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처녀 군인가족이 되다(1)
결혼해서 임신... 경남고성에서의 삶
도시처녀에서 군인가족이 되기까지 희로애락을 골고루 맛을 본 챌린지맘입니다.
군인가족이 되어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엄마라는 두 글자의 무게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두 번째 스무 살을 거쳐 다시 또 대학교를 졸업하고 스무 살 때 전공과 다른 유교과를 졸업해 인생의 2막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브런치에 글을 쓰게 되면서 "인생은 도전이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필명을 챌린지맘으로 정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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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2월 23일 나는 드디어 처녀에서 유부녀가 되었다.
일 년 반 연애하는 동안 우리는 한 달에 한번 만날 때도 있었고, 남들은 화려하고 러블리한 공간에서 데이트를 한다면 나는 남들이 데이트를 할 수 없는 시골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롯데리아나 유명 맛집인 식당에서 데이트를 했었다.
왜냐하면 내 남자친구는 군인이었다.
자주 만나지 못하니 오해가 쌓일 때도 많았고, 전방 GOP 라는 곳에 자주 들어가 연락이 되지 않을 때도 많아서 몇 번을 헤어질 뻔 했으나 그의 애타는 구애로 나는 다시 만나곤 했다.
둘 다 혼기가 꽉 찬 나이에 만났기 때문에 우리 엄마는 매번 나에게 눈총을 주었고 그런 엄마랑 싸우는 게 싫어 남자친구에게 나를 데리고 갈 거면 빨리 데리고 가라고 했다.
그렇게 난 군인가족이 되었던 것이다.
결혼하기 일주일전에 신랑은 강원도 춘천으로 발령이 났다.
나는 춘천에서 신혼살림을 차려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관사가 빨리 나오지 않아 12월에 결혼해서 3월말까지 친정에서 있어야 했고, 신랑은 훈련으로 만날 수가 없었다.
회사를 고만 둔 터라 친구들을 만나려면 저녁에 나가야하는데 아빠는 결혼하고서 친정집에 오래 머무는 나를 사람들이 오해할 수 있다고 외출하는 것을 싫어하셨다.
결혼 후 6개월이 되었을 때 나는 첫아이를 임신을 하였다.
모든 엄마들이 그렇겠지만 정말 나에겐 축복 같은 일이였고, 모든 게 신기하고 믿어지지 않았다.
그 해 12월 신랑은 서울로 발령이 나기로 되어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경남 창원으로 발령이 났다고 한다. 정말 나에겐 청청벽력 같은 소리였다.
한번도 가보지도 않은 지역이였고, 창원은 사회시간에 공업도시라고 배웠던 것 뿐 이였다.
신랑은 바로 창원으로 내려갔고, 나는 다시 보따리를 싸서 친정으로 갔다.
신랑에게 연락이 왔다.
그의 목소리는 어두웠다.
창원은 본부고 우리는 경남고성이란 곳에서 살아야한다고 했다.
"고성은 도대체 어딘가요?" 정말 눈물만 흘렀다. 나는 정말 유배지로 떠나는 참담한 기분으로 춘천에서 고성까지 이사를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