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통의 가족>에는 두 가정이 나온다. 유명 로펌 변호사로 일하는 형 재완의 가족과 대학병원 의사로 근무하는 동생 재규의 가족이다.
극초반 형 재완은 승소를 위해서라면 거짓도 진실로 바꾸고, 양심과 도덕적 가치보다는 돈을 더 우선시하는 욕심 많은 인물로, 동생 재규는 돈보다는 의사로서의 사명감, 도덕심 등을 중요시 여기는 인물로 나온다. 두 형제에게는 각각의 자녀가 있다. 형에게는 전처 사이에서 낳은 고3 딸 혜윤이 있고, 동생에게는 고2 아들 시호가 있다.
1. 어느 날 내 아이가 무고한 사람을 폭행했다
어느 날 뉴스에서 10대 청소년 두 명이 노숙자 한 명을 무자비하게 폭행한 사건이 나온다. 그 영상의 주인공은 바로 형제의 자식들인 혜윤과 시호다.
내 자식이 무고한 사람을 폭행하였고, 그 피해자가 현재 중환자실에 누워있으며, 그 현장의 잔혹한 모습은 영상을 통해 더 널리 퍼지고 있고, 경찰은 가해자를 잡기 위해 수사망을 좁혀오고 있다면...
부모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덮자 vs 자수하자
이 사실을 가장 먼저 안 시호 엄마는 그날 시호가 입은 옷에 묻은 피를 지운다. 혜윤의 아빠 재완 역시 그날 딸이 입은 옷을 태워버리라 한다. 부모가 자식의 범죄를 알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증거를 지우는 일이었다.
하지만 생명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의사 아빠 재규의 생각은 달랐다. 재규는 형을 통해 사건의 전말을 듣고 가장 먼저 아들을 자수시키려 했다. 재규는 평소 아들에게 도덕성, 공정성 등을 강조하던 아빠였다.
아들이 학교폭력을 당할 때도 폭력을 폭력으로 되갚지 말자며 방치했고, 의사 아빠의 도움으로 병원 체험학습을 하는 게 어떻겠냐는 선생님의 제안에도 아이가 특혜 없이 다른 학생들처럼 떳떳하게 자라길 바란다며 거절했었다. 이번에도 그는 아들이 소년원에 가는 한이 있더라도 자신의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라고 했다.
형과 부인은 말렸다. 자식의 미래를 위해, 그리고 자신들의 사회적 명성에 금이 가지 않기 위해 사건을 덮자고 했다. 의사로서 지금껏 많은 아이들을 살리며 좋은 일을 많이 했으니 이번 한 번은 그냥 지나가도 괜찮다며 그를 설득했다.
사건이 전환점을 맞이한 건 유일하게 사건을 증언할 수 있는 피해자인 노숙자가 죽으면서 발생한다.
2. 피해자가 죽었다.
(= 증언할 사람이 사라졌다.)
노숙자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두 형제는 다른 심경의 변화를 느낀다. 형 재완은 피해자의 부고 소식에 딸이 안도하는 모습을 보이자, 사건을 이대로 덮는 게 맞는지 회의가 들었다.
반면 동생 재규와 그의 처 연경은 피해자가 죽었다는 얘기를 듣자 전과는 다른 활력을 보인다. 평소 생명의 가치를 중시한다던 의사도, 치매 노모를 모시고 사는 효부도 자식 일 앞에서는 도덕성은 뒷전이었다.
동생 재규네는 증언해 줄 피해자가 죽었으니, 아이들이 폭행도, 그로 인해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도 모두 없던 일이 된 것처럼 행동했다. 아들에게도 앞으로 잘하면 된다며 사건을 덮으려 했다.
하지만 이번엔 형의 생각이 달라졌다. 홈 CCTV로 듣게 된 딸과 조카의 대화, 아이들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기는커녕 잘못했다는 사실마저 모르는 것 같았다.
"사람들 평균 수명이 84세래, 그런데 거지들은 46세래. 그러니깐 그 거지는 우리가 죽인 게 아니라 자연사한 거지"
"누나 혼자 했으면 죽었을 수 있을 거 같아? 내가 마지막에 발로 차서 죽은 거야"
"작은 아빠는 뭐래?"
