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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상현 Jan 13. 2024

[세계여행] D+189 스리랑카 서남부 해안도시

그 어느 곳보다 좋은 스리랑카의 첫인상

처음 여행을 떠날 때에는 이집트가 시간과 자금을 고려했을 때 아마도 마지막 여행지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독일에서 돈이 조금 생기고 학교 결과를 기다리면서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기도 애매한 시기라 생각보다 여행이 길어지고 있다. 딱히 여기는 꼭 가보고 싶다 하는 곳이 떠오르지 않았고 지금 추운 나라들을 피하려니 이집트에서 다음 여행지를 선택하는 데 조금 어려움을 겪었지만 결국은 스리랑카로 향하게 되었다.


카이로 공항에서 남은 현금 107파운드를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맥도날드 빅맥 단품이 정확하게 같은 가격이라 배는 별로 고프지 않았지만 햄버거를 사 먹었다. 현금을 동전 하나 없이 다 터니 고단했던 이집트 여행의 마지막은 그래도 깔끔하게 느껴졌다. 항공은 자지라 항공의 쿠웨이트 경유 노선으로 예약해고 중동 항공사라 그런지 활주로에서는 기내 방송으로 기도문을 외우는 듯했다. 이륙 직전 타이밍에 낮은 남자 목소리로 테러단체들이 거사를 치르기 전 외치는 멘트로 더 잘 알려진 '알라후 아크바르'를 들으니 조금 소름이 돋았다. 쿠웨이트에서는 버거킹에서 저녁을 먹었고 카이로와 이곳 공항의 행버거가 모두 가격은 비쌌지만 꽤나 맛이 있어서 놀랐다.


콜롬보 공항에 내리자마자 고온다습함이 느껴졌다. 수수료까지 50달러가 조금 넘었던 비자 구매와 입국신고서 작성을 미리 온라인으로 완료하니 질문 하나 없이 간단하게 입국심사를 마무리하고 환전과 유심구매까지 마쳤다. 새벽에 도착해서 공항에서 기다리며 찾아보니 출국장에서 시내로 가는 버스가 있다고 나왔지만 실제로 나가보니 툭툭 기사들이건 경찰이건 모두 15분 정도 걸어 나가서 탑승해야 하는 현지 버스만 알려주었다. 이집트에서 인류애를 잃은 터라 진짜인지 아닌지 의심부터 하게 되었다. 결국 새벽어둠을 뚫고 현지 버스 탑승에 성공했고 앞사람들이 내는 요금을 보니 300루피인 듯해서 500짜리 지폐를 내밀었다. 기다리는데 잔돈을 주지 않아서 툭툭 치니 그제야 200루피를 거슬러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요금도 여행하면서 만난 다른 사람들은 200루피씩을 줬다고 한다. 100 파운드면 겨우 400원 차이이긴 하지만 개발도상국에서는 내가 바가지를 쓴 건지 아닌지 알 수가 없는 점이 늘 여행자의 기분을 개운하지 못하게 만든다.



보통 한국 여행자들은 콜롬보에서 담불라와 산간 마을들을 거쳐 해안도시로 마무리하는 시계방향 동선으로 스리랑카 여행을 계획하지만 나는 반대로 서남부 해안도시에서 여행을 시작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고 그냥 바닷가가 더 끌렸다. 콜롬보는 출국 때 어차피 돌아와야 하니 도시는 마지막에 보기로 하고 바로 기차를 이용해 외곽의 데히왈라로 향했다. 콜롬보 기차역부터 지금까지의 여행지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고산과 사막의 황량함이 대신 정글의 푸릇푸릇함과 나무냄새가 느껴졌고 꽤나 규모가 큰 역임에도 시간표나 플랫폼 번호가 스크린이 아닌 나무에 페인트로 적혀 있는 모습이 경험한 적은 없지만 40-50년 전 한국의 모습과 꽤나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차는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사람이 꽉 차지 않고 여유가 있었지만 역시 양쪽 문은 열린 채로 달렸다. 달리는 기차에 올라타려 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현지인에게도 쉬운 난의도는 아니었는지 한 명은 뒤늦게 올라타려다 발을 헛디뎌 크게 다칠 뻔했다. 낡은 기차가 오래된 철로를 느리게 달리며 규칙적으로 내는 칙칙폭폭 소리와 해안을 따라 달리는 기차 밖으로 내다보는 아침 바다 풍경이 합쳐져 연출하는 감성이 왜 많은 사람들이 기차여행에 매력을 느끼는지를 이해시켜 주었다. 그 와중에 대부분의 구간에서는 기찻길 바로 옆에 판자촌이 형성되어 있었다. 이렇게 시끄러운 기차가 하루에도 몇십 차례나 지나갈 텐데도 이곳에서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삶이 안타까웠다. 


