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원한 건 허락이 아닌 공감이었구나
남편이 새로운 직장으로 이직하고 2주쯤 됐을 때의 일이었다.
어후, 힘들어 못 하겠어. 나 휴직할래!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은 울그락 불그락 얼굴색을 달리하며 직장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팀장은 팀에 관심도 없고, 팀원 6명 중 2명은 질병휴직으로 자리에 없고, 나머지 4명 중 한 명은 성추행으로 고소당한 상태라고 했다. 일은 많은데 정작 일 할 사람은 없다는 거였다.
예전 같으면 그의 힘듦을 공감하며, "힘들었겠다. 고생했어."라고 했을 텐데, 이직한 지 2주밖에 안 됐으면서 휴직한다고 하니, 그의 힘듦에 공감이 안 됐다. 곧 애가 셋인데, 가장이 책임감 없이 너무 쉽게 포기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에 실망스럽기까지 했다. "원래 어디를 가던 첫 3주는 힘들어. 시간이 해결해 줄 거야. 한 달만 더 다니고 얘기하자"
속에서 끓어오는 감정을 최대한 억누르고, 최대한 좋은 말로 그를 달랬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힘듦을 위로해주기는 커녕 더 다니라고 채근하는 내게 서운해했다. 서운함은 또 다른 싸움의 불씨를 만들어냈다. 남편은 나는 휴직하면서, 자신은 왜 휴직하면 안 되냐고 따져 물었다. 예전에 내가 회사 생활에 힘들어할 때 자신은 내 편을 들어줬는데, 넌 왜 내 편을 들어주지 않냐며 서운해했다.
그때만 해도 남편 마음속의 서운함, 슬픔이 보이지 않았다. 남편 말에 억울함만 들었다. 이를 해명해야겠다는 생각에 한마디도 지지 않고 그를 향해 말을 쏟아냈다. '소방 근무가 힘들다고 해서 그만두고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도록 다 뒷바라지했는데 무슨 소리냐며. 이번에 휴직을 또 하게 되면 앞으로도 힘들면 바로 포기하는 사람이 될까 봐 겁난다며.' 한때는 서로를 가장 위했던 우리 부부는 본의 아니게 말로 서로의 가슴에 칼을 꽂고 있었다.
무엇이 잘 못됐는지는 시간이 조금 지나고 알았다. 우리의 말은 서로를 비껴가고 있었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소리를 내뱉고, 같은 소리를 들었지만 그 소리 이면의 마음의 소리를 완전히 오역하고 있었다.
처음 남편의 불평을 들었을 때, 남편이 휴직을 하고 싶어 이런 얘기를 꺼낸다고 생각했다. 다른 얘기는 들리지 않았다. 대책이 마련되기 전까지는 휴직을 말려야겠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남편은 휴직의 허락을 구하고자 꺼낸 얘기가 아니었다. 휴직을 생각할 만큼 일이 힘들다며, 그 힘듦을 나와 나누고 싶었을 뿐이었다.
며칠 지나고, 내가 먼저 남편에게 사과를 했다. 그때 당신은 내게 힘든 마음을 위로받고 싶었을 뿐인데, 당시 내가 마음에 여유가 없어 당신을 궁지로 몬 것 같아 미안하다고 말이다. 내 얘기를 듣더니 남편은 머쓱해했다. 조금 늦긴 했지만, 이제라도 그의 마음의 소리에 맞는 적절한 답을 찾은 것 같다.
남편은 힘든 일을 얘기하면 공감보다 해결책을 먼저 얘기하는 전형적인 T다. 하지만 부부 사이에서는 남편 혹은 아내가 T인지 F 성향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떤 성향이든 간에 우리가 배우자에게 가장 먼저 기대하는 건 '어떤 상황에서든 내 편이라는 사실을 확인받는 것', 바로 위로와 공감이니 말이다. 이성적인 해결책은 그다음 문제다.
앞으로도 남편이 힘들 때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나의 고민과 힘듦을 가깝게 터놓고 기댈 수 있는 사람, 그게 바로 부부니 말이다.
남편, 오늘도 고생 많았어!
오늘 하루는 어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