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선 흥미로워 보이지만 가까이 가고 싶지는 않은 곳, 이집트
그래도 다합 가는 버스는 시와 때보다 사람도 없고 좌석도 조금이나마 넓어서 나쁘지 않게 잘 수 있었다. 다합과 샴엘셰이크를 제외한 시나이반도가 분쟁지역이라 짐검사를 여러 번 꼼꼼하게 하기로 유명하지만 운이 좋은 건지 새벽이라 군인들도 피곤해서 그런 건지 대충 넘어가는 분위기였다. 아침 일찍 다합에 도착해 숙소에 짐을 맡기고 체크인 전까지 시내를 구경했다. 바닷가 쪽으로 가니 맑은 홍해와 그 뒤 수평선 위로 희미하게 펼쳐진 돌산이 보였다. 처음에는 각도 때문에 시나이 반도 북쪽이 보이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아카바만 반대편 사우디아라비아라고 한다. 25km가 넘는 거리인데 그렇게 잘 보일 줄은 몰랐다.
확실히 다른 도시보다 사람이 적고 경적소리와 매연이 없는 부분은 정말 좋았다. 그러나 한적함과 아름다운 바다에도 불구하고 다합의 첫인상은 실망스러웠다. 관광지로 개발된 당시부터 계획이 부족했던 탓이겠지만 카페나 식당들이 해변을 점거하고 본인들 가게 데크를 만들어 놓은 탓에 해변을 따라 걸을 수 없는 부분이 가장 컸다. 녹지가 있는 공원이나 나일강 수변으로 걸을 수 있는 길의 부재와 비슷하게 공공재에 대한 접근성을 고려하지 않고 이루어진 도시계획에 대한 아쉬움이 계속 이어진다.
숙소는 너무나 만족스러웠다. 원래는 다합에서 다들 하듯이 한인 게스트하우스에 머무를까도 생각했지만 일정 확정도 너무 늦었고 가격도 우리 생각에는 너무 비쌌다. 대신 우리는 라스트딜로 주방과 거실이 딸린 독채를 1인 1박에 7달러 정도 하는 가격에 빌렸다. 체크인을 마치고 어쨌든 야간버스를 탄 탓에 피로가 몰려왔지만 시내에 다시 장을 보러 나갔다. 동행이 환전을 해야 해서 기념품점 앞을 돌아다녔지만 이 동네 사람들은 확실히 다른 곳들에 비해 호객을 거의 하지 않았다. 암환전은 우리가 먼저 해달라고 하면 지고 들어갈 수밖에 없어서 나중에 다시 시도해 보기로 하고 저녁재료만 사서 집으로 들어왔다. 슈퍼에 파스타소스가 없길래 토마토페이스트와 냉동 모짜렐라를 사서 스파게티를 만들었는데 둘 다 뒷맛이 너무 텁텁해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어 포기하고 폐기처분했다. 식재료마저 쉽지 않은 나라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다합을 여행자들의 무덤이라고 일컫는 데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게스트하우스에서 한국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다이빙자격증 취득을 하며 바다를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숙소도 따로 구하고 애초부터 시력을 비롯한 여러 가지 사정상 다이빙도 계획하지 않았다. 그저 바닷가에서 요양할 생각이었는데 해변마저 상점들에 막혀있으니 처음부터 다합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한 것 같다. 그래도 내가 다합에서 한 가지 하고 싶었던 건 시나이산 등반이었다. 워낙 등산을 좋아하기도 하고 예전에 한 여행영상에서 봤던 일출의 모습이 꽤나 아름답게 느껴졌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둘째 날에는 쉬엄쉬엄 돌아다니면서 투어 예약을 하기로 했다.
