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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d Sep 05. 2016

마와리 견문록 #4

일을 열심히 할수록 빚이 쌓인다

"택시 타고 다니랬지? 잔머리 굴리지 마, x새끼야."


서초 경찰서(서초역 근처)에서 강남 경찰서(삼성역 근처)로 이동하는 길. 나는 서초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삼성역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때, 선배의 전화가 울린다. 전화를 받자마자 수화기 너머에서 신경질이 잔뜩 묻어나는 목소리가 내 위치를 묻는다. 나는 지하철 안이라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마침 다음 역을 알려주는 안내 방송이 우렁차게 울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화벨 세 번 울리기 전에 받아야 한다는 룰 때문에 조금 이따가 받을 수도 없었다. 제길.


수습기자들은 무조건 택시를 타고 다녀야 한다고 했다. 마와리를 시작하는 날, 캡이 그랬다. 캡은 우리에게 왜 그럴 것 같냐고 물었다. 동기가 답했다. "빠른 이동을 위해섭니다." 맞는 말인 것 같았다.


아니란다. 지하철에는 보고 듣는 눈이 너무 많고, 보고할 때 정보가 새어 나가면 안 되기 때문이란다. 허허... 수습기자들에게 '너희는 아직 우리의 후배도, 기자도 아니다'라고 하면서, 우리가 캐내고 보고하는 정보들은 시민들이 들으면 안 되는 고급 정보였던가.


서초 경찰서에서 강남 경찰서까지 지하철로 가면 28분이 걸린다. 택시로 가면 얼마나 걸릴까? 답은 글 마지막에...


돈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대체로 수습기자는 근로계약서 상 급여의 70%만을 받는다. 평균 월 200만 원 남짓한 급여를 받는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 정도도 후하게 잡은 편이다. 실제 내 급여는 180만 원 정도였다.


모든 이동에 택시를 이용하면 한 달 지출이 얼마나 될까. 나보다 먼저 수습기자를 경험한 몇몇 친구들에게 물어본 결과 한 달에 적게는 150만 원에서 많게는 200만 원까지 든다고 했다. 나와 함께 '마와리'를 돌았던 타사 수습기자들도 하루 10만 원 든다고 했다. 나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루 5~10만 원 가까운 택시비를 지출했다. 주 6일을 일하므로, 한 달 택시비 지출을 200만 원으로 잡는 건 무리가 아니다.


자 이제 수습기자들에게 남는 돈은 얼마인가. 200만 원 남짓한 월급, 200만 원 남짓한 택시비. 밥값과 여러 잡다한 지출을 합치면, 적자다.


이제 그들의 근로 시간을 살펴보자. 대개 오전 5시쯤 일어나 오전 2시쯤 잠든다. 이것 역시 아주 보수적으로 산출한 결과다. 1시간도 못 자는 날이 비일비재하다. 24시간 중 21시간을 깨어 있는다. 하루 21시간, 주 6일을 노동하는 대가가 마이너스 급여다.


많은 언론사의 수습기자들은 업무에 필요한 비용을 제대로 지원받지 못한다. 일부 언론사들이 취재비 명목으로 월급 외 지원금을 지급하고 있으나 이 또한 턱 없이 부족한 경우가 태반이다. 내가 보고 듣고 겪은 수습기자들은 대부분 자신의 월급보다 많은 비용을 택시비 등 업무 관련 용도로 지출하고 있었다. 일례로, 한 수습기자는 "'엄카(엄마카드)'를 갖고 다니며 업무 비용을 충당했고, 어머니께 '너는 왜 취직해서 돈을 벌기는커녕 더 쓰냐'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고 말했다.


슬프게도, 택시비는 수습기자의 업무 성과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수습기자의 일과 대부분은 경찰서를 헤매는 일이다. 경찰서 간 이동시간이 짧을수록 더 많은 시간을 경찰서에서 보낼 수 있고, 이는 더 많은 취재를 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동 과정이 더 편해짐에 따라 컨디션 관리도 용이하다. 평균 하루 두 시간 남짓 잘 수 있는 수습기자에게 잠은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 택시를 타는 짧은 시간에 보충하는 잠이 그리 달콤할 수 없다. 반면, 택시비가 걱정돼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부족한 잠을 보충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 치여 오히려 체력을 더 소모하기도 한다. 역에서 경찰서까지 걸어야 하는 수고도 필요하다. 당연히 업무 효율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일을 잘하기 위해서 더 많은 택시비를 들여야 하고, 일을 열심히 할수록 빚이 쌓이는 우스운 상황이다.


더 우스운 건 뭔지 아나? 수습기자들이 택시비로 월급을 탕진할 때, 1진*들은 버스를 타고 다닌다. 내 아침 보고를 받던 선배 기자의 뒤편에서, 다음 정류장을 알려주는 버스 안내 방송이 울리는 것을 나는 분명히 들었다.

택시로 34분이 걸린다. 이건 출퇴근 시간의 영향이 있지만, 이 경로는 수시로 잘 막힌다. 택시는 가격은 비싸면서 시간은 더 걸리는 그런 교통수단이었다.



*1진 : 수습기자들을 관리하는 정식 기자들을 통칭하는 말. 1년 차 기자라도 수습 기간을 마치고 정식으로 라인을 배치받으면, 수습기자들에게는 1진으로 불리게 된다. 원래는 출입처의 최종 책임자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큰 언론사는 한 출입처에 여러 명의 기자를 두기도 하는데, 서열에 따라 1진, 2진, 3진 등으로 불린다. 보통 경찰서의 경우 한 라인에 한 기자가 배치되기 때문에, 그 기자는 자동으로 1진이 되는 것. 물론 한 라인에 3진 기자까지 두는 언론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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