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체코에서 1년 유학하기 [1]>에서는 체코 1년 유학을 결심하게 된 경위와 준비 과정에서는 고뇌를 담았다. 이번 편에서는 1년 유학이 결정되고 나서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행동을 했는지에 대해 풀어 보고자 한다.
정부초청장학생 신청서를 메일로 보내고 3개월 후인 5월에 메일이 왔다. 영문을 모르겠지만 음악과에 입학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패닉에 빠진 나는 미술사학과를 신청했다며, 혹시 바꿀 수는 없냐고 물었다. 또 영문을 모르게, 가능하다고 연락이 와서 변경했다. 이 때부터 나는 수많은 영문 메일에 익숙해지게 되었다. 수강신청은 어떻게 하는지, 기숙사 신청은 어떻게 하는지, 기숙사 화장실은 공용인지 아닌지, 부엌은 있는지 등등 모든 것을 모른 채였다. 그래서 모조리 나와 연결되어 있는 국제학생관리부 직원에게 메일로 물어봤다.
나는 거의 물음표 살인마였기 때문에 그 직원은 분명 막판에 내게 질렸을 것이다. 나라는 사람은 원래 뭔가를 물어보는 걸 어려워하는 사람이었는데, 이 때 연습을 많이 해서인지 점점 묻는 것이 무섭지 않게 되었다. 모르는 채로 발 동동거리는 것보다 조금 어려워도 얼른 물어봐서 해결하는 게 낫다.
그렇게 다음 학기에는 브르노의 마사릭대학교에 정부초청장학생으로 가게 되었다. 그 결과가 나온 것이 5월이었고, 나는 적어도 9월 말에는 브르노로 가야 했다. 문제는 5월은 체코가 코로나 때문에 국가 비상사태 명령을 내린 상태였다. 정부에서 환자 증가세를 컨트롤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식당이나 공공시설은 다 문을 닫았었다. 6월, 여름이 되니 그나마 환자 수가 줄어들어서 마스크 규제를 풀었다. 환자가 감소한 거지 없어진 건 아니었는데, 정서가 다르다고 할지, 체코인들은 프라하의 카렐 교 위에 500m의대형 식탁을 올리고 식사하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물론 마스크 없이.
6월에 무사히 어학당에서의 수료 시험을 마쳤다. 그 수료증을 얻기 위해 프라하에 남았었던 것이었다. 중간에 돌아가면 수료증을 못 얻기 때문에! 혼자 남았으면 좀 무서웠을 법도 한데, 당시 함께 남은 같은 과 학생들이 있었기에 나도 남을 수 있었던 것 같다. 함께 간 사람들은 다들 위생에 철저히 신경써서인지 아무도 코로나에 걸리지 않고(혹은 걸렸어도 증상 없이!)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6월 말에 한국에 돌아가서 2주 자가격리를 했다. 자가격리를 하면서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힘들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혼자만의 시간은 귀중한 것이었기에. 혼자 방 안에 있는 동안 소설 구상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고 다시 체코로 떠날지 최종 결정해야 할 때가 왔다. 9월 초까지도 계속 고민했다. 왜냐하면 8월부터 체코에서 환자가 다시 증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체코의 네이버격인 세즈남(Seznam)이라는 사이트가 있는데, 그것의 메인 페이지에서 환자 통계를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떠나기 직전에는 이미 역대 최고기록을 찍고 있었다. 가서 코로나에 걸리면 내가 얼마나 아플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더 가지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고, 주변의 조언도 종합하여 결국 다시 인천공항으로 갔다. 다시 체코로 떠난 때는 9월 말이었다. 이번에는 수도 프라하가 아닌 두 번째로 큰 도시이자 오랜 역사를 가진 브르노였다. 아직 나는 체코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