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브런치를 시작하던 때가 생각난다. 일기장에만 꼭꼭 숨겨두었던 내 이야기를 세상 밖으로 꺼내보이고 싶어 SNS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네이버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게 흔했지만, 이왕 쓰는 거 폼나게 '작가' 타이틀 달고 써보고파 대세에 반하는 브런치를 택했다.
책을 출간한 정식 작가는 아니었지만, 브런치에서 주는 '작가'의 타이틀 무게도 그와 꽤 비슷한 크기의 자부심을 줬다. 이 계정에 올리는 글들은 다 내 자식들이었다. 한 편의 글을 올릴 때면 짧게는 2~3시간, 길게는 2~3일 정도가 소요됐다. 들이는 노력에 비해 눈에 띄게 보이는 성과는 소소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이야기를 포트폴리오 쌓듯 차곡차곡 쌓아가는 재미가 있었다.
한 가지 일을 1년 이상 지속한 적이 극히 드물다. 하지만 글쓰기는 달랐다. 매주 정기적으로 쓴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글을 쓰겠다는 끈은 놓지 않고, 시간이 날 때면 노트북을 켜고 글을 써왔다. 그렇게 1년이 조금 넘는 시간이 지났고, 그 시간 속에서 난 64편의 글을 올렸다.
주변에서는 돈도 안 되는 브런치를 왜 그리 정성 들여하냐고 묻기도 했다. 네이버 블로그처럼 체험단을 하며 생활비를 아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유튜브처럼 채널이 빠르게 성장하지도, 광고 수익을 정산받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한때는 그 말에 흔들리기도 했다. 블로그 체험단으로 가족 외식비를 아끼고, 가족 여행을 다니는 친구들을 보며 '브런치 할 시간에 블로그나 키워볼까?' 생각도 했고, 실제로 블로그를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난 다시 브런치로 돌아왔다.
자신에게 맞는 채널이 있나 보다. 난 블로그, 유튜브, 인스타보다 브런치가 좋았다. 돈이 되는 건 아니지만, 진지하게 내 이야기를 글로 써 내려가는 재미가 있었다. 글을 쓰는 그 행위 자체가 재미있었고, 내 생각이 다른 이들에게 공감을 받는 것도 좋았다. 당장은 아니겠지만 글을 계속 쓰다 보면 언젠가 출간작가의 꿈을 이룰 수도 있겠지 하는 희망으로 계속 글을 써왔다.
그러다 작년 말인가, 올해 초인가 브런치에 '스토리 크리에이터'가 생겼다는 걸 알게 됐다. '스토리 크리에이터'는 브런치팀에서 선정한 '특정 분야 글쓰기 전문가 인정 마크'였다. 구미가 당겼다. 글 좀 꽤나 쓴다는 사람들이 모인 브런치에서, 브런치팀이 인정한 글쓰기 전문가 배지라니.브런치를 시작하고 첫 번째 목표가 구독자 100명 모으기였다면 '스토리 크리에이트 배지를 다는 것'은 그 후 생긴 두 번째 목표가 됐다.
스토리 크리에이터에는 다양한 분야가 있었다. 여행, 맛집, 리빙, 스타일, 가족, 연애 등 총 21가지나 됐다. 난 그중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가 되고 싶었다. 에세이는 한 가지 주제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주제의 글을 쓸 수 있기 때문이었다.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가 되려면 매번 다른 주제의 글을 써야 할 것 같았는데, 당시 난 <부자 되는 결혼, 가난해지는 결혼> 연재 브런치북으로 재테크 관련 글을 연재하는 중이었다. 재테크 관련 연재 글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구독자가 100명 이상 늘었고, 연재 글 절반 이상의 조회수가 1만 이상이 됐다. 글이 사랑받는 게 좋기도 하면서도 불안하기도 했다.
'나...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가 돼야 하는데..., 이러다가 경제 분야 크리에이터가 되는 거 아냐?'하고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김칫국 한 사발 거하게 마시는 중이었다. ㅋㅋ
브런치에서 알려준 '스토리 크리에이티브' 선정 기준은 애매모호했다. 전문성, 영향력, 활동성, 공신력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고 하는데, 그 기준이 글 게시 수도 아니고, 독자 수도 아닌 것 같았다. 꾸준히 글을 올리며 브런치팀의 눈에 띄어야 하는 건가? 싶었다. 편안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100편까지 글을 쓰면 발탁되겠지'라는 생각으로 묵묵히 글을 쓰고 또 썼다.
그러다 오늘 오후 1시쯤, 브런치앱에서 알림이 왔다. '스토리 크리에이터 선정을 축하드립니다! 앞으로도 작가님의 대표 창작 분야로 좋은 활동을 이어가 주시길 바랍니다.'
오 마이갓, 심장이 쿵쾅쿵쾅 요동을 쳤다. 본격적으로 브런치에 글을 쓴 지 1년 1개월 만에, 64편의 글과 287명의 구독자와 함께하고 있는 오늘, 난 두 번째 목표였던 스토리 크리에이티브 배지를 받았다. 그것도 '에세이 분야'로 말이다!
돈도 안 되는 브런치북에서 나는 계속 성장 중이다. 글을 쓰며 내면을 치유하고, 생각의 깊이를 더해간다. 글쓰기 실력도 전보다 좋아지는 것 같다. 배지를 받았다고 내 글이 훌륭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브런치를 둘러보다 보면 어떻게 이런 글을 썼을까 감탄이 나오는 글들이 수두룩 빽빽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부족함이 많은 글임에도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로 선정시켜 준 브런치팀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그리고 내 글을 구독하고 지켜봐 주신 구독자 287명과, 오며 가며 한 번씩 글을 읽고 가주신 독자 모두에게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