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으로 보는 나
출근 전 하나의 택배를 받았다. 시집 한 권과 소설 한 권이 담긴, 인터넷 서점에서 온 택배였다. 택배를 주문한 사람은 다름 아닌 나다. 나는 습관처럼 책을 사서 쌓아두곤 하는데, 이북으로 책을 잔뜩 사도 또 어느샌가 종이책을 주문해 버리게 된다. 좁은 집에 거주하는 나에겐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자리가 없어 저번에도 동네 주민들에게 십여 권의 책을 나눔했었지.
책을 자주 산다고 다독왕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구입한 책은 그대로 책장으로 올라가 좀처럼 자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내가 사는 건 '책'이 아니라 '책을 산다는 기분'이다. 어떻게 보면 한심한 소비일 수도 있지만, 나 같은 사람이 바로 출판계의 빛과 소금이 아니겠냐며 농담을 해본다. 그래도 책을 읽으려고 독서 모임도 열었던 것인데 요즘은 그마저도 헤이하다. 많은 것을 놓치고 있다는 감각이 썩 유쾌하지 않다.
그런데 오늘은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책장 하나하나에 '되고 싶었던 나'가 있다는 생각.
소설을 산 것은 소설을 읽는 사람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시집을 산 것은 시를 읽는 사람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카피라이팅 책과 에디토리얼 책을 구입한 것은 더 좋은 편집자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직 버리지 못한 '스토리텔링' 서적에는 작가가 되고 싶었던 꿈이, 워드프레스나 포토샵, 에펙 등 다루는 법을 담은 책에는 콘텐츠를 제작하고 싶었던 마음이 있다.
이 마음을 자각하고 나니, 스스로를 타박하는 마음이 조금은 잦아들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자포자기하면서도 무의식적으로 책을 통해 되고 싶었던 자아상을 그려내고 있었다. 그렇게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았는데 다 포기하고,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탓하고 있었다니. 읽다만 책들을 읽으며 자신이 인정하는 자신이 되기 위한 여정을 떠나야겠다.
어릴 적 상담사가 알려준 긍정화법 TIP을 말하며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나는 ~을 좋아하지만, ~을 못해요'라고 발화하기 보다, 부정적인 내용을 앞으로, 긍정적인 내용을 문장 뒤로 보내라는 것이었다. 갑자기 이 말을 왜 꺼내냐면, 새삼스레 말해보고 싶어서. "나는 글을 잘 못 쓰지만, 글을 좋아해요,"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