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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원 Oct 31. 2023

멋있게 나이를 먹는다는 것

70대 노인과 80대 노신사 

떨어지는 낙엽이 쓸쓸하고 외롭지만 역설적으로 따뜻하게 느껴지는 하루였다. 


가을은 좋아하는 계절이지만 가을바람이 깊숙이 스며들 때면 외로움이 한층 더 깊어진다. 


플라타너스 나무가 즐비한 거리, 따뜻하면서도 차가운 바람에 나뭇잎이 흩날리며 바닥에 쌓여있다. 

 

바스락 거리는 나뭇잎을 밟으며 올해의 가을도 무사히 지나고 있구나 느낀다. 


더불어 한 해를 마무리할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구나 생각한다. 



가을바람에 취하며 걷다가 자주 가는 카페에서 자리를 잡고 책을 폈다. 


겨우 한 장을 읽었을 뿐인데 책 내용에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옆자리 앉은 노신사에게 눈길이 갔다. 


깨끗한 구두에 정갈한 중절모, 깔끔한 옷차림새에 검버섯 가득한 80대 정도 되어 보이는 노신사는 아주 잠깐의 시간이지만 멋있음이 뿜어져 나왔다. 


맞은편에 함께 자리한 노신사는 70대 정도 되어 보이는 보다 젊은 노인이었다. 


5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70대의 노인은 전화를 세 차례나 받았다. 


전화가 올 때마다 대화를 하던 중간에 전화가 걸려오면 앞에 계신 노신사에게 양해를 구하지 않고 바로 전화를 받았다. 


처음엔 '그럴 수 있지'에서 세 차례 연달아 양해를 구하지 않는 모습에서 '배려가 없네'라고 느껴졌다. 



세 번이나 반복되자 노신사는 웃음끼가 사라지며 가만히 침묵하며 통화하는 모습을 지켜보셨다. 


통화가 끝나고 나서도 사과를 구하지 않았다. 


70대 노인은 대화를 하면서도 핸드폰에 눈을 떼지 않았다. 


그 사정을 다 알 수는 없으나 대화 중에 핸드폰을 자꾸만 들여다보는 모습은 내가 볼 때 상대를 존중한다면 나올 수 없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노신사의 반응은 놀라웠다.


"바쁜 게 좋은 거야. 나이가 들어도 바쁘게 무언가를 한다는 게 얼마나 좋은 거야."라고 말하며 웃음을 보였다. 


그 와중에 70대 노인에게 또 전화가 걸려왔고 이 질문에 대한 답도 하지 못한 채로 전화를 받았다.


나는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70대 노인의 태도가 불편한 감정을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노신사는 고개를 약하게 끄덕이며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는 맞은편에 놓여있던 커피잔 위에 휴지를 덮어두었다. 


의아했다. '왜 저렇게 덮어두시지?' 가만히 지켜보았다. 


통화가 끝나고 70대 노인이 커피잔을 보자 "식을 것 같아서 덮어뒀어. 따뜻해야 맛있잖아. 한 모금 들어요."라고 말했다. 



마음이 따뜻해졌다. 


저런 배려는 삶을 살아갈수록 무뎌지는 배려라고 느꼈다. 


무례한 상대의 태도에 마음은 상했지만 티 내지 않고 상대를 배려하는 고차원적인 저 배려는 매우 많이 닮고 싶은 모습이었다. 


나이가 들면 대접받고 싶고 공경받고 싶은 심리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당연하다고 느낌과 동시에 일부 노인들의 무례함이 난 늘 불편했다. 


그런데 오늘 본 노신사가 보인 상대방에 대한 배려는 감동이었다. 


나도 나이가 든다면 저렇게 들어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 만큼 닮고 싶은 모습이었다. 



70대 노인은 내가 카페를 나서는 순간까지 통화를 멈추지 못했다. 


신기한 건 80대 노인은 핸드폰을 단 한순간도 꺼내지 않았다. 


그저 커피를 마시고 주변을 둘러봤다. 


물론 둘의 관계를 난 잘 알지 못한다. 


갑을 관계일 수도 있고 무례함을 이해할만한 관계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례함을 이해한다고 무례한 행동에 대해 사과를 구하지 않는 태도는 상당히 불쾌하게 느껴졌다. 



난 다소 손해를 보는 것 같아 보여도 80대 노신사가 되고 싶다. 


손해를 보더라도 내가 보이는 배려로 상대를 편안하게 또 주변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사람말이다. 


노신사를 보며 잘 나이 들어간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또 짧은 시간이나마 내 주변사람들에게 배려를 받기보다 배려해 주는 기쁨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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