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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이 Sep 22. 2023

현재는 관통하는

우선 앉아본다

커피를 잔에 따르고

햇볕을 쬐기 위해 나선 아침산책의 전리품인 샌드위치를 하나 먹는다

샌드위치는 세모 낳게 두 조각으로 잘려져 포장되어 있는데 그중에 하나를 먹고 하나는 노트북 옆에 내려놓았다

아보카도계란 샌드위치라고 해서 좋아하는 것들의 조합이라 구매했는데 새콤한 것이 영 입에 맞지 않는다

입맛에 맞지 않아도 음식을 가리지 않는 편이라 순식간에 한 조각을 다 먹었다

다른 사람들은 무슨 이야기를 풀어놓는 걸까

책을 읽으며 타인의 이야기를 구경해 볼까 한참 고민하다가

내 이야기를 풀어놓기 위해 자리에 앉았다

무슨 이야기를 쓸지는 정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저 손이 가는 대로 써보련다

우리가 익히 아는 유명한 작가들은 써지든 써지지 않든 글감이 샘솟든 아니든 규칙적으로 앉아서 글을 쓴다고 하더라

그들을 흉내 내보고자 평소답지 않게 바른 자세로 앉아 키보드를 두드린다

어제까지의 나라면 쇼파인지 침대인지만 결정하면 되는 하루를 시작했는데 그에 비해 오늘은 꽤나 생산적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겠다

사람은 생산적으로 살아야만 하는가

이런 류의 질문에 빠져들었다가는 다시금 쇼파에 모로 누워 하루를 허송세월 할 것이 뻔히 보이기에 접어둬야겠다

뭘 써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뭐라도 쓰면 되는 걸까

글 꽤나 쓴다는 작가 중에 지인이라도 있으면 물어보고 싶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 꽤 긴 시간이 흘렀고 그 사이에 남은 샌드위치 한 조각을 먹어치웠다

내 안에는 우울과 통한이 가득하다.

물론 이런 것들로 만 채워진 건 아니겠지만 그리 밝거나 명랑한 것들은 분명 아닐 게다

이런 나에게서 나오는 글감이란 게 뻔할 텐데 누군가 읽고 기분이 상하면 어쩌나 괜스레 걱정이 먼저 든다

걱정에 압도되기 전에 이성적인 생각을 해보자

어떤 일이든 부정적인 측면을 확대해서 먼저 알아채는 게 내가 가진 병의 특성이다

이걸 인정하면 조금 나아진다고 하더라 어쨌든 전문가의 말이니 나의 생각보다는 좀 더 그럴듯하지 않겠나 싶어 믿어보고 싶어진다

자, 어떤 글을 쓰고 싶은가

누군가에게 영향력을 줄 만한 포부 있는 목표 같은 건 설정하지 못하는 타입이다. 이런 생각조차 병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글을 쓰는 일을 통해 꼭 하나 얻고 싶은 게 있다.

나를 건져내는 것.

회한 가득한 과거의 시간에 고여있는 나를 건져내어 현재를 살게 하는 것이다

참고 견뎌내고 잊기 위해 애쓰느라 현재를 살아본 기억이 거의 없다

자기 연민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현재에 그저 존재하지도 못하는 스스로가 안쓰러워 가슴켠이 쓰리다

어제보다 그 이전의 날들에 잡혀있는 나를 해방시켜 주고 내일을 꿈꾸게 해주고 싶어진다

살다 보면 누군가 그 역할을 해줄 거라 막연히 기대했을지도 모르겠다

백마 탄 왕자님까지는 아니어도 일종의 구원을 기다리는 중이었나 보다

얼마나 어리석고 헛된 기대였는지 알아채기 시작하니 나를 위해 울어 줄 수 있게 되더라

견딜 수 없는 슬픔에 눈물 흘리더라도 나를 위해 울어줄 테다

슬퍼만 하느라 일상생활이 안된다고 해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아니다

나를 위해 슬퍼하며 시간을 쓰고 있는 셈이니 아무것도는 정녕 아닐 게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당장의 시간은 흐르고 이 역시 나를 위해 쓰는 시간이다

무엇도 아닌 자신을 위해 사용하는 시간은 현재의 한가운데가 아니겠나

과거와 통한에 매몰되어 있던 나를 현재로 건져내기 위해, 글을 쓴다

글을 쓰는 시간만큼은 아주 선명하게 현재에 발을 딛고 선 자신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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