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중씨 2

‘김범중김범중김김김김’

by 인터뷰어P

범중씨가 유일하게 쓸 수 있는 글자이자, 말할 수 있는 단어는 ‘김범중’ 세 글자다. 마흔을 훌쩍 넘긴 지금, 그의 부모님은 이 이름을 가르치기 위해 얼마나 오랜 시간 반복했을까. 누군가 이름을 물었을 때, 그 세 글자를 또박또박 말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수없이 반복하며 기다려주었을 시간을 떠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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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너무도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 누군가에게는 몇 달, 혹은 몇 년의 훈련 끝에야 가능해지는 일일 수 있다. 그렇다면 ‘당연함’만을 기준으로 세상을 재단하는 것은 어쩌면 무심한 폭력 아닐까.


범중씨는 손에 연필만 쥐어져도 커다란 캔버스 위에 자신의 이름을 적는다. ‘김범중, 김범중’, 또 ‘김범중’. 때로는 범과 중을 빼고 ‘김김김김’만 쓰기도 한다.(범과 중을 쓰기 어려울 때는, 꽤를 부리듯 ‘김’만 쓰곤 한다.) 그에게 ‘내가 누구인지’ 가장 분명하게 증명하는 방법은 이름을 쓰는 행위다. 그것은 반복된 습관을 넘어선 어떤 선언처럼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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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면, 화가들이 작품에 서명을 남기는 이유도 다르지 않다. 서명은 문장의 마침표처럼 작품의 완성을 알리는 행위이기도 하지만, 이 작업이 온전히 자기 것임을 드러내는 행위다.


범중씨에게 ‘김범중’이라는 글자를 쓰는 일은 곧 ‘내가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 이름은 단순한 텍스트로 읽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그와 마주하게 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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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다름이 너무도 당연한 세계다. 언어와 표현이 다양해질수록, 우리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이들과 함께 더 풍요로운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을 단순히 ‘김범중김김김’이라는 텍스트로 읽는 것이 아니라, 범중씨가 남긴 작품과 그의 세계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으로 바라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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