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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원 Jul 12. 2023

똑똑하게 듣기 - 경청

경청이라는 무기가 가진 힘 

   



  경청의 중요성은 부부, 연인, 회사, 학교에서 수없이 듣는다.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면 경청을 잘하는 사람은 잘 떠오르지 않는데 속상할 때 떠오르는 대상은 한 명씩 떠오르게 된다. 그 사람의 특징은 내 말에 집중하며 맞장구를 잘 치고 무엇 때문에 기분이 안 좋은지 이해하고 위로해 주는 사람이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경청을 잘한다고 표현한다. 


  경청은 단순히 잘 듣는 사람이 아니다. 똑똑하게 듣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다. 경청의 3단계가 있는데 1단계는 사실 인지하기(Fact) 2단계는 감정 읽어주기(Feel) 3단계는 말의 숨은 의도 파악하기(Focus)이다. 예를 들어 아이가 "엄마 색칠하는 게 선을 튀어나가서 하기 싫어 안 할 거야."라고 할 때도 경청의 3단계를 쓸 수 있다. 엄마는 아이에게 "열심히 색칠하고 있었는데 선이 튀어나가서(사실 인지) 속상하고 화가 나는구나(감정 읽어주기) 엄마가 어떻게 도와주면 좋을까?(말의 숨은 의도 파악하기)라고 말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경청의 3단계를 모두에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누구인지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에 상사와 대화를 할 때 경청의 3단계에서 3단계인 숨의 의도 파악하기를 사용할 때는 상사가 나의 말을 수용할 수 있는 대상인지 고려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2단계에서 마무리하는 것이 현명하다. 상대에게 꼭 숨은 의도를 내가 찾아줘야 할 필요는 없다. 한편 상대도 그 답을 알고 있을 확률이 높으며 나에게 얻고 싶은 건 위로나 공감이지 질문이 아닐 테니 말이다. 이건 부부와 연인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경청에 있어서 언어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비언어적인 태도(표정, 자세, 행동)가 훨씬 중요하다. 단순히 공감적인 말을 많이 한다고 해서 내 말을 잘 듣고 있는 게 아니다. 그 사람과 눈을 맞추고 몸을 나에게로 향해 돌려 앉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적당한 타이밍에 맞장구를 쳐주는 비언어적 행위가 훨씬 중요하다. 그래서 대화의 기본은 비언어적 태도에 있고 더불어 경청의 3단계인 3F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내 편으로 만들기 위해 내가 쓰는 가장 유용한 방법은 똑똑하게 듣는 거다. 특히 회사생활을 할 때  경청의 3단계를 잘 사용했다. 그랬더니 나에게 스트레스를 줬던 대상이 언제부터인가 나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고 고민 상담하는 경지까지 이르렀다. 그래서 난 미운 사람과 대화할 때 특히나 더 잘 들으려고 노력한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건 이야기를 듣는 태도에서 잘 드러난다. 좋아하는 사람과 대화할 때 자신의 모습은 어떠한가? 반면 싫어하는 사람과 대화할 때 모습은 어떠한가? 


  사람은 어느 집단에서나 살아남기 위해 다양한 생존 방식이 있는 거고 사람마다 적절하다고 판단한 방식을 선택할 뿐이다. 대표적으로 싫어하는 사람과 잘 지내야 하는 곳이 회사생활이다. 각자 이해관계가 있고 그곳에서 누군가는 날 싫어할 수 있고 난 그 싫음의 표현을 오롯이 받아내야 한다. 그래서 난 말한다. "싫을수록 더 잘 들으세요". "이 사람이 이렇게 하는 꼴을 보기 싫으면 누구보다 더 잘 들어줘야 한다"라고 말한다. 


  경청의 힘은 놀랍다. 헐크처럼 화내는 사람도 한 방에 진정시킬 수 있다. 또 나를 향해 독침을 쏘는 사람의 입도 꿀을 물린 듯 달콤하게 바꿀 수도 있다. 그게 경청의 힘이다. 잘 듣는다는 건 나를 둘러싼 인간관계를 유하게 바꿀 수 있는 가장 쉽고도 간단한 방법이다. 특히나 내가 싫어하는 사람 주변에 경청을 잘해주는 사람이 없을수록 그 사람의 독침은 더 강력하고 타격감이 높다.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독침이라도 쏘지 않으면 버틸 수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독침 쏘는 사람을 옹호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결핍(외로움)을 타인에게 독침을 쏴버려 더 깊은 외로움으로 들어간다는 걸 인지 못하는 것이 안쓰러울 뿐이다. 그런 사람이 쏜 독침에 아파할 이유가 없다. 내가 독침을 맞고 괴로워하는 거야 말로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일 테니 말이다


  은근히 나를 돌려 까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매번 그런 말에 딱히 대응도 하지 않았고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 그 사람이 잠을 못 자서 두통이 있다는 말을 했고 난 기회가 왔구나 싶었다. "선생님 잠 못 자서 두통 올 정도면 많이 힘드실 텐데, 오늘 계속 웃으면서 아이들 맞이하시길래 선생님이 아프신 줄도 몰랐어요. 요즘 무슨 고민 있으세요?"라고 물었다. 선생님은 "맞아요. 요즘 스트레스받아서 잠을 제대로 못 자요."라고 자신의 고민을 풀기 시작했다. 나는 누구보다 잘 들어줬다. 결과는 어땠을까? 그 이후 나를 돌려 까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 사람은 내가 오는 날만 기다리고 있던 사람처럼 나를 반겨줬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까? 아니 이해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쏘는 독침을 맞기 싫다고 내가 그 집단에 나가면 어떻게 될까? 좋은 사람들을 만날 확률은 높일 수 있으나 아닐 확률도 크다. 더 독한 독침을 날리는 사람들이 또 어디 숨어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내가 포기해야 할 것은 내가 성장해 나갈 집단이 아니라 독침을 쏜 사람의 독침만 제거하면 되는 거다. 독침 쏜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다만 난 독침을 쏘는 사람에게 경청이라는 아주 좋은 무기로 대응하면 되는 거다. 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온전히 나를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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