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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할인간 Jan 24. 2024

나에 대한 고찰

18. 첫 독서 모임 가는 날

 나의 작은 변화의 바람을 첫 도서 모임으로 시작했다. 책을 읽을 이유를 만들다 보면 미루지 않고

책 읽기가 될 것 같아서 도전했다.


학창 시절에 독서 모임은 너무 토론적이었다면 성인이 되고 어느 정도의 사회 경험치를 쌓다 보니

더 이야깃거리가 풍성해지고 와닿는 것이 많았다.

책을 읽으면서 나의 경험치, 지나온 시간들이 또다시 떠 오르게 했고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던

것 들도 충분히 그럴 수 있었겠다가 되기도 했다.


 독서 모임 첫날이라서 오늘 일정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날씨도 추워지고 고추 물량도 확 줄어 버렸다. 농산물 가격은 팍팍 올라가고 있지만 감질 날만큼만 물량이 나왔다.

이때 많이 나와야 주머니가 든든해지지만 다들 똑 같이 없으니까 시세가 오르는 거다.

손 놓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는 없다. 나무 손질도 하고 풀도 뽑아야 한다.

필요 없는 도장지들도 따내고 곧고 바른 고추를 제외하고 태생부터 허리가 휘거나 꼬리가 낚시 바늘처럼

휜 고추는 더 크기 전에 따버린다.


이런저런 일들을 하다 보니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11시 50분을 알리는 알람 소리가 들렸다.

점심을 준비할 시간이다. 알람을 맞춰 놓고 일하지 않으면 때를 놓치곤 했다.

일에 몰두하다 보면 배꼽시계도 고장이 나는 걸까? 한 참 뒤 시계를 보면 2시가 넘어가 있었던 적이 있다.

박스에 오이맛 고추를 따서 가지런히 담다 보면 그 재미에 푹 빠지 곤했다. 박스가 다 채워지면 주머니도 두둑

해지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그 걸 보고 돈을 딴다는 우스개 소리를 하기도 했다.

어떨 때는 단순노동이 익숙해져 눈은 부지런히 딸 고추를 포착하고 손은 자동으로 고추를 딴다.

머리는 공상이나 여러 가지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멀티가 안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가끔은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아이들 둘은 모두 졸업을 해서 3월 신 학기가 시작될 때까지 방학인 셈 인다.

점심을 다 먹고 약간의 휴식을 취한 뒤 오후 작업을 마저 이어서 한다. 파종해서 키운  파파야 모종들에게

물을 준지 한 참된 것 같아서 퍼뜩 정신을 차리고 달려가본다.

역시나 아래 잎부터 말라비틀어지고 새순은 그나마 멀쩡했다. 정신을 어디에다 두고 사는 건지 맛있는 품종이라서 잘 키워 보겠다고 그렇게 기대를 하면서 파종해 놓고..

말라죽지 않은 걸 다행이라 생각해야 될 지경이다.  기록을 잘해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물을 주고 옆 화분에서 은은하면서 상쾌하고 시원한 향기가 코를 자극했다.

하얗고 탐스러운 장미가 피어 무게에 못 이겨 꺾여 있었다. 키가 훌쩍 커버려 낮추어 주려고 했는데 장미 봉오리가 있어서 자르지 못하고 꽃 피면 보고 잘라야지 했었다.

꽃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꺾일 거라는 계산을 하지 못한 것이다. 몇 송이는 꺾여서 여러 날을 지나서 말라가고 있었고 피지 못한 봉오리는 겨우 목숨을 연명하고 있는 것 같았다.

독서 모임 갈 때 책방지기 작가님께 선물해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온도가 떨어지면서 어둠이 서서히 내려앉고 있었고 천장 스크린(보온 덮개)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온도 설정으로 자동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일을 끝 내라는 알람과 같다.


장미를 자라서 챙겨 들고 집에 들어와 남편과 아이들 먹을 저녁 준비를 해두었다.

바쁘게 움직이다 보니 조금 여유가 있었다. 씻고 화장도 하고 책과 가방도 챙겼다.  생각보다 일찍 돌 안 온 남편과 아이들에게 저녁을 차려 주었다.

식사가 끝나고 남편은 데려다주겠다는 제안을 했다. 데려다주고 데리러 다시 와야 하는 번거로운 일 같아서

피곤하지 않냐고 물었더니 괜찮단다. 그래서 그러라고 했다.


독립서점에 도착해 문을 열고 들어갔던니 책방 지기 작가님께서 반겨 주셨다.

가져간 꽃을 내밀었더니 영광이라면서 환한 미소를 지어 주셨다.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레몬차를 한잔 시키고 다음 달 모임 책과 책방지기 작가님 신간 도서도 함께 구입했다.

그리고 책을 내밀면서 사인을 해달라고 했다. 보통은 책 쓰신 작가님을 만나기 쉽지가 않은데 가까이 계시고

소통도 할 수 있어서 무척 좋았다.  

'글벗, ㅇㅇ님께'로 시작하는 글이 너무 좋아서 몇 번을 읽었는지 모르겠다.


오늘의 독서 모임은 책방 지기 작가님 포함 5명으로 이루어졌다.  처음 보는 두 분과 나의 에세이 쓰기 수업에서 함께 하신 한 분이었다. 그중 한 분은 독서 모임의 고인 물이라고 하셨다.


고명재 시인님의 산문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를 읽고 마음속에 와닿는 구절을 이야기하고 떠오르는 생각이나 느낀 점을 이야기하기로 했다.

연관 됐듯 아니 든 그때 떠오르는 생각을 자유로게 말하고 공감하며 다른 사람의 생각도 알 수 있어서 좋았던 시간이었다. 고명재 시인님의 북토크를 다녀온 후라서 더 이야기가 풍성했던 것 같다.

고명재 시인님이 추천하신다는 시도 함께 읽으며 행복 한 마무리를 할 수 있었다.

다음 달도 기대가 된다. 왜 즐거운 시간은 항상 짧게만 느껴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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