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오진을 타고
남편 심장이 멎을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지난 주말, 남편 핸드폰으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최근 복통으로 내과를 다녀왔었는데, 그때 그 병원의 의사 선생님이었다. 핸드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가 다급해 보였다. 혈액 검사 결과 남편의 칼륨 수치가 비정상적으로 높아 곧 심장이 멎을 수도 있으니, 지금 당장 대학병원을 내원하라는 얘기였다.
통화를 마치고 남편은 서둘러 병원에 갈 준비를 했다. 그 옆에서 나는 핸드폰으로 칼륨 수치가 높은 원인과 증상 등을 검색해 봤다. 고칼슘혈증의 원인에는 너무 많은 칼륨 섭취, 너무 많은 비타민 D섭취, 뼈장애, 무활동 등이 있었다. 모두 남편에게 해당사항이 없어 보였다. 그러다 고칼슘혈증 원인에 '암'이 보였다.
'설마... 암인가?'
남편에게는 가족력이 있다. 지금은 완치 판정을 받긴 했지만 시어머님도 암이셨고, 남편의 큰아버지도 암으로 돌아가셨다고 했다. 설마가 사실이 될까 너무 무서워졌다. 3개월 뒤면 셋째도 태어나는데, 남편 없이 나 혼자서 세 아이를 키울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아빠가 아파서 병원에 갔다고 해도 "빵이 먹고 싶다, 초코 시리얼이 먹고 싶다"라고 하는 생때같은 아이들을 보며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남편과 심하게 싸운 날이면 '그래, 당신 없어도 나 혼자서 애들 다 키울 수 있어'라고 생각했던 때도 있었다. 그런데 실제로 남편이 떠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그때 그 생각들은 다 거짓이자 허세였다는 걸 알게 됐다. 남편 없는 세상이라니, 생각만으로도 슬픔이 목 끝까지 차올라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암이어도 괜찮으니, 그저 우리 곁에 살아 있어 주기만을 바랐다.
두 시간 뒤 남편의 검사 결과가 나왔다. 혈액 검사 결과 모두 정상이었다. 남편은 내과 의사 때문에 헛발 했다며 불평했지만, 난 오히려 오진을 한 그 의사 선생님께 감사하다. 그 오진덕에 남편의 소중함과 사랑을 다시금 깨달은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상실은 아무 예고도 없이 찾아올 수 있다는 걸 알려준 예고편 같았다. 집에 돌아온 남편을 안고, 내가 2시간 동안 어떤 마음이었는지 얘기하며 앞으로 건강관리 잘해달라고 부탁했다. 매일 술 마시는 습관도 고치고, 날이 추워졌으니 새벽 수영도 주 5일에서 주 3일로 줄이자고 말이다.
돈, 좋은 집, 좋은 차 다 필요 없었다. 가장 중요한 건 우리 가족이었다. 그동안 보험에 대해 회의적이었는데, 이번 일을 겪고 나니 암보험 같은 중대질환 보험은 가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가족의 건강을 위해 요리를 배우기로 했다.
병원에서 다녀온 후, 남편은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넘치는 에너지로 집구석구석을 청소하며, "이건 여기에 두지 말라니깐", "애들 이불은 일주일에 한 번씩 빨아야 해", "이게 왜 여기 있어? 이거 다 버리라니깐" 하며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듣기 싫었던 그 소리가 그날 이후 유독 사랑스럽게 들린다. ^^
그저 살아있어줘서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