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라면 끓이기에도 기술이 필요한 건지 내가 끓이는 라면은 하나같이 맛이 없다. 처음 한두 젓가락은 꼬들꼬들하니 꽤 먹을만하지만 뒤로 갈수록 퍼져 버리는 라면. 결국 한 그릇을 비우지 못한 채 먹기를 그만둔다.
생라면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봉지째 꾹꾹 눌러 면을 부순 뒤 스프를 솔솔 뿌리면 완성되는 짭조름한 나만의 간식. 어떤 스낵도 따라올 수 없는 그 독보적인 맛에는 무슨 마법이라도 뿌려져 있는 것 같다.
그렇다고 생라면이 나의 사랑하는 간식 1순위가 될 수 있을까? 아마 평생을 가도 순위권에 들지 못할 것이다. 마치 길티플레져처럼 생라면을 먹을 때마다 이상하리만큼 부끄러움이 올라온다. 남들은 우아(?)하게 끓여 먹는데 나만 이렇게 우적우적 부셔 먹고 있겠지라는 생각 때문이다. 생라면을 먹는 건 지금의 내가 아닌 어린 시절 촌스러운 내가 먹고 있는 것만 같다.
국민학교 시절, 학교가 멀어 친구들과 1시간 정도를 걸어서 다녔다. 그때 먹던 생라면 맛이 얼마나 좋았던지. 그 시절 학교에서의 추억은 거의 사라졌지만, 하굣길에 친구들과 나란히 걸으면서 라면을 먹던 기억은 여전히 또렷하다. 그 당시 라면은 100원이었다. 친구 중 집안 형편이 괜찮았던 한 아이는 매일 라면을 사 먹었다. 난 그렇지 못했다. 엄마가 50원을 주는 날이나 아예 돈을 주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그러면 난 친구가 라면을 부수고 스프를 뿌리는 과정을 곁눈질하며 걸었다. 조금 나눠주기만을 기다리며 옆에서 군침을 흘렸다. 어쩌다 엄마가 100원을 주는 날은 아침부터 마음이 둥실거렸다. 수업 시간 내내 하교 후 라면 사 먹을 생각만 했다. 수업이 마치면 학교 앞 구멍가게로 달려갔다. 친구에게 얻어먹는 것이 아닌 나만의 라면 한 봉지를 손에 쥐었을 땐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집이 보일 때까지 라면을 아껴가면서 먹었다. 그 기억 때문일까? 여전히 끓인 라면보다는 생라면이 좋은 것은.
남편은 생라면을 잘 먹지 않는다. 남편을 닮은 큰 아이도 그렇다. 작은 아이는 라면보다는 스프의 자극적인 맛이 좋은지 손에 묻은 스프를 쪽쪽 빨며 지저분하게 먹는다. 그러다 보니 같이 있을 때는 라면 봉지를 뜯지 않는다. 낮에 혼자 있으면서 뭔가 씹고 싶은데 마땅한 게 없을 때, 바로 그때가 생라면의 유혹에 빠지는 때다.
하루는 혼자 생라면을 먹고 있는데 같은 아파트에 사는 지인이 놀러 왔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부엌 식탁에 앉았는데, 아뿔싸! 미처 치우지 못한 라면 봉지가 눈에 들어왔다.
"이거, 아까 내가 먹다 놔둔 건데... "
뭔가 잘못하다 들킨 아이처럼 당혹스러웠다. 허둥지둥 라면 봉지를 옆으로 치우는데 지인이 말했다.
"언니, 저도 생라면 좋아해요. 자주 부셔 먹어요."
그때 알았다. 나만 생라면을 먹는 게 아니라는 것을. 이후로 나는 생라면을 당당하게 먹기 시작했다. 역시 생라면에는 대체품(뿌셔뿌셔)이 줄 수 없는 본질적인 맛이 숨어 있다고 말하면서 다른 이들에게 권하기도 한다. 그 맛이 좋아서든 아니면 어린 시절 생라면이 먹고 싶어 군침을 흘리던 기억 때문이든 앞으로도 나의 생라면 사랑은 계속될 듯하다.
혹시 생라면 부셔 먹으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