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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 Sujin May 20. 2024

서아 #8 300자로 날 소개하라고?

300자로 날 소개하라고? 브런치 이것들 배짱도 좋다. 내가 살아온 세월이 얼만데.. 겨우 300자? 어처구니없는 조건에 처음엔 씩씩거렸다. 300자면 뭐 간단하게 끝낼 수 있을 거란 생각도 들었다. 웬걸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단어를 딱 300글자 안에 담아 넣으라니.. 이걸로 얘네가 나를 다 알 수 없을 텐데.

브런치팀이 300글자 안에 숨겨진 나를 알 수 없을 거란 걱정은  순전히 나의 오지랖이었다. 문제는 내가 300글자 안에 정말 나인 것만 넣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모든 필요 없는 것은 걷어 낼 것. 어렴풋이 나일 거라고 여겼던 것, 나였으면 좋았을 것은 모두 끊어내야 한다. 이 작업은 결국 나라고 굳게 믿고 있던 것들에 대한 의심으로 이어졌다. 정말 나는 누구인가?

고 2 때 악몽이 떠오른다. 변하지 않는 내 모습, 진정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고민을 많이도 했다. 아버지가 지어주시고 타인이 불러주는 내 이름, 이수진. 진정 나일까? 이름은 언제든 바꿀 수 있다. 개명이 쉬어진 세상이다. 어디 이름뿐이랴? 마음만 먹으면 성별도 바꿀 수 있는 세상에 직업과 학력, 국적 이런 건 애초부터 내가 아니다. 매 년 변하는 나이도 나라고 규정할 순 없다. 따지고 보면 내가 아닌 것들에 집착하고 살았다.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살고 있다.

어쩌면 글도 이렇게 써야 하는지 모른다. 불필요한 단어는 모두 걷어낼 것. 별 고민 없이 쓰던 관용적 표현은 내 글이 아니다. 무의미하게 적어 내려가지 않아야 한다. 있어 보이는 글을 쓰고 싶어서 치장하듯 덕지덕지 붙여 쓰던 미사여구도 진정 내 글이 아니다. 멋들어진 표현 몇 개에 의존하고 싶은 마음을 버려라. 철저하게 사유하고 그 사유 속에서 진정으로 하고 싶은 말을 써라. 모든 표현이 독창적일 수는 없겠지만, 너만의 생각은 쓸 수 있을 것이다.

브런치 이것들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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