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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원 Sep 19. 2023

프레임에 갇힌다는 것

속지 말자 어느 것에도

돈 잘 버는 가장, 살림꾼, 인정받는 회사원, 착실한 학생


이 중 어느 것을 선택하고 싶냐고 묻는다면 모두 거절하고 싶다.


하나의 프레임에만 속하고 싶은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프레임에 속하는 것이 왜 싫은 걸까?


프레임 문제를 아래 비교대상에서 느껴보자.


착실한 학생 프레임을 씌우고  


'착실한 학생인 내가 시험기간에 스트레스를 못 견디고 친구들과 놀고 다음날 시험공부를 다시 시작했다."에서 무슨 생각이 드는가?'


"한심해" "철없다" "생각 없네"




그렇다면 프레임을 다시 끼워보자.


착실하지만 놀 줄도 아는 학생 프레임을 씌우고 질문을 바꾼다면 느껴지는 생각은 뭘까?


'착실하지만 놀 줄도 아는 학생인 내가 시험기간에 스트레스를 못 견뎌 친구들과 놀고 다음날 시험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잘했어" "현명해" "그럴 수 있지"




이렇듯 프레임은 중요하다.


내가 만든 하나의 프레임에 끼워 넣다 보면 나를 부정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다.


프레임 속에 맞는 행동을 해내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해도 성과가 나지 않을 때도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프레임에 맞는 행동을 해서 인정을 받더라도 더 잘 해내야 한다는 불안감으로 만족하지 못한다.


결국 하나의 프레임에 갇힌 사람은 자신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어렵다.


프레임 속에 내가 전부인 것처럼 말이다.




나는 인간의 욕구 중 인정욕구의 비중이 큰 사람이었다.


그래서 타인으로 하여금 인정받고 싶은 과한 욕구가 나를 괴롭혔다.


쉽게 말해 휴식할 때 휴식할 줄 모르고 열중할 때 열중할 방법을 몰랐다.


그래서 괴롭고 불안했다.


돌아보니 난 일 잘하는 사람이라는 프레임에 날 가둔 것이다.


프레임에 가둬서 소소한 행복을 누리지 못했다.


좀 더 주변을 돌아볼 걸, 충분히 웃고 즐거워할 걸 하는 아쉬움이 있다.




지금은 과거의 후회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프레임을 점검한다.


특정 프레임에 날 가두고 집착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난 가정주부라는 하나의 프레임을 갖고 있다.


하지만 가정주부일 뿐 1등 살림꾼이 되고 싶은 마음은 단 1도 없다.


나는 누군가의 친구, 여자로서의 나, 일을 하는 나 다양한 프레임 속에서 균형감을 찾으려고 한다.


어느 하나에만 치우쳐서 살지 않기 위해 다양한 책도 보고 살림도 하고 글도 쓰고 친구들과 만나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하나에서 불만족을 느껴도 나에게 큰 타격감을 주지 않는다.




혹시 누군가에게 푹 빠져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본 적이 있나?


난 사랑하는 사람에게 메시지를 보낸 후 다른 것에 집중하지 못하고 기다림에 지쳐 본 적이 있다.


그러나 늘 그런 연애를 반복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균형이 깨졌다고 볼 수 있다.


균형감이 깨졌다는 것은 불균형 즉 하나의 프레임에 집착하고 있다는 뜻이다.


집착의 결과는 후회, 슬픔, 이기심을 만든다.




하나에만 집착하는 프레임을 거두고 유연하게 나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어떨까?


사랑하는 사람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하염없이 기다리는 연애는 하지 않게 될 것이다.


사랑하는 마음의 정도에는 차이가 없다고 본다.


삶의 균형감을 누가 더 잘 찾아서 살아가고 있느냐에 따라 연락의 기다림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다를 뿐이다.



메시지를 보낸 후 나의 태도는 간단하다.


메시지를 보내고 내가 하고 싶은 일 해야 하는 일에 집중을 하면 그만이다.


연락을 기다리게 만드는 사람이라면 카톡소리는 무음으로 해놓고 당장 카톡창을 닫기를 바란다.


사랑하는 이에게 연락에 집착하는 사람이라는 프레임을 만들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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