감성에 취해있어도 지도는 놓치지 않고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내가 내릴 정류장 전에 역을 그냥 지나치길래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고 결국 기차는 데히왈라 역과 그다음 역까지도 정차하지 않고 통과했다. 아무래도 급행열차를 잘못 잡아 탄 듯했다. 스크린 없이 플랫폼에 안내방송이 현지 언어로만 나오니 알아차릴 도리가 없었다. 기차가 서자마자 내려서 반대방향 열차를 타려는데 첫 번째 열차는 우리가 흔히 아는 인도 기차처럼 꽉 찬 상태로 계단에까지 매달려가는 사람들이 가득한 상태라 그냥 보냈다. 다행히 다음에 온 열차에 탑승해 드디어 데히왈라 역에 내릴 수 있었다. 한화로 600원도 되지 않는 돈으로 빵 두 개를 사들고 예약해 둔 숙소로 향했다. 새벽 비행기를 탄 탓에 숙소에 도착한 시간이 아침 9시도 되지 않았다. 12시부터 체크인이 가능하다길래 앉아서 인터넷이나 보며 쉬려고 했지만 너무 피곤해 결국 로비에 있는 소파에 기대어 졸고 있었더니 얼리체크인을 시켜줬다. 


씻고 잠을 보충한 뒤 점심거리를 찾아 거리를 걷다 현지인이 가장 많았던 식당으로 들어갔다. 인도식 볶음밥인 비르야니를 파는 곳이었는데 음식을 받고 수저를 주지 않는 모습을 보고 여기가 인도 문화권이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주위를 둘러보니 역시 다들 손으로 음식을 먹고 있었다. 나도 손을 씻고 음식을 먹으려는데 익숙하지 않다 보니 위생이 문제가 아니라 단순히 먹는 속도가 나지 않았다. 식당 주인도 옆에서 보다 답답했는지 숟가락을 줄지 물었고 냉큼 받아서 편안하게 밥을 먹었다. 첫날은 간단하게 산책과 필요 물품 구매를 하고 저녁으로 로티 반죽을 볶은 음식인 코투를 먹으며 마무리했다. 고온다습한 날씨와 한적한 골목들에서 묘하게 제주도 느낌이 나는 것도 같았고 물가도 워낙 저렴해 스리랑카의 첫인상은 기대를 훨씬 뛰어넘었다. 일단 이집트와 다르게 길에 쓰레기가 냄새가 진동할 정도로 쌓여 있지 않고 신호등이 있으면서 흙먼지가 날리지 않는 것만 해도 너무나 만족스러웠다.



데히왈라에는 특별히 볼 것은 없어서 둘째 날에는 계획 없이 바닷가를 따라 산책을 했다. 기찻길을 뛰어넘고 판자촌까지 지나 들어선 데히왈라 해변은 곳곳에 쓰레기가 있어 깨끗한 느낌은 아니었지만 낚시를 하거나 배를 수리하는 현지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힌두교와 불교가 주가 되는 국가답게 바닷가에 세워진 부처와 힌두교 신들을 모시는 작은 사당도 있었다. 남쪽으로 한참을 내려가다 보면 마운트 라비니아 해변이 나오는데 오히려 이곳이 정비가 잘 되어있는 느낌이라 관광객들도 조금이나마 있고 현지인들도 물놀이를 즐기는 곳인 것 같았다. 해변을 걷는 도중 현장학습을 나온 학생들이 말을 걸어 잠깐 이야기하고 나중에 돌아오는 길에 다시 마주쳤을 때 자기들이 싸 온 점심을 같이 먹어보지 않겠냐고 물었지만 살짝 귀찮아서 밥을 먹었다는 핑계로 도망갔다. 