인터넷으로 1년 전쯤 정보들을 봤을 때는 대부분 사람들이 400-500파운드에 진행했지만 투어사를 돌아다녀보니 700-1000파운드를 불렀다. 그러던 중 호스텔에 물어보니 380에 진행할 수 있다는 답이 왔다. 원래 호스텔을 통한 투어가 알려진 가격보다 싼 경우도 더러 있기 때문에 밖에서는 그냥 점심이나 먹고 예약확정을 위해 숙소로 복귀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호스텔 직원이 영어가 미숙해서 산속에 있는 클럽에 가서 노는 투어를 문의한 것으로 이해했던 것이었다. 제대로 설명해 주니 가격은 800파운드라고 해서 결국 다시 시내로 나가야 했다. 이제는 투어사들 돌아다니면서 최저가 찾는 데는 도가 텄다. 다합 시내에 있는 거의 모든 투어사를 다 돌았고 말도 안 되게 40달러를 부르는 곳도 있었지만 결국 550파운드라는 최저가를 찾았다. 어딜 가든 시나이산과 수도원 입장료가 5달러, 혹은 10달러라고 하는데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거짓말일 가능성이 크다. 10달러를 암환전하면 500파운드 가까이 받을 수 있는데 입장료가 그 정도면 가이드, 교통편을 포함한 투어가격 550파운드가 절대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일단 킵 해놓고 안면을 튼 다른 삐끼들에게 500파운드 안되면 저쪽이랑 하겠다고 하니 다들 깔끔하게 포기했다. 한 삐끼는 본인 에이전시 사장을 부르더니 도대체 걔네들은 어떻게 돈을 버는 거냐며 심각하게 회의를 했다. 진짜인지 연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정도면 확실히 가격이 더 내려가지 않을 것 같아서 예약을 확정했다. 구글지도에 찍히지도 않고 리뷰도 없는 에이전시라 살짝 걱정은 되었지만 주인이 자기 알라를 믿는 사람이라며 안심하라고 했고 실제로 투어는 문제없이 진행되었다.
저녁에는 다른 브랜드의 토마토 페이스트를 사서 파스타를 재시도했다. 이 소스도 맛이 없는 건 마찬가지고 단맛이 필요해서 딸기잼을 넣었더니 그럭저럭 먹을만해졌다. 그리고 다음날 동네 슈퍼에 제대로 된 파스타 소스가 있는 걸 발견했지만 이미 집에서 요리는 해 먹지 않기로 다짐한 다음이었다.
3일 차에는 다합 전경이 보이는 돌산에 올랐다.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시나이산 대신 약식으로 가는 스팟으로 꽤나 알려져 있는데 우리가 갔을 때는 일출 시간이 아닌 한낮이라 아무도 없었다. 전망은 그냥 바다가 보였고 딱히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이날 오후에는 다합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바다에 들어갔다. 날씨가 흐려서 살짝 추웠고 바닥이 모래가 아닌 산호라 굉장히 날카로웠다. 수심도 너무 얕아서 수영하기에는 매우 부적절했다. 결국 20분도 되기 전에 나왔고 발바닥에는 베인 상처가 났다.
다음날에는 야간등산이 예정되어 있어서 오전, 오후 모두 휴식을 취했다. 밥을 먹으러 나갈 때마다 새삼 느끼는 점은 다합에는 정말 외국인들이 많다는 것이다. 간판에도 아랍어를 거의 찾아볼 수 없고 히잡을 쓴 사람들도 거의 없다. 시나이산 등반은 야간산행 후 일출을 보는 일정이다. 밤 10시부터 픽업을 시작해 자정쯤 산 아래에 도착했다. 도로에 차가 별로 없어서 운전기사가 엄청나게 과속을 하는 탓에 빨리 도착했지만 쪽잠을 자기는 힘들었다. 졸린 상태에서 산을 오르기 시작했고 새삼 밝은 달빛에 감탄했다. 등산로에 따로 조명이 없는데 달빛만으로도 충분할 정도였다. 나무가 없는 돌산 뒤로 보이는 많은 별도 아름다웠다. 확실히 밤중이고 산이라 바람이 불면 많이 추웠지만 걸으면 괜찮았다. 단지 중간중간 너무 많이 쉬는 탓에 몸에 열이 식는 점이 힘들었다. 오랜만에 군대에서 야간근무 서러 뒷산에 올라가는 느낌이 들었고 솔직히 많이 피곤한 상태라 상세한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새벽 3시쯤 정상 아래 매점에 도착해서 휴식을 취했다. 처음에는 바깥보다 훨씬 따뜻했지만 결국 매점 안도 너무 추워져서 챙겨 온 침낭 안에 들어가서 쪽잠을 잤다. 일출은 7시쯤 예정이었지만 가이드가 5시 정도에 미리 좋은 자리를 맡아야 한다며 올려 보냈다. 정상은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서 침낭을 걸치고 있는데도 얼어 죽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미 추울 거라는 건 알고 있어서 내복, 패딩, 바람막이까지 다 껴입었는데도 부족했다. 6시 정도가 되니 서서히 밝은 빛이 올라오기 시작했고 일출은 정말 아름다웠다. 9시 30분까지 차량으로 돌아갔어야 했는데 너무 추워서 저절로 빨리 대충 사진만 찍고 내려오게 된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곳이라던데 너무 추워서 정신착란을 일으킨 게 아닌지 심각하게 의심된다. 하산길은 등산로가 너무 돌길이라 발바닥이 아파서 올라가는 것보다 훨씬 힘들었다. 이래서 좋은 트래킹화가 있어야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도 운전기사의 엄청난 과속 덕에 정오가 되기 전에 다시 다합에 도착했고 다음날 카이로행 버스를 타기 전까지는 계속 부족한 잠을 보충하며 휴식을 취했다.