"잘못했다고 하니깐 앞으로 잘하면 된대." (키득키득)
3. 입장이 달라져서 만난 두 형제
형은 동생에게 딸을 자수시킬 생각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의 입장은 초반과 180도 달라져있었다. 사건을 덮으려고 했던 형은 자수를 결심했고, 평소 도덕성을 운운했던 동생은 사건을 밝히려고 하는 형을 불안해했다.
불안은 극단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대화를 마치고 레스토랑을 나온 형에게 돌진하는 차, 그 차 안에는 생명의 가치를 누구보다 중시한다던 동생이 있었다. 동생 재규는 자기 아들의 살인을 덮고자, 자신도 살인자가 되었다.
영화 말미에는 형의 죽음과 함께 과거 같이 가족사진을 찍었던 모습이 나온다. 웃으며 한 곳을 바라보던 가족이었는데 결국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형제를 죽인다는 관계성이 씁쓸함을 남긴다. 이게 바로 감독이 의도한 '보통의 가족'의 모습이었을까?
영상에는 담기지 않았던 의사에서 살인자가 된 동생 재규의 최후와 아빠의 부고를 들은 재원의 딸 혜원의 반응은 관객의 상상에 맡겨 영화의 여운과 재미를 더했다. 자신을 자수시키려고 했던 아빠를 작은 아빠가 죽였다면, 딸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아마 영화 속에서 비친 딸의 성향을 보고 유추해 보자면 혜원은 아빠가 죽어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진정으로 자식을 위하는 부모는 어떤 선택을 할까?
부모의 역할은 자식의 건강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겉보다는 내실을 채워 사람으로 만드는 게 우선이다. "내 아이가 사람을 죽였다면, 부모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질문의 답은 명확하다. 바로 아이들이 자신의 잘못에 책임질 수 있게 이끌어주는 것이다.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라고 한다. 형 재원이야 극 초반엔 도덕성보다는 실익을 더 중시하는 인물로 나오니 딸이 도덕성이 결여된 걸 이해한다 쳐도, 동생 재규는 평소 도덕성을 중요시했던 아빠였는데, 왜 아들이 이렇게까지 삐뚤어졌을까 의문이 들긴 했다. 그런데 영화를 다 보고 나니 동생 재규의 언행은 사회적 평판을 위한 위선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아이가 학교에서 동급생들에게 맞고 왔는데, 오히려 가해자들을 용서한 아빠. 병원 체험학습 기회를 달라는 제안에 '아빠 도움 없이 떳떳하게 살길 바란다'는 아빠를 이해하는 아이가 얼마나 될까? 재규는 병원 내 관계자들에게 자신이 아들에게 특혜를 주는 아빠로 비치기도 싫고, 그렇다고 아들보다 자신의 체면을 중시하는 사람이 되는 것도 싫었던 것 같다.
하지만 아이들은 다 알고 있다. 부모의 조언이 자식인 나를 위하는 건지, 부모 자신을 위하는 건지 말이다. 자신이 힘들었을 때 옆에서 같이 싸워주지 않았던 부모의 말들은 아이에겐 의미 없는 소음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부모와 애착이 단단하지 않은 아이들은 내면에 폭력성을 키운다.
자식을 사람답게 키우기 위해서는 평소 자식과 진정한 신뢰 관계를 쌓아야 한다. 힘든 일이 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이 친구가 아닌 내가 되는 것, 그게 바로 내가 원하는 엄마의 모습이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아이들에 대한 고민이 많아진다. 정확히는 어떻게 아이들에게 믿음을 주는 엄마가 될 수 있을지 나에 대한 고민이다.
한 편의 글로 영화의 모든 내용과 감동을 다 담을 수는 없지만, 장면 하나하나, 연출 하나하나 모두 한 주제로 연결되어 있어 더 큰 여운과 울림을 주었던 것 같다. 영화를 보는 내내 영화 <완벽한 타인>이 많이 겹쳐 보였다. 만약 <완벽한 타인>을 재밌게 본 사람이라면 이 영화도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