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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 Sujin Jun 11. 2024

서아 #12 탄의 언어

서탄

강아지 이름이다. 세대주가 서 씨라 이 아이도 서 씨 성을 가진 강아지가 되었다. 탄이가 우리 집에 오게 된데 에는 사연이 있다. 친정 집 개가 새끼 두 마리를 낳다 죽었는데 새끼 한 마리도 죽고, 살아남은 아이가 탄이다. 당시 친정아버지 다리가 편찮으셔서 어머니가 강아지까진 키우기 힘든 상황이었다. 4남매 회의 끝에 생후 6일 차 아기가 우리 집에 오게 되었다. 회의라기 보단 동생들은 아직 어린아이들을 키우는 상황이라 맏이인 내가 어쩔 수 없이 탄이를 데려와 시간 맞춰 분유먹이고, 이유식 먹여 가며 키웠다. 지금은 만 3세, 아주 예쁜 얼굴과 날렵한 몸매에 성격은 정말 까칠한 아가씨가 되었다. 


 탄이를 보면서 배우는 덕목은 의리이다. 매 번 혼자 집에 남겨지는데도 엘리베이터 소리만 나면 현관으로 뛰쳐나가 꼬리가 떨어질 듯 가족 구성원 한 명 한 명을 모두 반겨준다. 화장실에 누군가 들어가면 문지기라도 되는 양, 문 앞 발매트에 누워 그 앞을 딱 지키고 있다. 이런 의리는 한 시간씩 목욕을 해대는 아들내미에게도 마찬가지다. 엄마인 내가 혹 딸, 아들아이 등짝이라도 한 대 때릴라치면 나를 향해 짖어대는 통에 난리가 난다. 매일 같은 사료와 하루에 한 두어 번 주는 간식 외에 딱히 챙겨주는 것이 없는데도 이렇듯 한결같이 과분하게 우리 인간들을 사랑한다. 탄이가 사는 세상엔 배신이나 변절, 변심 따윈 애초에 없는 듯하다. 6 킬로그램 남짓한 그녀가 가진 기개의 크기는 헤아릴 수 없다.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기에 함께 갔던 장소 중 어디가 좋은지, 가장 좋아하는 간식이 무엇인지 알 길이 없어 답답하다. 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은 고작 눈을 빤히 쳐다봐 주는 것뿐이다. 과분하게도 그녀의 눈은 항상 사랑과 위로, 공감으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탄이와의 눈 맞춤은 오히려 위안이다. 나의 소리는 단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귀를 쫑긋 세우는 모습에서 나를 향한 탄의 지지를 확인한다. 촉촉하게 젖은 콧망울을 들이대며 킁킁 구석구석 상대의 체취를 맡을 때는 그의 건강을 염려하는 듯하다. 매일 홀로 집에 남겨두는 인간이 미울 법도 한데, 외출에서 돌아올 때면 현관문이 열리기도 전부터 온몸으로 가족들을 맞이한다. 격정이 넘치는 꼬리와 애끓는 듯 끙끙대는 목소리, 과감하게 퍼붓는 탄의 키스 세례에 인간의 미안함은 배가 된다.


 사랑해. 조심해. 미안해. 고마워. 보고 싶어....  이에 비하면 인간의 말은 얼마나 무미건조한가.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탄이를 안쓰러워했던 적이 못내 멋쩍기만 하다. 매 번 온몸으로 열렬하게 성토하는 탄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한 것은 정작 우리가 아닌가? 


  탄. 인간이 말을 사용하면서부터 오해가 생겨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너의 눈, 귀, 코, 혀와 꼬리는 단 한 번도 거짓을 이야기한 적 없고, 표현에 부족함이 없으니 말이다. 정확하고 바른말, 효과적이고 격식에 맞는 고운 말을 사용할 것을 부단하게 교육받는 인간들 사이에 오해와 논쟁이 끊이지 않음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나는 잠시 입을 닫고, 내 다리 언저리에 자리 잡고 누운 널 내려다본다. 너의 눈동자를 쫓는 내 눈빛은 좀 더 깊어지고, 내 손은 널 쓰다듬기 시작한다. 무릎을 꿇고 이내 너의 코에 입을 맞춰 본다.  '탄, 잘 자. 좋은 꿈 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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