한국인들과 교류 없이 스쿠버도 하지 않는 다합은 확실히 올 가치가 없다. 솔직히 위에 적은 이유 탓에 요양하기에도 그렇게 좋은 곳은 아니다. 전부터 이집트 여행에 대한 열정이 많이 떨어져 있는 상태에서 다합에서의 생활은 무료하고 의미 없게까지 느껴졌다. 원래같이 혼자 다니는 여행이었으면 계획을 변경해서 빨리 다른 나라로 이동했겠지만 동행의 한국 귀국날짜에 맞춰야 하는 점도 있었다. 이제 카이로에서 이틀만 더 있으면 이집트가 드디어 끝이라는 생각에 후련하기도 했지만 이틀 동안 뭘 할지 막막했다.
결국 유적지에 질려 안 가겠다던 이집트 국립박물관에 들어갔다. 정말 듣던 대로 총체적 관리부실의 현장이었다. 수집품들이 건물의 규모가 감당하지 못할 양이라 복도에 던져져 있다시피 한 유물들이 상당히 많았고 오디오 가이드도 없었다. 그 와중에 어쨌거나 카이로 관광의 필수코스라 사람들은 관람에 방해가 될 정도로 많았다. 전체적으로는 20세기 초에 멈춘 박물관 같은 느낌이었다. 나무틀로 만들어 놓은 장식장들이나 가끔가다 한 번씩 있는 빛바랜 종이에 타자기로 쓰인 듯 보이는 설명도 100여 년 전 수집가들이 해 놓았을 법한 모습이었고 오래된 유물들이 보관된 장 안에도 습도나 온도조절기는 전무했다. 결정적으로 최근 박물관들의 트렌드와는 다르게 정말 예전 방식으로 스토리텔링 없이 유물들을 그저 진열만 해 놓은 느낌이었다. 솔직히 유물들보다 박물관 자체의 예스러움에 더 눈길이 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전체적으로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박물관이었다. 일단 유물의 양에 압도된다. 어쨌든 대부분이 무덤에서 발굴된 것들인데 도굴꾼들에게 다 털리고 남은 유물들이 이 정도라는 점이 압권이다. 특히 부장품으로 같이 묻혀 있던 저승으로 가는 배, 도축장 모형 등이 신기했다. 몇몇 유물의 상태는 몇천 년 전 것들이라고는 상상이 되지 않는 깔끔한 모습이라 모작이 아닌지까지 의심됐다. 아마도 도굴 때문이겠지만 금붙이들은 많이 없었는데 그래도 2층 별도 전시관에 전시되어 있던 투탕카멘의 마스크나 금칠이 되어 있던 관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왠지 모르겠지만 사진촬영을 꽤나 엄격하게 통제하는 부분은 아쉬웠다.
