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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신 Sep 03. 2024

요즘 뭐 하냐고 묻거든,

저 잘 살고 있는데요_

새 학기가 시작되는 시기가 되면 괜히 내 마음도 함께 들썩인다. 그도 그럴 것이 학교에서 객원상담사로 일했던 시간이 길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학기 중에는 일했고, 학생들이 방학을 하면 나도 같이 방학을 했다. 곧이어 여간 방학을 하는 아이를 챙기느라 방학이라고 해서 혼자 쉴 수 있는 시간은 별로 없었고, 방학 중엔 일을 하지 않으니 당연히 수입도 없었지만 방학 중인 아이를 혼자 두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다. 아이가 개학을 하기 일주일 전부터 나는 다시 출근을 시작했다. 적게는 주 1일부터 많게는 주 4일을 일했다. 그렇게 일했던 습관이 아직 내 몸에 베여서 그런지 학기 초만 되면 내 마음도 함께 일렁이나 보다.


짬짬이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보고 있었다. 사실 상반기에는 일을 하고 싶은 의욕이 도저히 생기지가 않았다. 그래서 그렇게 적극적으로 알아보진 않았다. 내가 사는 곳은 지방에다 외곽이라 일을 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은 편이다. 운전을 못 해서 버스로 출퇴근을 해야 하는 입장이라 자리가 난다 해도 출퇴근 시간을 고려해 보면 내가 일할 수 있는 곳은 더욱더 한정적이다. 일하던 학교에서 더 이상 객원상담사를 쓰지 않고 연구원을 뽑겠다는 말에 억지로 용기를 쥐어짜 내 연구원으로 지원을 하게 된 것도 사실 그 이유가 가장 컸다. '출퇴근이 용이해서'


어렵게 일을 그만두고 나오며 결심한 첫 번째는 '이제 이 학교와의 연은 어떤 방식으로든 끝'이라는 것, 두 번째는 '앞으로 대학교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게 될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는 거였다. 상담이 주가 아닌 사업이 주가 되는 그 일을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았다. 내게 맞지 않는 일임을 다시 한번 경험을 통해 깨달았기에, 나는 올해 상반기에 집과 그리 멀지 않은 다른 학교의 연구원 채용공고를 접했을 때에도 지원하지 않았다.

그러나 방학이 끝나고 아이가 개학을 할 때가 되자 다시 내 마음도 괜히 심란해졌다. 집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일자리가 났고 지원하면 어쩌면 채용될 수도 있다. 사람이 어떻게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 수 있느냐고, 적당히 타협하며 그렇게 살아가는 거라고, 나는 다시 내 마음을 설득했다. 그러나 이전처럼 일단 해보고 아니면 그만두면 된다는 마음으로 가볍게 시도해 볼 순 없다고, 어떤 일을 하는 자리인지를 이제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나는 다시 한번 내 마음을 다잡았다.   


나는 적당히 현실과 타협하기보다는 좀 더 견디며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신중하게 고민하고 결정하는 타입이다. 알 수 없는 미래보다는 현재의 내 마음에게 묻고 또 물었다. 취업과는 무관한 학과를 택했고, 졸업 전에 전공을 조금이나마 살릴 수 있는 곳에 취업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왔으나 합격해 놓고 포기했다. 당시 주변 사람들은 모두 그 기회를 잡으라고 했지만, 나는 잡지 않았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 아니라서 포기했다기보다 사실 그동안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던 분야의 새로운 일을 하게 될 것이 두려웠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한편으론 모르긴 몰라도 나의 진로를 그렇게 갑자기 결정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때는 나조차도 그 이유를 납득시키지 못해 답답했지만, 하고 싶지 않다는 내 마음만은 분명했다. 그 일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가운데, 한 가지 확신할 수 있었던 건 나중에 후회하게 되더라도 그 누구 탓도 할 필요 없이 내가 책임을 지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 이후 전공과는 무관한 분야로 파트타임을 하다 조금씩 경력을 쌓아갔고 결국에는 아예 그 분야로 취업을 했다. 사실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자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너무 늦지 않게 찾은 셈이었다. 나는 비로소 20대 후반에 청소년상담사가 되고 싶어 대학원에 진학했다. 나의 20대는 젊음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아름다웠고 활짝 열린 수많은 가능성들로 반짝반짝 빛났지만, 돈이 없어 포기해야 하는 것들도 많았고 책임과 의무와 많은 선택지 앞에서 늘 무거워했기에 가장 어두운 시기이기도 했다.


늘 고민거리를 머리에 싸매고 다니던 내게 나의 절친한 친구는 말했다. "다들 자기가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지는 않아. 나 역시 내가 이 일을 하면서 살게 될 줄 몰랐거든. 내게 일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일 뿐이야. 돈을 벌어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면 되니까." 친구의 말이 맞았다. 많은 이들이 그렇게 살아가는 것 같았으니까. 그러나 나는 그렇게 살 수 없었고, 사람마다 삶의 방식이나 가치관이 다르다는 것을 그때는 잘 몰랐기에 나는 왜 그렇게 살지 못하는지 스스로를 책망했다. 당장 먹고사는 것이 급하지 않으니까 하고 싶은 일 타령이나 하고 있는 거라고, 배부른 소리를 하고 있는 거라고 스스로 비난했다.


최근 오랜만에 연락한 지인은 작년까지 일한 내게 그러면 올해 뭐 하고 지냈냐고, 그러면 그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았냐고 놀란 듯이 물었다. 순간 '놀랄 일인가?' 하는 되물음이 내 마음에 일었다. 아마 다른 이들의 눈에는 내가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으니 남들이 어떻게 보든 상관없다. 그러나 그가 그저 가볍게 무심코 던진 그 말에 순간 내가 당황했던 건, 내 안에도 나를 그렇게 보는 시선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에게 보이는 삶, 나는 이렇게 잘 살고 있음을 증명하는 삶을 살고 있지 않으므로 그런 의미에서 나는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내게 무엇이든 일단 해보라고 조언하면서 요즘 자신이 하고 있는 일들에 대해 전하며 고충을 토로했다. 나는 그가 왜 일을 하는지, 그 일을 통해 어떤 재미와 보람을 느끼는지가 궁금했다. 나보다 바쁘게 무언가를 하며 사는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나보다 자기 삶에 더 만족하며 살고 있을까?


직장인들은 깨어있는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일을 하며 보낸다. 그리고 살아있는 동안 상당량의 시간을 일을 하느라 쓴다. 한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 사람의 생이자 목숨이다.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쏟아해야 하는 내 일이 이왕이면 내게 좀 더 의미 있고 나를 성장시켜 줄 수 있으며 재미있기를 바란다. 그래야 나 스스로 잘 살고 있다고 느껴질 것 같다. 그게 가장 중요하다. 내가 잘 살고 있다고 스스로 느끼는 것. 어쩌면 배부른 소리가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내게 주어진 시간을 어디에 쓸 것인지 까다롭게 선택하는 만큼 배부르지 않게 분수에 맞게 살고 있다.

나 자신만큼 삶을 사랑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하는 어떤 선택이든 나만큼 무겁게 하는 이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지금의 이 시간들을 그 누구보다 잘 살아가고 있다. 나의 내면은 그 누구보다 바쁘므로 늘 그렇듯이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님을, 그 누구보다 나 자신이 기억하기를 바란다. 다 똑같은 모습으로 살지 않아도 된다. 이렇게 사는 이도 있고 저렇게 사는 이도 있다. 이 시간 역시 내겐 소중한 삶이므로, 나는 이렇게 고집하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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