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켠이 서늘하다 못해 통각이 둔해진다 마치 얼음팩을 올려놓은 걸 잊은 채 깜박 잠이 들었다가 비몽사몽에 깬 것만 같다
마음속으로 엄마를 부르지 않는다 너를 부른 지 꽤 되었기 때문이다 너를 부르기 미안해져 신을 찾을까 잠시 생각해 보지만 마뜩잖다 내가 온전히 홀로 감당해야 할 몫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무언가 혹은 누군가에게 의지해 감정을 덜어내기는 부끄럽기 때문이다
나 역시 지독히도 이기적이란 사실을 깨닫는다 의식이 흐릿한 선잠에서도 나의 아픔만 오롯이 느껴진다 그다음에야 너의 것을 헤아려본다 울지 않는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행동 중에 가장 비겁한 선택지기 때문이다 점점 잠에서 깨어나 의식의 채도가 높아진다
너를 그곳까지 몰고 간 것은 나의 무지였을까 매정이었을까
가장 지켜주고 싶은 너를 뒷걸음질로 짓밟고 화들짝 놀란 가슴이 진정되지 않는다 그곳에 놓인 지 잊고 있었던 걸까 눈을 감고 있었던 걸까 그조차 아니면 또렷이 응시하며 즈려밟은걸까
마지막의 경우는 절대 아니었을 거라며 도리질 쳐보지만 확신할 수 있을까
안 보이는 척 실눈을 뜨고 일부러 부수고 싶었던 건 아닐까
너도 날 밟았으니 나도 모른 척 널 아프게 해야지 분명히 내 눈이 감긴 것처럼 보이겠지 실수로 밟은 척 뭉개줄 거야 이 독하고 음험한 무엇이 본심이었던 게 아닐까
인간은 잔인하다
나는 인간이다
나는 잔인하지 않다
어린아이조차 오류를 찾아낼 수 있는 삼단논법을 주창하며 살았더랬다
비틀린 삼단논법으로 스스로를 정의해 온 멍청함이 지금에 이른다
세상과 인간이 아무리 이기적이어도 나는 아니야 나는 달라
아니
나도 인간이야
나 역시 잔인하다
나의 아픔을 되갚고 싶어 하고 조금씩 성공했을 때 희열을 느낀다
작은 죄책감, 그리고 뒤이어 느껴지는 성취감에 바라던 대로 됐다며 기뻐한다
조금은 아팠을 테지 모기 물린 데를 긁다 보면 생채기가 생기지만 가려움을 해소하는데 급급해 작은 생채기 따위는 무시하고 사정없이 긁어버리는 거다 그러다 독이 올라 생채기가 덧나버리고 나서야 후회한다
생채기에 미안해서가 아니다 이 역시 내가 아프기 때문이다
그렇구나
나 역시 나밖에 모르는 잔인한 인간 중 하나였구나
왜 나는 지구 밖에서 온 외계생명체마냥 다를 거라고 믿어왔을까
나 혼자 아무리 우겨본들 남의 눈에 비치는 내 모습은 그저 인간일 뿐이다 인간환멸이 얼마나 웃긴 단어인지 심각한 와중에도 실소가 나온다 그 인간에 자신이 포함된 걸 잊은 멍청이가 쓰는 말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 뜻을 짚어보며 사용하긴 하는 걸까
우린 모두 자신의 안위만을 챙기는 인간일 뿐이다 혐오감을 연민으로 바꿔야 그나마 스스로를 참아 줄 수 있어서였을까 그리도 정신승리를 하는가 보다
눈을 감고 아무도 찾지 않고 부르지 않고 어디에도 매달리지 않고 가만히 들여다본다 나는 타인을 이해할 수 있고 타인에게 이해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덧없음에 잠시 머물러본다
아픈 진실을 외면하는 치기 어림을 순수함이라 믿고 살았다 이는 순진함 역시 아니며 우매함이다 인간은 존재만으로 고귀한 원석으로 태어나며 근본적으로 선하다고 믿었다 고유의 아름다움을 인정해 주고 개발하길 바랐다 그 과정에 조금이라도 기여하고 싶었고 그게 큰 기쁨이었다 치우쳐진 기대감의 부작용이었을까 최근엔 인간의 악함만이 보인다 나약하고 이기적이고 무엇보다 잔인하다
나는 다르다
이 얼마나 뜻 그대로 말도 안 되는 어그러진 논리였을까
이제야 발견한 나의 악함에 나의 무정함에 나의 이기심에 머물러본다
인간을 사랑했다 거짓말을 일삼게 하는 나약함과 이기적일 수밖에 없게 만드는 심약함과 탐욕적이게 만드는 두려움을 연민했다
그러니 인간인 나를 이해해 줘야지
너도 나도 나약하다
악취를 견딜 수 없을 만큼 악하지만 잔인한 악행의 근간은 연약하다
인간이니까 인간을 그리고 나를 이해해 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