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이 Jun 19. 2023

속이는 일

우리는 속이며 살아간다. 진실된 사람이라는 평을 듣는 사람이라도 평생에   쯤은 거짓된 말과 행동을 한다. 신이 인간의 탈을 쓰고 지구로 내려온게 아니라면 연약한 인간의 성정으로 거짓의 유혹을 이겨내기란 불가능하다.

나에겐 나이를 먹고 경험이 쌓여도 취약한 부분이 있는데 상대방의 거짓말을 파악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아무리 의식을 하고 노력을 해봐도 거짓말을 판별하는 능력이 영 늘지 않는다. 의심 자체를 안하니 판단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눈치가 빠른편이라는 말을 종종 듣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비언어적인 몸짓이나 상황 파악이 빠른편이라고 생각하는데 이상하리만치 말로하는 거짓말에 매번 속아넘어간다.

상대방의 거짓말을 분별없이 믿는 사람으로 세상을 살아가기란 여간 불편한게 아니다. 사기 당하기 십상인데다 이상한 사람을 걸러내기에도 취약하다. 사기를 반복해서 당하다보니 이정도로 발전이 없는 스스로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원인을 찾고 고치고싶었다.

우선 거짓말을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금전적 이익이나 면피의 의도가 있는 상황이라면 어느정도 이해가 되는데 그 외의 경우에는 당최 알 수가 없는거다. 단순히 허세나 자기를 포장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게 도저히 이해가되지 않았다. 처음엔 소소한 거짓말로 시작했겠지만 눈치채지 못하는 나를 상대하면서 거짓말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경우를 꽤 봐왔다. 이런 상황을 피하기위해 사람은 자존심을 위해 거짓말 할 수 있다는걸 외우려고 노력하지만 현실에 적용이 쉽지않다.

‘너는 순진하진 않은데 순수한 거 같아’라는 말을 들었다. 어느정도는 동의하는 바다. 추구하는 편이기도 하다. 가령 동심이나 순수함, 세상을 새로이 바라보는 시야 같은걸 나이가 든다는 이유로 잃고싶지는 않다. 스스로가 순진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순진하고 싶었던 적도 없는데 거짓말에는 멍청하리만치 속아넘어간다. 이처럼 거짓말을 분별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나는 그 누구보다 솔직한 편이라고 자신하며 살아왔다. 거짓말을 혐오하다보니 다른 이들의 것도 구별하지 못하는걸까. 생각해봤지만 그건 아닌거같다. 주변 지인들 중에도 거짓말을 싫어하는 사람은 많지만 다 나같지는 않더라. 글을 써내려가며 곰곰히 생각해보니 짐작가는게 떠오른다.

친엄마는 거짓투성이인 사람이었다. 학력은 물론이고 나이, 생일까지 물어볼 때 마다 바뀌었다. 바람피는 사람을 두고 이중으로 바람을 피기도 했다. 장사를 하면서 이중장부를 썼고 수입을 속였다.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하면서 천연덕스럽기 짝이 없었다. 내 인생 최초의 목표는 친엄마 같은 사람이 되지 않는 거였다.

짐작이 확신으로 번져간다. 나에게 거짓말은 악 그자체였다. 선의의 거짓말조차 곱게 보이지 않는다. 이토록 싫어하지만 곰곰히 고민해보니 나 역시 거짓말쟁이였다. 나는 나를 속인다. 새엄마와 살 때 한참을 시달리다 집에서 나와 지하철을 타면 한숨을 돌렸다. 이어폰 줄을 풀면서 스스로 행복하다고 세뇌했다. 왜냐하면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작은 것에 행복을 느껴야 진정 행복하다는 말 따위를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새엄마가 아무리 괴롭혀도 나는 이어폰을 가졌으니 행복한 사람이라는 말도 안되는 자기 세뇌를 했던거다. 힘들어도 고통스러워도 상황이 끔찍해져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차라리 그 때 힘들다고 인정했으면 병을 얻지는 않았을까. 나를 속인 결과는 끝도 없는 후회와 우울증과 공황장애같은 병이다. 그 누구를 속이는 것보다 최악의 거짓말은 스스로를 속이는 거였나보다. 남을 속이면 벌을 받지만 자기를 속이면 회한이 스스로를 병들게 하는구나.

나를 더 알아가야겠다. 마음을 살피고 보듬어서 나를 돌봐야지. 누구보다 나에게 솔직해지고싶다.

작가의 이전글 공황우울치료기_ 꿈을 꾼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