해변에 앉아서 쉬다 배도 고프지 않고 시간도 일러서 계속 남쪽으로 내려갔다. 해변으로 내려가는 길에는 호텔이 자리하고 있어 막혀있는 듯했고 안쪽 마을로도 들어가 보고 싶어서 시골길을 따라 걸었다. 날씨가 서서히 개이고 좁은 골목 군데군데 자리한 불상들이나 낮은 집들, 푸릇푸릇한 열대지방의 초목이 너무나 평화로운 분위기를 만들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처음 보는 여행객에게 웃으며 인사를 해 주었고 이상하게 일본 시골마을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막상 도착한 웨디칸다쪽 해변은 다소 더러워서 거의 바로 떠났지만 데히왈라의 골목들은 확실히 탐험해 볼 가치가 있다. 그와 별개로 스리랑카는 확실히 덥다. 섬의 습함까지 겹쳐져서 땀이 계속 나고 중간중간 마트에 들러 사 먹는 음료수가 전혀 아깝게 느껴지지 않는다. 마트는 에어컨이 나와서 나가기가 싫을 정도고 외국인에게는 부르는 게 값인 이집트를 경험한 후 제품에 가격이 표시되어 있는 것도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큰길 쪽으로 나오니 그래도 나름 콜롬보라고 파파이스, 피자헛, 맥도날드, 버거킹 등 프랜차이즈가 다 모여있다. 타코벨이 보여 3년 전 런던 이후로 오랜만에 도전해 보았지만 역시 더럽게 맛이 없어서 앞으로는 다시는 사 먹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오후가 되니 장대비가 쏟아져 버거킹 앞에서 한 시간여 동안 비를 피하고 숙소로 천천히 돌아왔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 유럽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사람이 지나가면 멈춰주는 차들이 많아 감동적이다. 더위만 견딜 수 있으면 여행 난이도는 정말 낮은 곳인 것 같다. 특히 영어 의사소통에 아무런 문제가 없고 간판도 현지어 대신 대부분 영어표기를 사용해 여행자에게는 이보다 편할 수가 없다. 이틀밖에 되지 않았지만 왜 한국인들이 많이 오지 않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다음 일정은 거북이 해변으로 유명한 히카두와로 정했다. 아침 일찍부터 해안기차를 타고 옮긴 숙소에서 러시아 여행자와 잠깐 이야기를 했는데 한 달가량 스리랑카를 여행하며 이곳 사람들이 오히려 인도보다도 관광객들을 등쳐먹는 데 혈안이 되어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내가 그동안 들은 것들이나 받은 첫인상과는 많이 다른 이야기라 의아했다. 원래 수영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찝찝한 바다수영은 더욱더 싫어하지만 이 더위에서 살아남기 위해 수영복을 입고 해변으로 나갔다. 히카두와 해변에 사람은 생각보다 꽤 있었지만 백사장과 바다는 모두 깨끗했다. 이곳은 오히려 현지인들보다 백인들이 훨씬 많이 보였고 특히 대부분이 러시아 사람들인 듯했다. 바다에서 간단하게 수영을 하고 해변에 누워 졸다가 먹구름이 몰려오는 걸 보고 미리 찾아둔 식당으로 향했고 자리를 잡고 앉은 순간 비가 퍼붓기 시작했다. 만나는 현지인들마다 분명 원래 스리랑카는 12월부터 건기인데 이상하게 올해는 건기가 늦게 온다고 했다. 실제로 스리랑카 입국 후 2주 동안 단 하루도 오후에 비가 쏟아지지 않은 날이 없었다. 현지인 아저씨 한 분이 바나나 잎을 우산 삼아 식당 앞을 지나갔는데 옆자리 러시아 남자가 바나나 잎을 달라고 하며 부부가 같이 한참 사진을 찍어댔다. 아저씨가 집에 빨리 가야 된다고 몇 번을 말을 하는데 알겠다고 하며 세월아 네월아 둘이 번갈아가며 사진을 찍는 모습이 그렇게 진상일 수가 없었다. 저런 무례한 관광객들을 가끔 볼 때마다 분노를 느낀다. 나는 기본적으로 여행자는 특히 개발도상국에서 현지인의 생활에 불편을 끼치는 건 물론 가능하면 개입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저 러시아 사람이 미국에서 같은 상황이었어도 저렇게 무례하게 행동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비가 조금 약해져서 거북이 해변 쪽으로 걸었다. 가기 전부터 구글지도에서 사람들의 몰상식한 행동들을 성토하는 리뷰들을 많이 읽었지만 실제로 관광객들이 거북이와 사진을 찍으려고 손을 대고 심지어는 들어 올리려고까지 하는 모습이 계속 보였다. 바로 옆에 거북이를 만지지 말라는 표지판이 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사람들이 먹이를 주다 보니 거북이들이 계속 머무른다지만 넓은 바다에 해초가 많을 텐데 왜 굳이 사람들도 많은 여기로 계속 돌아오는지 의문이었다. 생각보다 바다거북의 크기가 커서 신기했지만 파도가 세서 여기저기 휩쓸려 다니는 모습과 개념 없는 관광객들의 행동까지 더해져서 그다지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거북이 해변을 지나쳐 맨발로 나리가마 해변까지 몇 킬로미터를 더 걸어 내려갔다. 이쪽은 파도가 많이 거칠어서 수영하는 사람들 대신 서퍼들이 가득했다. 해변에서 지켜보니 재미있어 보여서 배워볼까도 생각했지만 어차피 현금도 너무 적게 들고 나왔고 웰리가마에서 배울 계획이었다. 히카두와로 돌아오는 길에는 해변에서 나와 현지인들이 사는 정글 안쪽 길로 돌아왔는데 데히왈라에서와 마찬가지로 길이 너무 좋았다. 번잡한 해변과는 달리 조용하고 온갖 새소리와 벌레소리가 가득했다. 다만 스리랑카 어디에서든 모기와 벌레는 포기하는 게 정신건강에도 좋다. 기피제를 뿌려도 잠시동안만 괜찮고 어차피 모기밥이 되는 건 막을 수 없다.




