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바라보듯 삶도 멀리 떨어져서 바라보는 연습이 필요해,
부모님의 잦은 다툼, 그리고 특히 엄마가 일으키는 소란들 모두 어쩌면 그만큼 에너지가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어쩌면 두 분의 갈등과 다툼이 지금의 그들을 살아가게 하는 삶의 원동력일지도 모른다. 나는 생각만 해도 지치고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 누군가에겐 그러한 사람들 간의 갈등이나 크고 작은 문제를 일으키고 해결하는 과정 자체가 어쩌면 무료하고 허무한 삶을 사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또 그러한 갈등이나 문제를 일으키는 동안만큼은 자기 앞에 주어진 진짜 삶의 과제나 고통들을 직면하지 않아도 된다.
엄마는 자신이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회피할 수 있다. 그리고 가족들과의 크고 작은 갈등을 일으킬 만큼의 에너지가 아직 남아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이기도 하다. 병과 싸우는데 온 힘을 다 쓰고 있다면(말 그대로 심각하게 아프다면) 누군가와 싸울 힘이 남아있을 수가 없다. 그래, 엄마는 날마다 아프다 죽겠다 하시지만 아직 괜찮은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은 편안하게 바라봐진다.
지적장애가 있는 자식이 있는 외숙모는 결혼 후 심각한 우울증을 앓았다. 종교를 비롯해 가치관이나 양가 집안 분위기 모두 맞는 것이 하나도 없었던 외삼촌과 중매로 결혼 후 깊은 우울감에 빠졌다고 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날마다 간절하게 했을 때, 그런 외숙모를 살게 한 것은 지적장애가 있는 자식에 대한 부모로서의 책임감이었다. 장애가 있는 자식보다 하루는 더 살아야 한다는 바람으로 그렇게 하루하루 주어진 삶을 이어갔다. 늘 장애가 있는 자식이 삶의 고통이자 숙제인 순간이 많았으나, 어쩌면 외숙모를 지금까지 죽지 않고 살아가게 한 삶의 원동력일지도 모른다. 얼마 전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긴 사촌동생과 정성을 다해 자식을 살린 외숙모를 만나고 나서 그런 생각을 했다. 외숙모는 자식 때문에 살고 싶지 않은 순간들이 많았겠지만, 어쩌면 그런 자식 때문에 지금까지도 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어쩌면 지금 당장 몹시 걱정스럽고 불행이라고 여기는 일들이 그리 최악은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게 다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 일들을 어떻게 바라보느냐는 나의 몫이고 나의 선택이므로 무슨 일이든 너무 가슴 아파하지 말자고 다짐해 본다. 문득 그러면 나를 지금 이 순간 살게 하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그 답을 얻으려면 좀 더 내 안을 들여다봐야 할 것 같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적어도 나 자신이 삶의 이유가 되었으면 한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내 뜻대로 통제하려 들거나 혹은 누군가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애쓰는 등의 나 자신 또는 타인에게 고통을 줌으로써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삶은 아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