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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의투영 Oct 07. 2024

나에 삶의 조각들

53. 여름이 끝이 났다.

 유난히 더웠던 2024년의 여름이 막을 내렸다. 타들어가던 식물처럼 내 마음도 타들어가던 9월을 지나

10월을 맞이했다. 축제의 계절 가을. 나의 작기도 시작되었다.  어린 모종이던 고추나무는  어느새 자라나 꽃을 피우고 열매를 키울 준비를 한다.  새로 옮긴 곳에서의 일은 순조롭지 못했다. 이 번에는 정말 망하면 안 된다. 낡은 난방기계를 버리고 새로 구입했다. 땅의 특성도 파악하고 보온재도 바꾸고 만반의 준비를 쳤다.

변수가 일어나지 말기를. 비가 많이 내리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내년이면 칠순을 맞이하는 우리 엄마를 모시고 가족들과 여행을 갈 예정이다. 돈 걱정 안 하고 즐겁게 다녀오고 싶다.


오랜만에 여유가 생겼다. 늘 시간에 쫓겨 다니는 것 같았던 나의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이제는 하는 일에 좀 더 집중하고 취미 시간도 가져 보려고 한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그만큼 자유로워지기는 했다. 그동안은 아이를 남에게 맡긴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엄마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여겼다. 아이를 내가 젤 잘 아니까..

장애 아이와 무엇을 하든 사람들의 시선을 느껴야 했지만 해맑은 아이 웃음이 나를 일으켜 세웠다.

이제는 스스로 뭐든 할 수 있는 아이로 자라나 학교에서 친구들을 많이 도와준다고 한다.


아이가 스스로 뭔가를 해 낼 때까지 치치지 말자고 다짐했던 지난 시간 속에서 많이 강해지고 단단해졌다.

노력하는 만큼 좋은 결과로 돌아왔다. 지금은 웃으며 말 수 있을 것도 같다. 아직은 말하다 보면 눈물이 나기도 한다. 그만큼 고대고 마음 둘 곳이 없었다. 억지로 라도 많이 웃고 많이 재잘거려야 했던 지난 시간들 속에 아이들은 많이 성장해 있었다. 지금은 행복하다. 후회는 없으니까.


8월에 장애인활동 지원을 신청했다. 아이 학원만 데려다줘도 좋겠다 싶어서다.

일하다가 중간에 나와야 하니 일은 해도 해도 성과가 좋지 않았다. 아버지께서 갑자기 건강이 나빠지시면서 엄마는 일자리를 잃었다. 혼자서는 하우스를 하시기 벅찰 것 같아서 사촌 오빠에게 임대를 해주었다.

아직은 일을 하고 싶다는 엄마. 다른 곳에 고추 따러 가겠다고 하셔서 나 좀 도와 달라고 말씀을 드렸다.

어차피 일 해 줄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에 숙연자 대우를 해드리며 비용을 드리고  있다.

아프거나 일이 있을 때 쉬게 해 드릴 수 있을 테니까..

남편은 엄마가 도와주시는 것이 좋기도 하면서 눈치를 많이 본다. 40년 동안 농사를 지어오신 엄마의 눈은 매섭다.  방제는 제때 했는지, 영양분은 잘 주고 있는지, 수분이 부족하지는 않은지 등에 관해서 사위에게 묻는다. 그게 꼭 사감선생님 같기도 하달까?


9월 말에 장애인 활동 지원에 선정되었다는 문자를 받았다. 10월부터  한 달에 60시간을 이용할 수 있다. 3년간.

다음에는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민원이 해결되었다.

그동안 치료센터에 다니면서 친분이 생긴 활동보조 선생님께 부탁을 드렸다.

아이와 얼굴도 익혔고 괜찮을 것 같았다. 어쩌다 보니 1년을 지켜보면 이야기를 나눈 것 같다.

