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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비디 Jul 10. 2023

나도 내가 별로라는 걸 안다.




솔직히 말하자. 나도 내가 별로라는 걸 안다. 굳이 외적인 이야기를 하지는 않겠다. 내 외모의 단점들을 집어낼수록 스스로만 비참해질 뿐이니까. 게다가 '자기 외모에 완전히 만족하면서 사는 사람이 누가 있겠냐'라는 지적도 많은 부분 인정하니까. 하지만 나를 슬프기 하는 건 내가 내적으로도 딱히 뛰어나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 나는 내적으로도 별로다. 어쩌면 내적으로는 더 별로다.


일단 잘하는 게 없다. 누군가에게 내세울 만한, 나 정말 이건 잘한다라고 할만한 게 전혀 없다. 음치, 박치, 몸치에 저주받은 운동신경까지 더해져 대부분의 취미생활에 거절당했다. 그렇다고 공부를 특출 나게 잘한다거나, 말을 잘한다거나, 유머가 있다거나, 미각이 뛰어나다거나 하는 것도 없다. 가끔 신이 나를 만들 때 실수를 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어떤 일본 작가 말마따나 나는 무채색다.


예전 어느 모임에서 각자 본인 인생 최대의 업적에 대해 이야기하게 된 때가 있었다. 책을 출간해 본 사람, 세계여행을 다녀온 사람, 밴드활동을 하는 사람, 4개 국어를 하는 사람... 모두가 멋있게 본인 이야기를 할 때 나는 할 수 있는 얘기가 없었다. 그래서 "어... 중학교 이후로 부모님에게 돈을 받지 않은 거요...?" 따위의 말이나 해야 했다. 모두들 착한 사람들인지 아주 대단하다고 리액션해 주는데 얼굴이 다 화끈거렸다.


그나마 심성이라도 착할까? 아니, 나는 일상생활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내 저렴한 밑바닥을 하루가 멀다 하고 목도한다. 과거 나는 정유 관련 주식에 투자 중이었다. 주가가 지지부진하던 어느 날,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졌다. 전쟁 속보를 보자마자 내가 한 생각은 '아 그럼 유가 올라서 내 주식도 좀 오르겠다'였다. 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사이코패스 같은 생각인지. 지구 반대편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집을 잃고 모든 걸 잃어 괴로워하고 있는데 나는 내 주식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 나 자신에게 비참할 정도로 실망한 순간이었다. 그렇다, 나는 정말 심성까지도 별로인 사람이었다.


이런 나의 모습을 자존감의 문제로 연결하던 때도 있었다. 나는 왜 이렇게 못났을까, 하는 생각. 다행히도 지금은 거의 그러지 않는다. 이런 나 자신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도 있고, 무엇보다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도 사실 별로라는 걸. 모두들 열심히 포장하고 있지만 한 꺼풀 벗겨보면 그 안의 못난이들이 얼굴을 내민다는 걸. 다만 나 자신을 가장 잘 아는 게 나이기 때문에 내가 가장 못나 보이는 것뿐이라는 걸.


그렇다고 내가 별로인 채로 살겠다고 체념한 것은 아니다. 그나마 좀 덜 별로인 사람이 되고자 항상 노력한다. 습득한 지갑은 항상 경찰서에 가져다주기,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지 않기, 착한 사람이 되기, 책을 꾸준히 읽고 깊이 고민해 보기, 그리고 지구 반대편에 사는 아이에게 매달 작은 돈을 보내기. 이런다고 내가 멋진 사람이 될 수야 없겠지만 나는 그나마 덜 별로인 사람으로 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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