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수박의 계절이 왔다. 나는 쿠팡 프레쉬로 주문한 수박을 잘라 여자친구와 나누어 먹었다. 좀 이른 수박들이 으레 그렇듯 당도가 덜하지 않을까라는 우려와 달리 수박은 아주 달고 맛있었다. 다만 걱정은 남은 수박이었다. 대충 랩으로 감싸 냉장고에 넣어놓을까 하다가 마음을 다잡고 바르게 잘라 락앤락 통에 넣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어릴 적 기억들이 새록새록 피어올랐다.
어릴 적 우리 집에서는 수박을 사면 반으로 갈라 수저로 퍼먹었다. 시장에서 떨이로 사 온 수박이었던지라 달지도 않아서 설탕을 뿌려가며 열심히 파먹었고 남은 수박은 대충 랩으로 감싸 냉장고 안에 넣어두었다. 크레이터처럼 파인 수박과 그 안에 고여있는 침범벅 설탕범벅 수박물을 생각하면 솔직히 비위생적이기 그지없으나 그 시절 나는 그런 생각도 없었다. 그게 우리 집에서는 너무 당연한 것이었으니까.
그랬던 내가 충격을 받게 된 계기는 유복한 친구네 집에 놀러 갔을 때였다. 팬시한 브랜드 아파트에 살던 그 친구의 집은 아파트 이름과도 걸맞게 깔끔하고 정갈했다. 다 쓰러져가는, 좁아터진 오래된 빌라였던 우리 집과는 심하게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친구의 어머니는 집 안에서도 깨끗한 옷을 입은 채 우리들에게 먹으라며 간식들을 내주셨다. 물론 깔끔하고 비싸 보이는 모든 간식들이 놀라웠으나 그중 나를 가장 놀라게 했던 건 바로 락앤락 통에 반듯하게 잘라 넣어놓은 수박이었다.
저렇게 잘 정리하여 보관하면 무엇보다 위생적이며, 편리하고 깔끔했다. 게다가 그 수박은 따로 설탕을 뿌리지 않아도 아주 시원하고 달았다. 어린 내 눈에도 그건 누가 뭐래도 정답으로 보였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내 생각은 '오답'인 우리 집의 방식으로 옮겨갔다. 친구의 집과 우리 집은 무엇이 다른 걸까. 부모님의 소득? 재산 상태? 사는 집의 가격? 결국 정답은 삶의 여유 차이일 거라고 생각했다. 결국 돈을 벌어야 하는구나. 그게 어릴 적 나의 답이었다.
지금의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사실 어릴 적 우리 집에서도 마음만 먹으면 수박을 잘 잘라 보관해 놓을 수 있었다. 설탕을 뿌리더라도 락앤락 통 안에 뿌려놓으면 훨씬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다만 우리 집에서는 그런 귀찮은 짓을 하지 않았다. 수박을 잘 잘라 보관해 놓는다는 것이 굉장히 번거로운 일임은 사실이니까, 굳이 그런 번거로움을 감수하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친구네 집에는 수박 말고도 수많은 번거로움들이 곳곳에 있었다. 오와 열을 맞춰 잘 정리된 찬장, 먼지 한 톨 굴러다니지 않는 바닥, 물때 하나 끼지 않은 화장실까지. 그리고 그런 번거로움을 감수했기 때문에 그 친구네 가족은 높은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거라고, 지금의 나는 생각한다.
번거롭지만 삶의 질을 높이는 수박 깍둑썰기를 하며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이 작업이 끝나면 또 번거로운 바닥 청소를 해야 했다. 고양이 털이 굴러다니는 지금의 마루 바닥은 높은 삶의 질이라고 보기는 어려우니까. 고양이 털의 범인이 내 다리에 몸을 비볐다. 일순간 삶의 질이 올라간 게 느껴졌다. 수박 조각들은 나름 열심히 잘랐음에도 그다지 반듯하지 않았다. 이건 또 내가 어쩔 수 없는 간극이로구만. 수박을 락앤락 통에 옮겨담으며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