이제 5시까지 학원에 아이를 데리러 가면 된다.  주말을 제외한 매일 2~3시간을 차에서 기다려야했었다.

엄마집이 가까워서 자주 들러기도 하고 책도 보고 나쁘지는 않았지만 일할 시간이 부족했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 하고 싶었던 것 들에 애정을 쏟아 볼까 한다. 일도 열심하고 그림연습과 운동도 좀 해야겠다. 먹는 거에 비해서 뱃살이 빠지질 않는다. 집중할 때 빼고는 다 움직이고 있는데 일하고 운동은 별개인 것이 분명하다. 왜 살만 찌는 건데.. 복근을 만들어야 할까?


엄마 집 근처에는 못이 하나 있다. 못을 따라 잘 조성된 공원. 아침부터 저녁까지 운동하는 사람들이 많다.

걸어서 한 바퀴 도는데 1시간 정도 걸린다. 주위도 잘 꾸며져 있어 산책하기 좋다.

청바지에 반팔 흰색 티셔츠, 초록색 니트 조끼에 운동화. 걷기 좋은 복장이지만 산책을 하려고 온 것은 아니었다. 지나가다 화장실이 급해서  공원 주차장에 주차를 했다.

엄마집까지 가도 되지만 뭐에 이끌렸는지 걷고 있었다.

가을이 왔다는 것을 실감한다. 아침저녁으로 일교차가 커서 작은 아이는 감기에 걸렸다.

차에서 내리면 비 오듯 흘러내리던 땀도 사라졌다.  뽀송뽀송한 상태가 유지된다.

나무들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해 발걸음마저도 가볍게 느껴진다.

간간히 못에서 분수가 올라고 오고 수다삼매경인 아주머니들, 강아지와 산책하는 사람, 손 잡고 걷는 노부부, 아기와 산책하는 엄마, 황토 맨발 길을 걷는 모녀.

모두 평화롭게 보인다. 풍경사진도  찍고 예쁜 꽃도 보고 참 좋다. 그동안은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가까이 있어도 가지 못 했다. 나무들도 서서히 물들어 가고 있다.  

곳곳에 상사화가 많이 피어있어서 빨간색이 포인트가 되어준다. 오래된 나무와 빨간 상사화가 너무 예뻐서 나름 구도를 잡아가면 여러 장을 찍었다. 그중 마음에 드는 한 장을 건졌다.

사진 찍는 것도 재미있고 즐겁다. 사진도 배워 보고 싶지만 돈이 문제다. 호주머니가 가벼워 일을 해야 현상이 유지된단 말이지. 서글프다. 언제쯤 돈 걱정 안 하고 살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들과 사색을 하다 보니 벌써 2시간이 지나 있었다. 오랜만에 여유가 좋긴 하다.

자주 와야겠다. 큰 아이에게 사진을 보내 주었다. 다음엔 같이 가자고 했다.


그동안 꾹 누르고 있던 하고 싶은 것들이 내 안에서 밖으로 흘러넘치는 것 같다. 나란 여자는 이렇게 욕심이 많았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다.

열심히 일해서 돈 많이 벌고 싶다. 계획했던 것 들은 돈이 무한대로 들 거 갈 것 같은데. 언제 그 꿈에 도달할 수 있으려나..

최선을 다한다면 좋은 결과로 돌아온다는 것을 아이를 키우면서 배웠다.

그래서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가보려고 한다. 쭉 직진하다 보면 좋은 결과가 나를 향하고 있을 것 만 같다.  인생 있나 싶다가도 나를 믿어 보기로 했다.


힘들어도 가보자고~


(발행하고 오타 발견 수정하다가 마우스 옆 버튼이 눌러져서 수정한 글이 날아가 버렸다.

낮에 적어둔 임시저장 상태의 글로.. 깊은 빡침으로 밤에 소리를 지를 뻔했다.  발행취소를 하고

다시 기억을 돼 살려야 했다. 마우스 당장 갔다 버리고 싶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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