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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연 Oct 17. 2024

장서갈등을 피하기 위한 중간자의 역할

장서갈등 사이에 껴서 등 터지고 쓰는 오답노트

남편과 부모님이 2년 만에 다시 만났다. 오랜만의 재회에 걸맞게 우린 고급 일식당의 룸을 잡고 만났다. 결혼 9년 차 애 셋 부부임에도 그날은 부모님께 남편을 처음 인사드리는 자리같이 긴장이 됐다. 아마 옆에 있던 남편은 더했을 거다.


부모님이 도착하자 남편은 환한 얼굴로 문 앞까지 나가 부모님을 맞았다. 부모님도 반가운 얼굴로 사위에게 '잘 지냈냐'며 인사를 건넸다. 한 프레임에 부모님과 남편이 같이 있는 모습을 보니 울컥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너무나 간절했던 자리라 그런지 누군가의 말실수로 이 만남이 어그러질까 식사 시간 내내 조마조마한 마음이 들었다.


2시간의 식사 시간 동안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하지만 2년 전의 일은 아무도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고맙다'와 '다시 봐서 좋다'는 말이 횟감 뜨듯 식탁 위로 툭툭 올라왔다. 투박한 그 두 문장이 백 마디의 어떤 말보다도 더 큰 진심으로 다가왔다. 우리의 만남은 코스요리 마지막에 나왔던 지리탕처럼 맑고, 진하고, 따뜻했다.


부모님과 헤어지고 남편에게 오늘 만나서 어땠는지 물었다. '괜찮았다'는 남편의 대답에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런데 완벽했던 하루에 비해 내 기쁨은 그리 크지 않았다. 한 번 어긋난 적 있던 관계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인지 이 기대가 실망으로 돌아오면 어떡하지, 어렵게 회복한 관계가 또 어그러지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과 불안이 한 번에 싹트기 시작했다.  


한 번 크게 데어본 사람은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기뻐할 수 없었다. 그래서 버킷리스트 대신 오답노트를 쓰려한다. 한 번 틀렸던 문제를 또다시 틀릴 순 없기 때문이다.  




오답노트 1. 최소한으로 만나기


남편을 만나고 온 뒤 부모님은 앞으로 완전체의 가족으로 자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신이 나셨다. 다음 달도, 그다음 달도 다 같이 만나자며 향후 일정을 몰아치우듯 세우셨다. 딸인 나까지도 멀미가 날 것 같았다. 속도조절이 필요해 보였다.


인간관계와 운전의 공통점이 있다면 그건 '거리조절'을 못하면 사고로 이어진다는 거다. 생각해 보면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부모님과 남편은 굉장히 막역한 사이였다. 부모님은 똘똘한 남편을 좋아했다. 그래서 자주 만나 술도 마시고, 놀러도 다녔다. 그런데 그게 화근이었다. 너무 가깝게 생각하다 보니 말과 행동이 편해졌고, 그게 상대에겐 상처로 쌓였던 것이다.


엄마는 앞으로 사위에게 잘해줄 거라고 했다. 하지만 엄마와 남편은 정반대의 성향이라, 엄마의 호의가 남편에게는 좋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자주 봐야 가까워지고 친해진다는 엄마와 달리 남편은 누구든 자신에게 너무 가까이 다가오거나, 급하게 몰아세우면 뒷걸음질 치는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개와 고양이가 친해지는 법 따위는 없다. 자주 안 만나서 다툼을 줄이는 수밖에 말이다.  


그동안에는 제안에 대한 거절을 본인에 대한 거절로 받아들이는 엄마 때문에 모든 만남의 제안을 다 수락해 왔었다. 하지만 이제는 선택적으로 수락해야 할 것 같다. 명절과 같은 큰 행사 때는 다 같이 가더라도, 중간중간 작은 이벤트 때는 남편이 부담스러워하면 나 혼자 가는 식으로 말이다.


이 계획을 부모님이 아신다면 황당해하실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평화로운 부부 관계를 깨지 않으면서도, 가늘더라도 길~게 장서관계의 연을 잘 이어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적게 보고, 짧게 보는 거다.




오답노트 2. '나' 대화법


남편과 부모님 사이가 크게 틀어지게 된 계기는 내가 엄마에게 남편의 불만사항을 전하면서였다. 직접 불만사항을 장모님에게 말하겠다는 남편을 만류하고 내가 대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위가 직접 대면하는 것보다 딸인 나를 통해서 소통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누구를 통해 듣던 한 다리 건너 관계인 사위의 불만사항이 유쾌하게 들릴 일 만무했다. 나름 잘 말했다고 생각했는데, 엄마 입장에서는 '사위가 자신의 딸을 시켜 불만을 전했구나'하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엄마는 '내 선에서 사위의 불만사항을 컨트롤해야지, 자기 귀에까지 들리게 해야겠냐'며 나와 사위 모두를 탓했다.


'뭐가 문제였을까' 한참을 생각해 봤다. 그러다가 나처럼 장서갈등을 겪고 있는 친한 언니와 대화 중 그 해답을 찾았다. 그건 바로 남편의 불만사항을 마치 내가 느끼는 불만인 것처럼 바꿔서 부모님께 말해야 하는 거였다. 


만약 남편이 "장인, 장모님이 OO이라고 말해서 기분이 나빴어"라고 말했다면, 그걸 있는 그대로 부모님에게 전하는 게 아니라, "엄마, 아빠가 남편한테 OO라고 해서 내가 기분이 나빴어, 앞으로 조심해 줘"라고 말하는 거다.


불평의 주체가 자신의 딸인 것과 사위인 것은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다르게 느낄 수 있다. 딸은 미우나 고우나 자신의 자식이니 어떤 불평을 해도 그 순간 욕 좀 먹고, 잔소리만 들으면 끝이지만, 한 다리 건너 관계인 사위가 자신에게 불평한다면 장인, 장모를 어려워할 줄 모르고, 존중하지 않는다고 느껴 이후 관계가 불편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가까이 지내도 사위는 아들이 아니고, 며느리는 딸이 아니다. 남보단 가깝지만, 자식보다는 먼 사위와 며느리의 이미지 메이킹은 딸과 아들의 몫이다. 선물을 줄 때는 "사위가 주는 거야~"라고 하고, 불평을 할 때는 "내가 기분이 나빠" 하는 게 현명한 처사라는 것이다. 큰 일을 겪고 난 뒤 깨달은 게 있다면 좋은 일은 사위 덕, 나쁜 건 내 탓으로 돌리는 게 내 마음 건강에도 가족 전체의 평화에도 도움이 된다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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