오후에는 올드카이로에서 저번에 제대로 보지 못한 공중교회, 그리스 정교회 성당인 성조지 교회와 정교회 신자들의 공동묘지를 둘러봤다. 유럽에서 기독교 문화재들은 질려서 피하는 편이지만 이슬람 국가에서 둘러보니 새로운 느낌이었다. 특히 차가 못 들어오는 구역이라 조용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마지막 날에는 먼저 이슬라믹 카이로에 위치한 알아즈하르 모스크를 구경했다. 모스크까지 걸어가려다 보니 전자상가, 가구상가가 들어선 거리를 지나가는데 문득 도대체 이 나라에서 시각장애인들은 어떻게 돌아다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해진 교통신호나 운전자들이 보행자들을 배려하는 모습이 아예 없어서 아마 본인이 거주하는 블록을 도움 없이 벗어나는 것조차 불가능할 것이다. 이런 약자에 대한 배려 또한 개발도상국들이 마주한 숙제일 것이다. 또 하나 이집트를 돌아다니다 보면 특이한 점은 여성에게 있어서 굉장히 보수적일 것이라는 이미지와는 달리 굉장히 노골적인 속옷을 길거리에서 대놓고 판다는 점이다. 심지어는 히잡을 쓴 마네킹에 신체부위가 노출되는 속옷을 입혀놓은 걸 본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확실히 길거리에 생산활동을 하는 여성이 현저히 적게 보이는 것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모스크에 도착하니 마침 기도시간과 겹쳐 구석에서 기다리다 모스크를 둘러보는데 앞에서 설교가 진행 중임에도 직접적인 참여자들을 제외하고는 뒤에서 누구는 핸드폰 보고, 누구는 누워 자고, 누구는 개별적으로 코란을 탐독하고, 누구는 모여서 기도하는 자유로운 분위기가 굉장히 긍정적으로 다가왔다. 한 가지 눈에 띄는 점은 동남아 쪽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다는 점이다. 구글지도를 보면 근처에 인도네시아 식당들이 무더기로 있는 걸 봐서 이쪽 지역에 뭔가 있는 것 같지만 자세히는 알아보지 못했다.
나시고랭이 매워서 꽤나 고생을 한 점심식사 후에는 카이로 시내에 거의 유일한 녹지 공원이라고 할 수 있는 알아즈하르 공원에 들어왔다. 역시 사전조사는 하지 않아서 그냥 동네공원인 줄 알았는데 입장료도 받는 나름 규모가 크고 관리가 잘 되어있는 시설이었다. 바로 앞에 고속도로가 있지만 게이트를 통과한 순간 수목과 분수, 호수가 보이는 평화롭고 조용한 분위기였다. 모래먼지가 날리는 카이로와 어울리지 않는 푸릇푸릇한 곳이라 웨딩촬영을 하는 커플도 한둘이 아니었다. 전망대에서는 카이로 시내 전경과 멀리 희미하게 피라미드까지도 보였다. 생각보다 너무 좋아서 저녁시간까지 이곳에서 경치를 감상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또다시 인프라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리는 기본적이라고 느끼는 이런 시설을 이용할 때마저 이집트 사람들은 입장료를 내야 한다는 사실이 슬프게 느껴졌다. 1000원이 조금 넘는 돈이지만 어쨌든 극빈층의 사람들에게는 부담이 되는 금액이기에 그들은 이런 기본적인 복지마저 누리지 못한다는 점이 안타까웠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만약 이 공원이 입장료를 받지 않고 개방된다면 절대 지금처럼 깨끗한 상태로 유지될 수 없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지나친 일반화는 삼가야겠지만 이번 이집트 여행은 확실히 개인의 도덕관념과 ‘국민성’이라는 다소 추상적인 개념이 사회 전반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해 준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이집트는 도덕적 혁신 없이는 경제발전도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공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고속도로와 그 뒤에 뜬 보름달을 보며 이집트 여행을 되돌아본다. 확실히 지금까지 여행지 중 가장 별로였던 곳은 맞기에 이유를 찾아보자면 물론 여행자를 지치게 하는 사람들이 가장 크지만 다른 한 가지가 더 떠오른다. 이집트, 특히 카이로는 후에 돌아봤을 때 미화될만한 설레거나 벅찬 순간이 없었다. 메데진에서는 위험하다는 말에 위축되었지만 너무 여유 있고 낭만적이었던 라우렐레스의 밤거리가, 페루에서는 체력적으로 힘들었지만 확실한 성취감을 주었던 고산 트래킹이, 그리고 멕시코시티에서는 먹을 때마다 감동적이었던 노점 타코가 그런 역할을 하지만 이집트에서는 ‘힘들었다’라는 감정을 상쇄시켜 줄 만한 순간이 개인적으로는 없었다.
동행을 공항으로 먼저 보내고 호스텔로 걸어가려다 우연히 같은 방향으로 가는 미니버스를 잡아탔다. 역시 바로 교통지옥이 펼쳐진다. 무조건 껴들려는 자들과 절대 비켜주지 않으려는 자들이 동시에 울려대는 경적소리의 향연이 펼쳐진다. 고가도로 밑으로는 상점, 노점, 차량, 행인들이 혼란스러움의 끝을 보여준다. 멀리선 흥미로워 보이지만 가까이 가고 싶지는 않은 곳, 이곳이 바로 이집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