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고 낡은 목동 집에 진절머리가 난 남편이 말했다. 이사 한 달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전에 신축 아파트에서 살았던지라 그의 불만은 날로 세졌다. 넓고 쾌적한 집에서 각 방 생활하던 우리 가족은 목동으로 이사 오면서 2인 1조 생활을 하고 있다. 집이 좁으니 한 명이라도 깨면 그 인기척 소리에 온 가족이 다 일어났다.
각 방마다 시스템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던 전 집과 달리 여기에는 거실과 안방에만 에어컨이 있다. 거실에 에어컨을 켜두고 선풍기를 틀면 남편과 작은 아이가 자는 작은방에도 냉기가 갈 거라고 생각해서 에어컨 설치를 안 했는데... 이렇게 초장기간 폭염이 지속되다니. ㅠㅠ 가뜩이나 몸에 열이 많은 남편은 목동 생활에 완전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아이들 키우기 좋고, 살기 좋은 동네라고 해서 왔는데... 살아보니 이곳은 초등학교 이상 아이들에게는 어떨지 몰라도 영유아를 키우기에 좋은 환경은 아니었다. 단지 내 커뮤니티 시설이 없는 건 차치하더라도 기본적인 놀이시설만 갖춰진 모래 놀이터는 평소 너무 더워 놀 수가 없었고, 그렇다고 주변에 아이들을 데리고 갈만한 마땅한 시설도 없었다. 좁은 집 안에 네 식구가 옹기종기 붙어있자니 아이들도, 부모도 모두 답답해 미칠 노릇이었다.
밤마다 쿵쿵 울리는 층간소음과 아이들 등하원 때마다 벌어지는 출차, 주차 전쟁. '초보운전도 목동에 살다 보면 운전 고수가 되겠다'는 남편의 말이 괜한 우스갯소리가 아니었다. 요즘 '얼어 죽어도 신축'의 줄임말인 '얼죽신'이 유행이라고 하던데, 목동 구축 아파트에서 한 달 살아보니 4년 간 신축아파트에서 살며 당연하게 누리고 있던 모든 게 얼마나 감사한 환경이었는지 새삼 깨닫는 계기가 됐다.
그럼 대체 우린 어디에서 살아야 할까? 어디에서 사는 게 아이들에게도 좋은 환경일까?
주변 환경이냐, 집 내부 컨디션이냐로 고민했던 지난날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아무리 면학분위기가 좋고, 학군이 잘 형성된 동네라고 할지라도 그 안에서 매일 엄마, 아빠가 투닥투닥 싸우고 있다면 그 집이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것 같지 않았다.
가화만사성이라고 먼저 가족이 화목해야 모든 일이 잘 풀린다. 그리고 가족이 예민해지지 않고 화목하려면 집 내부 컨디션도 외부 환경만큼이나 중요했다. 아니, 어쩌면 외부 주변환경보다 더 중요할지도 모르겠다.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먹어 봐야 아는 엄마라 이번 이사로 많은 비용이 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동에서 살아본 것에 대해서는 후회하진 않는다. 덕분에 우리 가족이 어떤 환경에서 살아야 행복할 수 있는지도 알 수 있었고, 학구열이 높은 동네에서 살면서 앞으로 우리 삼 남매를 어떻게 교육시켜야겠다는 방향성도 잡았으니 말이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어제 인천 신축 아파트 임장을 다녀와봤다. 방 4개에 화장실 2개, 게다가 조경상까지 받은 아름다운 단지와 쾌적하고 다양한 커뮤니티 시설이 다 갖춰져 있는데, 서울 집값에 절반 정도밖에 안 했다. 아마 어제 조건에 맞는 매물이 있었다면 당장 계약했을 텐데, 매물이 없어 부동산에 번호만 주고 왔다.
목동 한달살이로 느낀 점이 있다면, 1. 우리 가족은 큰 집에서 살아야 한다는것. 그리고 2. 신축에서 구축으로 오기 힘들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