솔직히 스리랑카 서남부 해안은 이동거리도 짧고 마을의 규모도 작아서 1박씩 하고 이동해도 일정에 무리가 없다. 히카두와의 느낌은 너무 좋았지만 1박 이상 머무르려니 할 게 도저히 떠오르지 않아 버스를 타고 갈레로 이동했다. 스리랑카 로컬 버스들은 기사가 마음대로 내부에 스티커를 붙여서 꾸밀 수 있는 것 같았다. 이번 버스는 한국 국기와 각종 관광명소들로 장식이 되어 있었는데 뜬금없이 입구 쪽 상단에는 욱일기가 그려져 있었다. 당연히 의도한 것은 아닐 거라 버스기사를 탓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상당히 기괴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오전 중에 도착해 숙소에 빠르게 체크인을 하고 비 오기 전에 갈레의 거의 유일한 볼거리인 포트로 이동했다. 현지인들 사이에서는 골이라는 명칭을 훨씬 많이 들었던 갈레는 포루투갈, 네덜란드, 영국의 식민지배를 차례대로 거쳐갔는데 그 과정에서 건설된 요새가 바로 골포트이다. 상당히 덥긴 해도 성벽을 따라 바다를 보며 한두 시간 동안 걸어 다니기 참 좋은 곳이었다. 남미에서도 식민지 시절의 모습을 간직했다는 도시들을 많이 다녔지만 이곳이 가장 유럽풍의 요새와 건물이 주는 식민지의 느낌이 짙었다. 시내 자체는 딱히 볼 건 많이 없었고 슬슬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서 포트를 떠났다. 중간에 목이 말라 스리랑카의 맥주 브랜드인 라이온의 진저비어를 사 먹었는데 꽤나 강한 생강차를 탄산으로 만들어 놓은 맛이라 이런 걸 왜 돈 주고 먹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만큼 잔디밭에서 크리켓을 하는 아이들이 많았고 혀를 날름거리며 돌아다니는 도마뱀과 그 뒤를 쫓는 두루미 같은 새도 볼 수 있었다. 익숙한 듯하면서도 늘 새로운 모습을 마주하게 되는 스리랑카다. 


