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Lee Sujin
May 14. 2024
아이 씨!!
지각을 4분 남겨 둔 딸아이를 태운 차 안, 노랑으로 바뀌는 신호등이 영 탐탁지 않은 나는 미처 필터링을 하지 못한 짜증을 뱉어내고 만다. 아직 남은 신호등은 두 개. 이번 신호등이 다시 초록으로 바뀌는 2분이 지나고, 다음 신호에 걸리지 않는다면 1분에서 30초 정도를 남기고 교문을 통과할 수 있겠다.
앞에 남은 차는 6대, 이번 신호는 잘 통과할 것이고, 그다음 신호는 아침 정체를 고려한다 해도 이 도로는 신호 연동이 잘 되어 있으니 꽤 승산이 있다. 이 왠수, 늦어도 8시 25분에는 집에서 나와야 한다는데도 기어이 마지노선인 32분을 딱딱 채워 현관문 앞 엘베를 누르는 재주가 참으로 용하다. 타들어가는 속은 오롯이 에미 몫이고, 이 왠수는 조수석에 널브러지듯 앉아 휴대폰만 주구장창 들여다보며 연신 흥얼댄다. 쳐다보자니 내 속에 천불은 더 활활 타오르지만 그래, 아침부터 저 천진한 평화를 깨지 말아야지 하는 심경으로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분노는 잠시 접어둔다.
이윽고 초록으로 바뀌는 신호등. 속 터지는 내 맘을 소심하게 표출이라도 하듯, 부러 엑셀을 급하게 밟아 rpm을 높이고 부르르르릉 소리를 내본다. 옆자리 왠수님은 이 소리 들었으려나. 흘낏 쳐다보지만 여전히 그녀의 눈은 휴대폰만에만 꽂혀 있다. 하악! 차가 교문 앞에 딱 정차하자마자 7분, 8분여의 나만의 생지옥은 끝이 나고, 그녀는 뒤도 안 돌아보고 교문을 향해 전력질주한다. "야!! 다녀오겠습니다. 인사는 해야지! 썩을!" 드디어 온 울분을 담아 소리 질러보지만 쾅 닫히는 차 문틈으로 '띵! 띵띠리리리~' 학교 종소리만 경쾌하게 들려온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신호등은 아무래도 괜찮다. 가는 길이냐, 오는 길이냐에 따라 이렇게 마음이 간사하게 널을 뛸 수 있을까? 다시 한번 신호등을 올려다본다. 아마도 내 삶에 가장 많은 지시를 내리는 존재가 아닌가 싶다. 규칙, 얽매임, 순응을 질색팔색 싫어하는 나에게 가장 많은 지시를 내리는 존재라니. 끔찍하다. 그래서 고백하건대 난 보는 눈이 없을 때 무단횡단이라는 일탈을 감행하고 마음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쾌감을 느낄 때도 있었다.
으으으으윽. 또 노랑이다. 잠시 멈추라는 지시. 웬일인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만난 노란 신호등은 지시라기보다 이제는 잠시 달리기를 쉬어도 된다는 위안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그제서야 음악어플을 켜고 플레이리스트를 열어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크게 틀었다. 문득 내 삶에도 노란 신호등이 가끔은 한 번씩 켜졌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 아주 가끔은 내 상황이 아닌 외부의 규칙에 따라 조금 쉬어가는 순간도 있었으면 좋겠다. 아들내미가 좋아하는 이무진님의 '신호등' 노랠 들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