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원 Jul 14. 2023

제대로 사과하는 법

사과가 그런 식이면 사양할게 



  미안해, 그런데.... 

그런데가 붙는 사과는 사양하겠습니다. 


  그런데... 다음에 올 문장은 뭘까? 화를 내고 그 화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늘어놓는 변명의 문장이다. 그럴 거면 하지 말지, 어설프게 사과를 받아서 기분은 풀어야겠는데 화가 더 난다. 미안해 뒤에 붙는 수많은 미사여구는 결국 진짜 사과는 아니다. 내가 화낸 걸 정당화하고 화낸 것 마저도 이해해 주기를 바라는 이기적인 마음이다. 쉽게 말해 가짜 사과다. 


  아이를 혼내고 "00아 아까 엄마가 화내서 미안해, 그런데 00 이가 위험하게 행동하니까 다칠 것 같아서 걱정돼서 그랬어." 말을 마치자마자 딸은 얼굴이 벌게지며 "아니 내가 위험하게 행동한 게 아니야!" 다시 또 혼을 냈다. 하 이런 바보가 어디 있나 했더니 그게 나였다. 아주 전형적인 가짜사과다. 나는 딸한테 미안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화를 낸 건 네가 잘못해서 낸 것뿐이니 네가 이해해라'라는 말을 풀어서 설명했을 뿐이다. 


  딸은 내가 화를 냈을 때만 해도 그만큼 화가 나진 않았다. 딸이 우는 경우는 대부분 억울해서이다. 특히 자신이 혼나지 않을 일에 혼을 나는 억울한 상황에서 눈물을 참지 못한다. 딸이 5살이라 자신의 신체능력을 마꾸 뽐내고 싶어 하는 시기라는 걸 아주 잘 안다. 높은 곳에서 점프하는 딸에게 몇 번 주의를 줬으나 지켜지지 않았고 나는 "00아 위험하다고 몇 번이나 말했잖아. 그만해!"라며 아이를 혼냈다. 그때만 해도 딸은 나에게 화를 내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가짜사과를 하는 순간 아이는 분노했다. 


  왜 그랬을까? 답은 간단하다. 억울해서이다. 엄마의 사과가 사과 같지 않았는데 그것마저도 이해하라는 엄마의 말이 야속했을 것이다. 그러면 진짜 사과는 뭐고 어떻게 하는 걸까? 그때 상황으로 돌아가면 이렇게 말하겠다. "00아 엄마가 화내서 미안해. 어릴 때 00 이가 넘어져서 크게 다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엄마가 너무 속상했거든, 그래서 혹시나 점프하다가 그때처럼 다칠까 봐 걱정됐어. 그래도 엄마가 화내면서 말한 건 정말 미안해. 엄마가 다음에는 하지 말라고 하는 게 아니라 안전한 곳을 같이 찾는 걸 도와줄게" 


  가짜 사과와 진짜 사과의 차이가 무엇일까? 전문적으로 얘기하면 가짜 사과는 You-message(너를 중심으로 상황이야기)를 사용하고 진짜 사과는 I-message(나를 중심으로 상황이야기)를 사용한다는 거다. 쉽게 말하면 가짜 사과는 남 탓 진짜 사과는 내 탓이다. 전달 방식만 다를 뿐인데 상대가 사과를 듣고 느끼는 감정은 상반된다. 


You-message(너를 중심으로 상황이야기)
"00아 아까 엄마가 화내서 미안해, 그런데 00 이가 위험하게 행동하니까 다칠 것 같아서 걱정돼서 그랬어."

I-message(나를 중심으로 상황이야기)
"00아 엄마가 화내서 미안해. 어릴 때 00 이가 넘어져서 크게 다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엄마가 너무 속상했거든, 그래서 혹시나 점프하다가 그때처럼 다칠까 봐 걱정됐어."


  가만히 보면 나도 인간관계에서 진짜 감정사이에 숨은 가짜감정의 대표적인 '화'를 낼 때가 많았다. 내가 화를 내는 이유는 사실 서운함이나 걱정스러움에서 오는 경우가 많았다. 서운하다고 혹은 걱정했다고 얘기하기가 어려워서 내가 화를 낸 건 다 니 탓이야라고 말했을 때 대부분 싸움으로 번졌다. 내가 원한 건 이게 아닌데 소중한 사람과의 관계에서 내 진짜 감정을 이야기하는 방법을 잘 몰랐다. 


  딸이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엄마 나는 엄마가 화낼 때 마음이 슬퍼요." 고작 5살인데 이렇게 말하는 아이가 대견스럽게도 하고 미안함이 울컥 올라왔다. "맞아 엄마여도 슬플 것 같아. 엄마가 화내서 많이 미안했어. 걱정된다고 말하면 되는데 엄마가 화를 냈지? 다음부터 엄마가 차분히 알려주도록 노력할게."라고 사과하자 아이는 밝게 웃으며 나에게 안긴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이가 내 딸이라니 난 참 복도 많다 싶다. 

작가의 이전글 똑똑하게 듣기 - 경청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