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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이 Jul 05. 2023

잘 우는 방법을 배우고 싶어

치료받으러 가면 자주 운다.

딱히 슬픈 내용도 아닌데 쉽게도 눈물이 맺힌다.

울 자리를 마련하는데 비용을 치르는 게 아닐까 생각될 정도다. 내밀한 이야기를 잔뜩 털어놓는 사람이라 그런 걸까. 한 마디 한 마디에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일상에선 눈물이 메마른 사람인데 알고 보면 울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기도 했나 보다.

살다 보니 저절로 능숙하게 되는 건 별로 없더라. 배우고 경험해 보고 어느 정도는 반복해봐야 할 줄 알게 되던데 아마 우는 법도 따로 방법이 있나 보다.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같은 반 남자아이가 말랑한 플라스틱 뚜껑을 날리며 놀고 있었다. 잡동사니를 넣어둔 분유통 뚜껑이었는데 내 눈가에 와서 맞은 거다. 타격감도 거의 없었고 아픔이라고 부를만한 것도 아니었는데 하염없이 눈물이 나서 엉엉하고 울어버렸다. 던지며 놀던 아이는 본인 잘못이라고 생각했는지 곁에 와서 몇 번이나 사과했지만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다른 여자아이가 ‘별로 아프지도 않으면서 적당히 하라’고 하길래 속으로 동의했으나 터져버린 눈물샘은 막을 수가 없었다. 괜찮다고. 너 때문에 우는 거 아니라고 보내려 했지만 남자아이는 선생님께 혼날 것을 걱정했는지 내 눈물이 그칠 때까지 사과를 했다. 그 아이는 내 사정을 알 턱이 없었는데 누군가 나를 달래주려 한다는 사실이 뭐가 그리 위로가 됐는지 참 고맙고 미안했다. 오랜 세월이 지나서도 남아있는 이 기억은 우는 내내 혼란스러웠던 감정 때문이다. 별로 아프지도 않았고 당시 힘들었던 상황과 동떨어져있는 순간에 한 번 터져버린 눈물은 내 힘으로 막을 수가 없었다. 울면서도 속으로는 내가 왜 이러는 건지 알 수가 없어서 몸은 울고 있고 머릿속은 바쁘게 이유를 찾고 있었다. 슬픔은 참는다고 해서 어딘가로 사라지지 않고 틈이 생기면 쏟아져 나왔다.

버림받을까 봐 전전긍긍하던 내 어린 시절에 눈물은 허용되지 않았는데 그 습관이 사라지지 않아서인지 현재까지 잘 울 줄 모르는 사람이 되었다.

갓 스물을 넘겼을 때는 입을 막고 흐느껴 울기도 했는데 새엄마가 그 소리를 질색을 했다. 그래서 벽장에 들어가 숨죽여 울고는 했는데 조금 더 나이가 들고나서는 전혀 울지 않게 됐다.

기억을 아무리 더듬어봐도 내가 울고 있을 때 그 모습을 허용해 주거나 그걸 넘어서 달래준 경우가 떠오르지 않는다. 우는 모습을 보여주면 미움받을까 두려워 꾹꾹 눌러 참아왔다.

비용을 지불하고 치료를 받는 상담시간에는 울거나 화내도 선생님과 나의 관계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안전하게 보장되는 관계에 안심해서 쉬이 울게 되나 보다.

웃고 울고 화내는 감정 표현은 자연스러운 건데 지나치게 억눌러놓으면 언젠가 터져 나오거나 내 안으로 향해서 속을 새카맣게 짓물러놓는다.

잘 웃는 게 중요한 만큼 잘 우는 방법을 알고 싶다. 슬플 때는 울기 위해 노력 비슷한 거라도 해봐야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나가기만을 기다리기엔 견디는 시간이 고통이다. 시간이 곧 삶인데 고통으로 채우기엔 너무 귀하고 아깝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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