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 같은 밤의 시간
디데이는 갑자기 도래했다
병원가기싫음병과 정신과약 안먹어 증후군으로 어떻게든 상담센터에서 해결해 보겠다고 몸부림 중이었다.
나름의 타협안(?)으로 공황장애나 신체적 증상을 좀 더 접해본 임상전공 상담선생님을 정해서 꾸준히 상담을 다니기로 결정한 거였다. 아직 선생님을 못 정하고 시간만 보내고 있었지만..
상담선생님이 설득과 회유(?)를 해주신다거나. 병원치료의 필요성을 강하게 어필해 주시면서 용기를 마구마구 불어넣어 주신다면 병원에도 갈 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은 커지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사실 수술 전 정신과의사 선생님이랑 심리검사해 주신 임상선생님 두 분 다 당연히 전문가고, 병원치료 해야 한다고 말씀해주셨다. 나도 아는데 이거시 무기력증인지 겁을 집어먹은 건지 병원에 갈 용기가 없는 것이다.
상담받으면서 약물치료 없이 임상선생님의 테라피(?) 같은 걸로 해결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대책 없이 현실도피 중이었다.
내 속은 매일같이 시끄러웠지만 겉에서 보는 나의 하루는 특별한 이벤트 없이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살살 달래 가며 그냥저냥 지낼 수 있는 하루하루였다.
내가 처리해야 할 일이 생겼다. 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천천히 알아보고 처리하면 될 일이었다. 예전의 나라면 하루에도 몇 개씩 효율적으로 빠르게 쳐낼 수 있는 종류의 일이었다.
내 생각대로 수월하게 진행되지 않으니까 숨이 막혀오고 압박감이 느껴졌다. 그래서 내팽개치고 핸드폰만 바라보며 현실도피를 했지만 심장은 콩콩 뛰고 있었다.
밤의 시간이 오고 걷잡을 수 없는 불안이 밀려왔다.
내가 예상하지 못한 추가사항을 발견했고 불편한 사람에게 연락을 취해서 서류를 받아내야 하는 상황을 맞닥뜨리니 패닉이 왔다.
안전한 집 거실에 앉아있는데 덤프트럭이 달려와 덮치는(것과 비슷한) 감각이 온몸을 압도한다. 환각이 보이는 건 아니니까 눈앞에 실체가 없다는 건 나도 안다. 문제는 항상 이거였다. 나도 다 안다는 거다. 나를 압도하는 공포감도 질식감도 그 무엇 하나 실체가 없고 그저 내 몸이 느끼는 감각뿐이란 걸 알고 있다.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되뇌고 진정시키지만 한 번 시동 걸린 몸은 멈추지 않는다.
어떻게 이 감각을 잊고 살았을까 신기할 만큼 강렬하고 거지 같은 공황발작 전조증상이 손끝부터 머리칼이 쭈뼛설것처럼 온몸을 훑는다.
이건 내 고집으로 버틸 문제가 아니었다
밤새 집 주변 병원을 찾으며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괜찮다고 아무 일 아니라고 실체도 없고 그저 내 뇌가 고장 나서 있지도 않은 공포를 느끼는 거라고 난 멀쩡히 숨도 쉴 수 있고 목이 졸리지도 않는다고 속으로 끊임없이 끊임없이 말해줬다 눈물은 줄줄 흐르고 온몸이 벌벌 떨리지만 아침까지만 버티면 병원에 가서 약을 먹고 괜찮아질 터였다
내가 미쳐버리는 게 아닌가 따위의 비이성적인 공포감도 강력한 약물로 금세 잠재울 수 있을 만큼 현대의학은 발전해 있다는 걸 반복적으로 상기한다
다 괜찮아질 거라는 걸 분명히 알고 있는데 아무리 시계를 봐도 시간이 안 간다
영영 아침이 오지 않을 거 같은 공포에 미쳐버릴 거 같았다
밤의 시간에 갇혀버린 게 아닐까 따위의 생각이 들자마자 또다시 미쳐버릴 거 같은 두려움이 밀려왔고 미쳐버릴 거 같은 게 아니라 이미 미쳤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이루 말할 수 없이 두렵고 길고 끔찍한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