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트랑 여행을 계획했지만 일단은 말 뿐이었다. 아직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는 이유로당장 눈앞에 닥친 상황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행 준비에 게으름을 피우고 있었다. 어떻게든 되겠지, 나중에 다 몰아서 하지뭐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그러면서도 항공권은 미리 예매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내심 마음 한 편이 불편했다.
마침 혜수에게 연락이 왔다.
"항공편 알아봤는데 비용은 왕복 30만 원이면 충분할 것 같아. 나는 김해공항에서 출발할 건데 나트랑 깜란 공항에서 만나는 거지?"
아뿔싸. 내가 간과했던 것은 우리의 위치. 나는 대학시절부터 수도권에서 생활했기에 당연히 출발지를 인천공항으로 믿고 있었고, 혜수가 부산에서 15년간 살아왔다는 사실을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순간 이유모를 걱정과 당황스러움이 앞섰다.
"안돼! 우리 집에 와서 며칠 있다가 인천공항에서 같이 가자!"
나는 괜한 투정을 부렸다. 유도리 있지만 완곡한 그녀는 5시간이면 깜란 공항에 도착할 시간인데, 부산에서 수도권으로 이동하는데도 5시간이 걸리므로 같은 곳에서 출발하는 것은 매우 비효율적이라고 나를 다독이기(?) 시작했다. 또한, 이번 일을 통해 내가 더욱 성장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며 나를 그럴듯하게 설득했다. 그리고 마지막 한 방이 날아왔다.
"혼자 가는 게 걱정되면 니가 부산으로 올래?"
그녀의 합리적이면서 단호한 의견 앞에 나는 인생 최초로 비행기를 혼자탈 수 있는 영광스러운 기회를 얻게 되었다. 자립심이 부족한 내가 한 뼘 더 성장하는 기회가 되겠지, 생각하며 스스로를 단련시켰다.
알고 봤더니 내가 혜수보다 두 시간이나 먼저 공항에 도착하므로 그녀의 도착을 기다려야 했다. 영겁 같은 두 시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나름 계획성이 투철한 나는 보조배터리를 아주 넉넉히 챙겨두었다.
깜란공항 입국장을 나와서 바라본 풍경
깜란 공항에 도착하면 시원한 카페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 하면서 시간을 보내야지, 계획했다. 그런데 웬걸, 공항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깔끔했지만 훨씬 규모가 작았고, 오픈형(?)이어서 별생각 없이 입국장을 통과해 밖으로 나왔더니 말 그대로 그냥 '밖'이었다.
더위를 식힐만한 카페는 없었고, 눈앞으로 베트남의 아름다운 하늘과 풍경이 들어왔다. 당황스러웠지만 비로소 마음이 트이는 기분이 들었다.
일단 옷부터 갈아입고 여행객으로써의 채비를 마쳤다. 한국의 쌀쌀한 바람을 피하고자 걸치고 온 긴 옷가지를 벗으니 이제야 내가 베트남에 여행을 왔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캐리어를 끌고 다니며 하늘을 보고 나무를 보고 공기 냄새를 맡았다. 머릿속이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영겁 같을 줄 알았던 두 시간이 꽤 근사하게 느껴졌다. 짧지만 의미 있을 나의 3박 4일에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