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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연 Nov 29. 2024

결혼생활 중 피해의식에서 벗어나는 법

가정의 불행은 '나만 손해 보는 것 같다'는 생각에서부터 시작된다.

결혼생활 중 가장 위험한 감정 시그널을 꼽으라면 그건 바로 '억울함'이다.


함께 잘 살자고 한 결혼인데, 가정의 대부분의 일을 나만 하는 것 같고, 상대보다 내가 손해 보는 게 더 크다고 생각되면 우리는 억울한 감정을 느낀다. 억울함은 일상에서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 평소 대수롭지 않게 치부되는데, 이 작은 감정의 돌덩이가 잔잔하게 흐르던 가정에 떨어지면 문제가 생긴다. 일상 속에서 크고 작은 파동을 일으키며, 나중에는 가정의 평화를 깨뜨리는 무서운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억울한 마음이 들면 이를 보상받고 싶어 한다. 그래서 자신을 억울하게 한 상대방을 붙잡고 자신을 인정해 달라고 말하거나, 상대에게 자신만큼 가정에 기여해 달라고 요구한다. 


요구가 의도대로 잘 받아들여지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대부분 '나 억울해!'라고 시작하는 대화는 좋게 끝나기가 어렵다. 당사자에게는 오랜 기간 참고 꺼낸 진심 어린 대화겠지만은, 상대에게는 갑작스럽게 투하된 핵폭탄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자신이 공격을 받았다고 느낀 상대는 배우자에 대한 이해보다는 자신에 대한 방어를 먼저 한다. '나 억울해!'라는 아내의 말에 '나도 억울해, 나도 나 혼자만 가정의 짐을 짊어지고 있다고 생각해'라고 받아친다는 것이다. 물론 실제로 그렇게 느끼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서 결혼생활 중 억울한 감정을 느끼거나 나만 손해 보는 것 같은 피해의식이 든다면, 상대와 대화하기 전에 조용히 나 자신과 먼저 대화하는 시간을 갖는 게 중요하다. 


정말 나만 손해 보고 살고 있는가?



밥도 차렸는데, 뒷정리와 설거지까지 한 날이면, 두 아이를 먹이고 씻기느라 진이 쭉 빠져있는데, 지친 나와 달리 소파에 누워 낄낄 거리며 TV를 보고 있는 남편을 보고 있노라면 단전 깊은 곳에서부터 스멀스멀 억울한 마음이 올라온다. 


'우리 가족 중 나만 힘든 것 같다'는 억울함은 곧 분노로 바뀐다. 한때는 이 때문에 남편과 많이 싸우기도 했다. 내가 힘든 이유는 살림과 육아를 함께 하지 않는 남편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억울함을 풀기 위해선 살림과 육아를 남편과 반씩 나눠야 할 것만 같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이기적인 계산법이었다.  


내가 계산한 가사의 기여도 산식에는 살림과 육아에 대한 내용만 있을 뿐, 남편이 가정을 위해 해온 모든 것들은 빠져있었다. 가정은 살림과 육아만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살림과 육아는 정말 작은 일부분일 뿐, 그 외로 해야 할 일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돈을 벌어오고, 운전을 하고, 집에 고장 난 것들을 고쳐주고, 세금을 계산하고, 납부하고, 무거운 짐을 들어주는 등 그동안 알게 모르게 남편이 우리 가족으로 위해 해주고 있던 모든 것들을 난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가 그동안 살림과 육아만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외 모든 일들을 남편이 해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말이다.


가사 일을 하나씩 떼어놓고 보면 항목마다 기여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전체 큰 틀에서 본다면 가정에 기여하는 바는 부부가 거의 같다고 볼 수 있다. 자신이 더 잘 챙길 수 있는 부분을 더 짊어지고, 상대가 어려워하는 부분은 덜어주고 하는 것일 뿐, 부부는 각자 가정에서 자신의 역할만큼의 짐을 짊어지며 살고 있는 중이다.  



 

똑같은 상황이라도 어떤 틀을 가지고 해석하냐에 따라, 사람들의 사고와 행동이 달라진다.
-프레임 법칙-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가정의 모든 일을 나만 하는 것 같고, 나만 힘든 것 같다고 여기는 피해의식 덩어리였다. 하지만 이 피해의식은 단순한 사고의 전환으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동안 내가 챙기지 못했던 부분들을 남편이 대신해주고 있었다는 걸 알고 나니, 더는 살림과 육아를 하는 게 힘들지 않았다. 나는 집에서, 남편은 밖에서, 우린 각자의 자리에서 가정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소파에 뒹굴거린다며 얄밉게만 보였던 남편이 짠하고, 애틋해 보이기 시작했다. 


요즘 결혼하는 부부들은 불공평함에서 비롯되는 억울함을 피하고자, 돈과 가사 범위를 반씩 나눈다고 한다. 참 안타깝다. 시대가 변하긴 했지만, 여전히 결혼은 헌신과 희생을 바탕으로 하는 제도며, 부부는 서로의 힘듦을 나누고 기대는 존재지, 업무 범위를 명확히 정해 이를 처리하는 회사 동료 같은 사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행복한 부부의 비결은 별 게 아니었다. 


1. 가정을 나무가 아닌 숲으로 바라보는 것. 

2. 상대가 가정에 기여하는 역할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것. 


이게 바로 피해의식 없이 행복하게 결혼생활을 이어가는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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