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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이 Jun 26. 2023

자기가 아는 게 전부인 줄 아는 오만한 사람

아침부터 감정이 가라앉았다

발목부터 끌려내려 가는걸 두 손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다

어쩔 줄 몰라 동동거리다가 아침약을 챙겨 먹는다

시간이 지나니 평정심이 조금 돌아온다

하지만 그뿐,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다시 잠을 청했다

나에게서 도망칠 수 있는 방법은 잠뿐이다

현실의 내가 아닌 꿈 속으로 피신한다

하지만 밤에도 실컷 잤는데 오래 잠들 수 있을 리가 없다

깨어나서 멀뚱히 앉아있다. 감정은 통증처럼 뻐근하게 퍼져나간다.



그만하고 싶어



이 감정을 느끼는걸


나한테서 도망갈 수 없잖아


그래서 괴로워



내가 나라는 게 고통스러워서 가슴속 응어리가 몸부림친다. 누구라도 나를 기절시켜 줬으면 좋겠다. 견딜 수 없을 거 같은 감정이 흐려지지도 않고 버티고 있다. 그걸 느껴내며 속절없이 절망하고 있다.

감정은 통증이랑 비슷한 면이 있다.

아픔이 심하면 이를 깨물고 끙끙 앓듯이 감당할 수 없는 우울감은 어금니를 악물게 한다. 밖에서 보면 미동 없이 누워있지만 속에서는 분주하다.

어떤 기억이 떠올라서 괴로운 게 아니다. 순수한 우울감은 생각을 정리해서 피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차라리 생각을 하자.

상태가 부정적이라 그런가 유쾌하지 않은 기억이 떠올랐다.


‘우울한 거 그거 몸이 편해서 그래요. 바쁘게 살면 우울할 틈이 없어요. 나도 예전에 우울해서 누워만 있던 적 있는데 운동하고 일하니까 다 나았어요. 우울한 거 그거 다 핑계고 게으른 거예요. 정신력으로 이겨 낼 수 있다니까요’


대충 이런 말을 뱉어내던 사람이었는데 하필 오늘 같은 날 생각이 났을까. 몇 마디 항변은 했었다. 정신력으로 기합 한 번 내지르고 이겨낼 거면 그걸 병이라고 하겠냐고. 근데 본인도 우울증이었다는 거다. 병원에서 진단받은 적은 없지만 누워서 몇 개월을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고. 이겨낸 건 축하할 일이지만 그게 타인을 쉽게 비난할 근거가 될 수 있는 걸까.

그 사람은,

자기가 아는 게 세상의 전부인 줄 아는 오만한 사람

무례함을 솔직함이라고 말하는 사람

세상의 기준으로 작은 성공을 거뒀을 뿐이면서 삶의 법칙을 깨달았다고 믿는 사람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만 모든 걸 이뤘다고 우쭐거리는 사람

자신의 방식이 정답인양 가르치는 사람

거만한 사람

공감은 감정의 사치라고 믿는 사람

그런 사람이 하는 말을 기억에 담아두지 말자.

굳이 그런 말은 기억하지 않아도 된다. 혹시 내가 병 뒤에 숨어서 병을 핑계 삼아 게으르게 살진 않는지 정도는 나 혼자서도 끊임없이 경계하고 있다.  

예전에도 그랬듯이 버티다 보면 지나갈 거다. 당장을 절망할 필요 없다. 내일은 언제 그랬냐는 듯 평온한 상태로 깨어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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