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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트왈JS Jul 11. 2023

치밀하고 도발적인 철학서, 개소리에 대하여

서평. 개소리에 대하여_해리G.프랭크퍼트

파격적인 제목이다. 원제도 On Bullshit이다. 프린스턴 철학과 명예교수 해리 G. 프랭크퍼트가 쓴 철학 논문으로, 96쪽의 가벼운 분량이지만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다.

우리는 진실 혹은 거짓이라는 이분법적 잣대로 화자를 판단한다. 그러나 저자는 그 둘에 속하지 않는 완전히 새로운 발화, ‘개소리’의 개념을 소개하며 글을 시작한다. 그리고 개소리가 아닌 것들, 예를 들어 협잡, 거짓말, 실수 등과 개소리가 어떻게 다른지 설명하고 대조하면서 현상을 논하는 데 집중한다.


개소리쟁이는 진리의 권위에 조금도 신경쓰지 않는다. 
이 점 때문에, 개소리는 거짓말보다 훨씬 더 큰 진리이 적이다.
- 개소리에 대하여 中 



그렇다면 ‘개소리’의 본질은 무엇일까. 개소리란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하기에는 좀 부족하고,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얼토당토않은 말이라고 책은 소개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화자의 의도가 교묘히 숨겨져 있다. 문제는 진리, 즉 사태의 진상이 실제로 어떠한지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거짓말과의 차이가 여기에 있다. 완벽한 거짓말을 하기 위해서는 진실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는 점에서, 거짓말은 최소한 진리를 인정하고 존중한다. 반면 개소리는 아무 말이나 지껄이는 것이므로 본질적으로 진리에 무관심하며 발화의 책임에서 자유롭다.

 


이성이 있는 우리는 이를 구분하고 현혹되지 않을 것이라 자신하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다. 개소리는 몹시 교활하게 본질을 흐리며 사회에 만연하게 퍼진다. 그러면서 하나의 담론이 되는데, 무서운 점은 그렇게 되면 더 이상 말의 사실 여부가 중요치 않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개소리 담론은 특정 입장을 대변하고 그들의 이익을 공고히 하며 확대 재생산되는 악순환을 거듭한다.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 우리 삶의 많은 부분에서 이러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그는 진리를 가볍게 묻어버리고 무책임한 언어문화를 조장하는 이 개소리가 우리 사회에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 경고한다.

 


이 개소리는 한때 정치인의 특권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누군가 얼토당토않은 말을 하면 언론이 전파하고 대중이 폭발시켰다. 책은 반이민 정서와 인종 차별을 부추기며 미 대선 기간 잡음이 끊이지 않던 트럼프를 예로 들어 현상을 해석한다.

지금은 모두에게 마이크가 허락된 시대를 살고 있다. 누구나 자기의 말을 쉽고 빠르게 온라인에 올릴 수 있다. 저자는 과거보다 현재 사회에 개소리가 더 만연해 있다고 주장하지는 않지만, 이러한 손쉬운 접근성이 ‘표현의 자유’라는 가면을 쓰고 더 많은 개소리를 만들어 내는 것은 분명하다. 유튜브, 트위터, 각종 커뮤니티에서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소문, 터무니없는 비난, 비과학적인 이야기들이 무책임하게 떠다닌다.

 


프랭크퍼트 교수는 개소리가 끼치는 사회적 악영향에 대해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인지를 결정하기 위해 사심 없이 노력하는 것이 가치 있는 일이라는 확신을 무너뜨린다"라고 지적한다. 정신이 번쩍 드는 말이다. 나는 과연 개소리의 영향력 아래 휘둘리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가. 가짜 뉴스, 정치인들의 되지 않는 말들, 진리를 호도한 채 자기 밥그릇을 위해 열심히 짖어대는 사람들… 

온갖 잡음이 난무하는 이 시끄러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 시대에 만연한 언어 타락 현상을 깊이 있게 고민해 볼 수 있었던 시간이다. 공기처럼 넘실대는 개소리에 현혹되지 않고 또 그것을 구분하고, 나 또한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개소리 아닌 침묵을 선택할 수 있기를 바란다. 손바닥만 한 사이즈의 책이라 가볍게 접근했지만, 철학적인 고찰을 하게 만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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