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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이 Sep 17. 2023

나를 건져내기 위한 글쓰기

꾸준히 글쓰기를 하진 않지만 힘든 시기엔 한 번씩 들여다본다

이전에도 또 그 이전에도 나는 추락했고 다시 올라갔으며 오르락내리락했던 걸 상기하기 위해서다

여기가 지금껏 겪어보지 못했던 가장 어두운 심연 같겠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라는 걸 기억하기 위해서다

마음은 너무나 연약해서 조금만 아파져도 이보다 더한 통증은 없었던 거처럼 매 번이 생경하지만 나는 더 깊은 바닥에서도 기어 올라온 경험이 있다는 사실을 잠시 잊은 것뿐이다

더한 아픔도 겪어냈고 이겨냈으며-무엇으로부터 인지는 모르겠으나- 버텨냈던 경험치가 쌓인 게 현재의 나라는 걸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한다

삶에는 희로애락이 있고 기쁨으로 충만한 하루는 신에 대한 감사와 경외를 표하기에 충분할 만큼 행복을 경험하게 한다. 하지만 삶에 기쁘고 즐거운 일만이 가득하다면 성장의 길도 성숙의 기회도 얻을 수 없다는 걸 안다. 마치 갑각류가 허물을 벗을 때 말랑한 상태가 되는 것처럼 인간의 정신 역시 가장 약해져 있을 때 성장의 가능성도 열린다고 하더라. 백날 이런 이야기를 들어봐야 감흥이 없었는데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가니 대략 어떤 의미인지 정도는 알겠다. 하지만 알더라도 시련이 그리 반갑지 않은 건 어쩔 수 없다.

나의 우울은 현재의 어려움이 트리거가 되어 다시금 수면 위로 끌려 나오는 과거의 사건들이 이유다.

정리하거나 소화하지 못한 채 한편에 쌓아두고 살아가다가 한 번씩 풀어보며 한숨 쉬고 어찌해야 할지 몰라 눈물을 터트려버리는 거다. 잔뜩 어지러진 정신은 그로기상태에 빠져버린다. 그래도 이제는 요령이 생긴 건지 어찌할 줄 몰라 허둥거리는 시간이 짧아졌다. 언젠가 지나갈걸 알기에 고요히 가라앉은 채로 기다린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닥에 웅크리고 있다 보면 어느새 저절로 느리지만, 확실히,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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