 5년 차였지만 과일을 따로 사 먹어 보기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단호박 수프도 똑순이 어깨너머로 배웠다. 찐 단호박을 우유와 함께 믹서기로 간 다음 냄비에 끓이면 고소한 냄새가 집 안에 가득했다. 그런데 믹서기를 쓰다니? 만렙 자취생의 주방 살림은 경이로웠다. 그녀는 사과청도 곧잘 담갔다. 3분 카레와 참치, 김치, 계란, 김. 이 다섯 가지로만 집밥을 해결하던 나는 입이 떡 벌어졌다. 다채로운 식생활, 정돈된 주변 환경, 자신을 정성스럽게 돌보는 삶의 태도. 친구는 말없이도 참 많은 걸 가르쳐 주었다.


 취업 준비생과 고시생. 심리적 압박감과 피로가 쌓여갔다. 동고동락하는 사이에만 보이는 게 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서 왔네" "스트레스 많이 받았어? 안 하던 잠꼬대를 다 하고" 별 말 아닌데도 내 힘겨움을 누군가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었다. 고향의 부모님보다 룸메이트가 더 가깝게 느껴진 시절이다.


 글을 쓰며 이제야 돌아본다. 친구가 속상해서 몸져누웠을 때 난 뭘 해줬지. 어쭙잖은 위로를 건네면  속상할까 봐 그저 곁에서 지켜보기만 했다. 그 시절을 회상하면 친구는 꼭 이렇게 운을 뗀다. "그래! 그때 우리 둘 다 찌들어서.. 예민했고.. 진짜 힘들었잖아!" 프로예민러라 미안할 뿐이다.



 

옥탑방 생활을 얘기할 때 빼놓지 않는 에피소드가 있다. 딸기와 옆집 민폐남매, 속옷 분실 사건.

낭창하게 드러누워 숨만 쉬던 주말 오후. 똑순이가 뜬금없이 딸기 타령을 했다. "갑자기 웬 딸기?" "저기 화분에 열린 딸기, 되게 탐스럽다." 열린 창 너머, 잎 사이로 딸기가 보였다. 어쩜 딱 한 송이가 적당한 크기와 빛깔로 먹기 좋게 열려 있었다. 몰래 따 먹을까 말까 하다가 양심을 지켜낸 기억. 잘 익은 딸기를 보면 그때 생각이 난다.


누웠을 때야 보이던, 새빨간 딸기 한 송이

 

옆집 사람은 남동생과 같이 살았다. 그는 아침 7시마다 알람처럼 화장실에서 기침하며 가래침을 뱉었다. 벽체가 샌드위치 패널이라 방음이 안 됐다. 정확한 시간에 매일 산책하던 칸트처럼 '쿨럭쿨럭 캭 퉤!' 소리에 눈을 뜨면 어김없이 7시였다. 옆집 칸트 덕분에 늦잠 잘 일은 없었다.


 동생이 기침하는 칸트라면 누나는 자린고비 직장인이었다. 옥탑방은 여름에 덥고 겨울엔 춥다. 주인은 전기세는 각 방마다, 난방비는 옆집과 절반씩 부담시켰는데 그게 화근이었다. 보일러 스위치가 바깥에 있었는데 옆집 여자는 새벽에 출근하면서 전원을 끄고 나갔다. 늦게 일어나는 우리는 아침마다 추위에 떨며 일어나야 했다. 취약한 방음과 요금 구조 때문에 이웃에게 악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집이 더 좋았다면 생기지 않았을 문제다.


 속옷 도난 사건은 번째로 겪는 일이었다. 하숙할 때 속옷을 한 번 도난당한 적 있다. 1탄은 장르가 호러였고 2탄은 미스터리다. 어느 날 갑자기 내 속옷 하나가 안 보였다. 친구는 열심히 추리했다. '옆집과 세탁기를 같이 쓰고 있으니 세탁기에 남겨진 걸 옆집이 모르고 가져갔나 보다.' 그런데 말입니다!  추리엔 의문점이 있다. 그 속옷은 색감이 아주 화려했다. 착각하기엔 너무 눈에 띈다. 또 실수라 한들 남의 물건인데 다시 돌려줘야 하지 않을까. 옆집에 물어보려다 귀찮아서 관뒀다. 그렇게 미제로 남았다.




 다사다난한 일 년을 보내고 졸업과 동시에 옥탑방을 떠났다. 똑순이는 학교 근처에 남았고 나는 경기도 A시로 갔다. 같이 살면 사이가 틀어진다는 말은 우리에게 해당되지 않았다. 동거 전보다 더 친해진 우리는 똑순이가 새로 이사한 집을 아지트 삼아 20대 후반까지 추억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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