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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이 Jun 16. 2023

글쓰기의 재료

글을 써보고싶다고 생각했다. 좋아! 써보자! 결정했더니 생각이 텅 비어버린다. 별 생각 없이 써 내려갈 때는 잘만 끄적여지던 문장이 작정하고 쓰려니 아무것도 이어나갈 수가 없다. 이유가 궁금해져서 요리조리 고민을 해본다. 본격적인 자세로 글을 쓰려니 꽤 그럴듯하게 쓰고싶어져서 부담이었을까. 시작도 전에 슬럼프라니 말도 안돼. 아무생각 하지말고 그냥 써보기로한다. 그런데 뭐에 대해 써야할지 정하는 단계에서 막혀버린다. 딱히 쓰고싶은 주제가 없다기보다는 남들에게 읽히기에 적당한게 없다는게 문제였다.

지나치게 내밀하거나 어둡거나 불행한 이야기들만 넘쳐났다. 좀 더 희망적이고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글을 쓰고싶은데 그런쪽으로는 너무나 비루한 경험치의 소유자였다. 글쓰기의 재료라는게 나만의 경험에 사색을 녹여내야하는데 그런 반짝이는 기억들의 총량이 빈약하기 짝이 없었다. 살아온 세월의 절대적인 시간이란게 있을텐데 뭐라도 끄집어 낼 수 있지않을까 과거를 회상해본다. 하지만 기억해내려 하면 할 수록 진흙탕의 뻘밭이다. 이게 나였다. 내 안에서 글쓰기의 재료를 찾으려면 깊이 묻어놓은 것들을 퍼올릴 수 밖에 없다. 예민하고 까칠한 그 것들이 통제 불가능하게 날뛰고 말 거라는 불안한 예감이 든다.

뭔가를 꺼내서 보여주려면 나라는 인간의 본질에서 기인할 수 밖에 없다. 가진 재료들을 만지고 다듬어서 내놓을 수 밖에 없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내가 텅 빈 인간은 아니라는 정도일까.

불운하고 불행한 경험들을 잔뜩 쌓아놓고 파묻기도 했다가 다시 꺼내서 되새김질도 했다가 버리지도 정리하지도 못한 채로 잔뜩 끌어안고 있는 나. 도전하고 경험해야할 시절을 방안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흘려보냈다. 생각하고 곱씹으며 내 안에 고여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내가 나인게 싫어서, 견딜 수 없어서 스스로를 비난하고 미워하느라 한 시절을 다 써버렸다. 모든게 늦었다는 불안에 잠길 뿐이었는데 이제야 그렇게 흘려보낸 시간이 아깝고 아쉽다. 나이에 맞는 여러가지를 시도해볼걸. 실패도 성취도 경험도 겪어볼걸. 그랬다면 내 안의 글감이 지금보다는 풍부하지 않았을까. 그러면 지나간 시간을 후회하고 타인의 재능을 시기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한참을 밖에서 원인을 찾아헤매다 결국은 나에게 돌아오길 반복이다. 이미 흘러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으니 경험이 적거나 없거나 내 안에서 찾아낼 수 밖에 없다.

어찌저찌 글을 써낸다고해도 누군가 내 글을 읽고 기분이 상하면 어쩌지. 아픔을 건드려서 참고있던 울음을 터트리면 어쩌지. 위로를 건네고 싶은건데 불쾌감만 안겨주면 어쩌지. 쓰는 나조차 불편하고 힘들 때가 있는데 과연 읽고싶은 사람이 있을까. 수 많은 고민이 스쳐지나갔지만 어쩔 수 없다. 내가 가진 색깔로 칠할 수 밖에 없다. 다른 색을 흉내낸다고 해서 나 자신을 숨길 수는 없다. 누가 보기에나 예쁘고 아름다운 그림이 아니라고 해서 그릴 수 없는건 아니지않나. 개인에게는 각자가 가진 고유의 아름다움이 있다고 믿는다. 조금 괴상해보이고 어두운색 투성이라도 다정한 시선으로 바라보면 꽤 봐줄만 하지않을까. 보다보면 정도 든다지않나.

인정하고나니 내 안에서 글을 찾을 수 있다. 가지지 못한 걸 만들어내기위해 무리하지 않는 대신 조용히 바라보는 법을 터득하고있다. 내가 가진 것들이 못나보이고 부족해보이지만 내 안에 있다. 빛나진 않지만 텅 빈게 아니다. 메아리는 돌아오고 또 울림을 만든다. 가만하게 울림을 느껴본다. 반짝이진 않아도 은은한 온기를 건넬 수 있는 글을 쓰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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