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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d Dec 25. 2016

마와리 견문록 #6

면피는 이렇게 만듭니다

면피. 면하여 피함. 앞에서 설명한 바 있다(링크).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겠다. '마와리'는 경찰서에서 보고 듣는 모든 뉴스를 보고하는 행위의 연속이다. 하지만 생각만큼 경찰서에서 보고 들을 수 있는 뉴스는 많지 않다. 개인정보보호가 강화되어 온 추세에 맞추어 경찰에서도 피의 및 혐의사실과 사건 관련 정보를 꽁꽁 숨기기 때문이다. 때문에 수습 기자들은 대개 경찰서 주변에서 민원인을 찾아 사연을 묻는 방식으로 사건의 취재를 시작한다. 이 역시 쉽지 않다. 많은 시민들은 기자들을 경계한다. 억울함을 털어놓는 민원인은 극소수다.


혹 운이 좋게도 자그마한 사건을 취재할 수 있게 되었다고 치자. 그나마도 십중팔구 보도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사소한 뉴스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수습 기자들에게 뉴스 가치보다 중요한 것은 보고 전화를 무사히 넘기는 것이다. 지난 보고 전화부터 지금까지 뭐라도 했다는 증명이다. 이것을 '면피'라고 칭한다.


면피는 수습 기자들에게 아주 소중한 자산이다. 경찰서에서 보고 들을 수 있는 뉴스가 이리도 희소한 탓에 수습 기자들은 시간마다 이뤄지는 보고전화가 곤혹스럽다. 아무리 동분서주한들 길게는 몇 시간동안 아무런 사건도 취재하지 못하는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보고 전화에서 사실대로 아무 것도 없음을 계속해서 고했다가는 따가운 핀잔을 듣기 마련이다. 누적되는 따가운 핀잔은 무능함에 대한 질타로 변질될 가능성이 크기에 수습 기자들은 어떻게든 면피를 만들어야 하는 존재다.


그래서 가끔은 취재 대신 면피를 직접 만들기도 한다. 아래는 면피를 만드는 과정이다.


STEP1 등장인물을 설정한다. 가상의 주인공을 만든다. 허모씨도 좋고 김모씨도 좋다. 나이는 적당히. 직업도 자영업자나 회사원 정도로 뭉뚱그린다. 등장인물은 둘도 좋고 셋도 좋다. 다만 많아지면 인물 간 관계 설정이 복잡해지는 단점이 있다.


STEP2 시간과 장소를 생각한다. 교통사고라면 차량 흐름이 많은 곳을, 주취폭력이라면 유흥주점이 많은 번화가를 고르면 된다. 시간은 대개 저녁 이후로. 저녁에 사건사고가 많다.


STEP3 혐의를 만든다. 사람을 때렸다면 외상은 없어야 한다. 멱살을 잡았다든지 살짝 밀쳤다든지 해서 단순 폭행으로 끝낸 후 당사자 간 합의로 훈훈하게 끝났다고 마무리한다. 외상이 생기면 무조건 기소 된다. 면피의 자격을 잃는다. 교통사고라면 단순 접촉사고 후 보험처리로 마무리한다.


STEP4 양념을 더한다. 폭행 등의 과정에서 어떤 욕설이 오고갔는지, 어떻게 때렸는지 등등 상상력을 동원해 소설을 쓴다. 조미료가 과하면 음식을 망치듯이 이 과정이 과하면 소설 티가 난다. 뭐든지 적당히...



(예시)


▦만취한 50대 남성 지구대에서 소란 일으켜 입건

서울 OO경찰서는 술을 마시고 파출소에서 소란을 일으킨 혐의(관공서 내 주취소란)로 김모(56)씨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25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24일 오후 11시30분쯤 서울 OO구 OO동의 한 편의점에서 술을 마시고 잠에 든 김씨는 편의점 직원의 신고로 OO지구대에 끌려 왔으나 지구대 내에서 소리를 지르고 경찰을 밀친 혐의를 받고 있다. 김씨는 “왜 나보다 나이 많은 놈들이 나를 잡느냐”며 고성을 질렀다.

경찰 관계자는 “가급적이면 훈방조치 하려고 하지만 김씨와 같이 30분 이상 소란을 피워 업무에 지장이 생길 경우 관공서 내 주취소란 혐의를 적용한다”고 밝혔다.


▦쳐다봐서 기분 나쁘다며 행인 폭행한 50대 남성입건

서울 OO경찰서는 쳐다봐서 기분 나쁘다는 이유로 주변 행인을 때린 혐의(폭행)로 차모(55)씨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29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차씨는 29일 오후10시쯤 서울 OO구 OO동 길거리에서 술에 취한 채 걷다가 옆을 지나던 김모(40)씨에게 달려들어 멱살을 잡고 넘어뜨리는 등 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차씨는 경찰조사에서 “김씨가 나를 쳐다보는 것이 기분 나빴다”고 진술했다.

경찰 관계자는 “김씨는 외상이 없었으나 갑작스런 폭행에 많이 놀라 차씨의 처벌을 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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