숙소에서 쉬다 저녁을 먹고 집에 들어오는데 오후에 잠깐 얘기를 나눴던 인도, 헝가리 여행자들에게 붙잡혀 얼결에 옆동네 우나와투나 해변으로 향했다. 사실은 이 날이 2023년의 마지막 날이라 혹시 재미있는 게 없나 하고 갔는데 비가 너무 오는 탓에 비교적 조용한 분위기로 넘어갔다. 괜히 해변에서 신발 신고 걸어 다니다 갑자기 들어온 파도에 양말만 잔뜩 젖었다. 이 친구들도 실망했는지 금방 골포트로 돌아왔고 등대 쪽에 12시를 기다리는 현지인들이 꽤나 있었지만 나는 눈치 보다 금방 빠져나왔다. 날짜에 의미부여를 하는 것도, 사람들이랑 상호작용을 하는 것도 너무 귀찮게 느껴졌다. 숙소에서 새해가 넘어가기 전에 잠에 들었고 다음날 새해 첫 일출을 보려던 계획도 구름이 너무 많이 껴서 취소했다.


결국 갈레에서도 1박 만에 체크아웃을 하고 웰라가마로 향했다. 맡겨놓은 빨래는 날씨 탓에 마르지 않았고 미안하다고는 했지만 빨래값은 다 받아갔다. 어쩔 수 없이 눅눅한 상태로 배낭에 넣고 이동했다. 웰리가마는 완만하고 일정한 파도로 서핑 입문자들이 오래 머무르는 도시다. 백사장도 정말 넓고 평평했지만 날씨 탓인지 물은 그다지 깨끗해 보이지는 않았다. 해변을 여유롭게 걷다가 바로 유명한 서핑스쿨에서 서핑강습을 받았다. 육지에서는 잘 되던 자세가 막상 물 위에서는 쉽지 않았다. 뒷발이 먼저 나가야 하는데 자꾸 앞발이 나갔고 보드 가운데가 아닌 왼쪽을 계속 밟았다. 그래도 계속해보니 막판에 꽤 길게 파도를 탈 수 있긴 했다. 재미는 있는데 물이 너무 짜고 둥둥 떠다닐 때 은근 멀미가 많이 났다. 그래도 한 번 더 해보자는 생각에 다음날 아침 강습을 예약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어느 건물 2층에서 누가 한국사람이냐고 우리말로 물었다. 얘기를 해보니 한국에서 14년 동안 일하신 분이라고 했다. 한국에서 일했던 스리랑카 노동자들이 많아서 여행 중에 종종 이렇게 마주치는 일이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 내가 본 외국인들 중 한국말을 가장 잘하는 분이었다.


다음 날 아침 7시부터 서핑을 했고 실력은 거의 리셋되었다가 마지막으로 갈수록 다시 살아났다. 패들링이 생각보다 힘들었고 갈비뼈 쪽에 멍이 들고 무릎도 많이 까져서 재미는 있지만 여기까지만 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안경을 벗으니 시력이 너무 나빠서 즐거움이 감소되는 게 많이 아쉬웠다. 오전부터 온몸운동을 하고 숙소에서 뻗었다가 마을을 그냥 정처 없이 돌아다니는데 어제 만났던 분을 다시 만나 그분 가게에서 주스를 사 마셨다. 알루미늄 공장에서 일을 하셨다고 하는데 들어보니 정말 장시간 고된 노동을 한 것 같았다. 그래도 그 덕에 한 달에 300~400만 원씩 벌어서 지금은 집도 여러 채 짓고 여유 있게 사는 듯했다. 내년에는 일본으로 일하러 갈 생각이라고 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했고 주스값을 계산하려고 하니 받지 않으시겠다 하길래 거의 억지로 드리고 왔다. 


이 정도면 바다는 충분히 봤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음 행선지는 중부 산간도시 엘라로 정했다. 아쉬운 점이 없던 건 아니지만 이집트를 지나와서 그런지 평화로운 이곳 스리랑카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여행 기간을 여유롭게 잡았고 이제 내가 좋아하는 산악 지역으로 올라가는 만큼 앞으로의 여행도 지금처럼만 계속된다면 남미에 비견할만한 최고의 여행지가 될 것 같은 느낌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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