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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투티 Jan 03. 2024

체코에서 1년 유학하기 [3]

불행은 외부로부터, 대처는 내부로부터




지난 편 < 체코에서 1년 유학하기 [2] >에서는 코로나 시국 때문에 체코 유학을 고민하다가, 결국 떠나기로 결심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번 편은 체코의 브르노라는 도시에서 유학하면서 어떤 개고생경험을 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다시 체코 프라하공항에 도착했다. 위탁 수하물 23kg짜리 두 개와 10kg짜리 하나, 그리고 배낭을 맨 나는 공항 밖으로 나왔을 때 물리적으로 혼자가 되었음을 실감했다. 스물한 살의 나는 변하고 싶었다. 긴장이 느껴지는 한편 마음 속에는 무언가 타오르고 있어서, 이걸 해내면 다음에는 또 어떤 성장이 기다리고 있을까, 하며 기대했다. 체코답게 날은 우중충하고 추적추적 비가 오고 있었다. 너무 많지 않은 귀찮은 정도의 비였다. 프라하에서 기차로 두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브르노로 이동했다. 바로 기숙사로 향했다. 무거운 짐들 때문에 몸은 완전히 피곤한 상태였다. 내가 미리 신청한 기숙사 앞에 도착해서 약간 머뭇거리다가, 일 층의 리셉션으로 갔다. 여기서부터 영어로 말하기의 실전이었다. 체코어는 최후의 소통수단



무사히 방 키를 받고 짐을 대충 풀었다. 와이파이 연결을 하고 부모님에게 연락했다. 긴장이 확 풀렸다. 방의 가구는 옷장, 침대, 책상으로 간단했다. 앞으로 어떤 경험을 하게 될까, 침대에 걸터 앉아서 생각했다. 까무룩 잠이 들고, 며칠 후 바로 옆 방의 데기를 시작으로 별별 인간들을 만났다.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데기, 비키, 앨리슨, 오마르, 시몬, 베로니카, 라라, 미할... 이 정도가 내 브르노 생활에서 맺었던 인간관계였다. 그저 스쳐간 사람까지 합하자면 더 있지만, 그들의 이름은 기억하지 못한다. 썰을 풀 수 있다면 내가 대화를 나눴던 상대들에게 대해 나중에 차차 풀어보도록 하겠다.



지금은 먼저 말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보통 유학을 했다고 하면 여행하고, 사람들과 만나고, 문화를 체험하는 등의 경험을 기대한다. 그러나 나는 사실 혼자가 되기 위해 유학을 간 것에 가까웠다. 더불어 코로나 시국의 유학 경험은 결코 유쾌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여러분에게 내 경험을 공유하려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위기 상황에서 내가 대처한 방법은 분명 마이너한 방법이었고, 마이너하기 때문에 누군가에게는 생각의 전환이 될 수 있으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체코는 가을부터 우중충한 날이 늘어서 우울감을 느끼기 쉽다. 하반기의 체코는 처음이었기에 낯설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날씨 때문에 힘들지는 않았다. 힘든 건 기숙사 방을 다섯 번 바꾼 일이었다. 첫 번째는 체코의 코로나 상황이 너무 심해져서 처음 신청한 기숙사에서 독방으로 옮겨달라고 부탁해서 독방으로 이동했다. 거기서 한 달쯤 지냈을 시점에 국가 비상사태에 따른 기숙사 방침 때문에 내 기숙사가 코로나 걸린 학생들을 격리하는 건물이 되어 통으로 비워야 했다. 내가 기숙사 계약할 때 그렇게 강제로 옮겨야 한다는 조항이 있었다고 한다.


외국인 학생으로서 어쩌겠나. 일단 해당 국가의 법은 잘 지키는 게 낫다. 그렇게 하라는 대로, 강제로 타 기숙사에 배정되었는데, 웃기게도 삼인실이었다. 코로나에 걸리지 말라는건지 걸리라는 건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이 때는 코로나 상황이 정말 심각했다. 날씨가 추워지면 바이러스가 더 잘 퍼졌다. 당시 유럽권은 특히 심각했다. 체코가 국경을 닫으려 하자 학생들이 학업을 포기하고 집으로 많이 돌아갔다. 나는 미친 듯이 고민하다가 결국 남기로 결정했다. 



다른 학생 두 명과 함께 이삼주 정도 살았다. 코로나 때문에 걱정되니 독방으로 옮겨줄 수 있냐고 학교 매니저에게 물으니 두세 달 정도 살 수 있는 방을 주었다. 그제서야 조금 편하게 사나 싶었는데, 가자마자 내 호실의 수직 라인에 있는 방을 관통하는 변기 파이프가 막혀서 이 주동안 화장실을 다른 층에 있는 것을 썼다. 파이프 문제가 해결되자 방 전등이 나가서 교체했다. 전등 안에 있는 죽 벌레들을 기사는 내가 먹은 접시가 쌓여 있는 싱크대에 버렸다. 체코인들의 위생 개념이 의심되었다. 그 밖에는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며 즐겁게 살려고 노력했다.



새 학기가 시작하고 다시 방을 옮겨야 했다. 코로나 때문에 기숙사를 강제로 옮긴 나를 약간 봐 주셔서 계속 해당 기숙사 건물에 머물게는 해 주셨다. 그러나 다른 학생들에게 우선순위가 주어지기 때문에 방을 반지하로 옮기게 되었다. 반지하에도 학생이 쓸 방을 만들었다는 게 신기했다. 먼저 쓰던 학생이 냉장고 관리를 안 한 건지 썩은 냄새가 났었다. 다 닦고 깨끗하게 만들어 썼다. 부엌의 가구들이 물에 젖고 제대로 말려지지 않아 곰팡이 냄새가 났다.



거기서 두 달을 살았다. 그 때는 좀 우울해졌다. 햇빛과 바깥 풍경을 많이 못 보면 우울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시 매니저와 이메일로 연락해 혹시 학생들이 나가고 남는 방이 있냐고 물었다. 가장 높은 층인 육 층에 방이 생겼다고 연락이 와 다시 짐을 싸고 이동했다. 한국 집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머문 마지막 방이었다.



오른쪽 방사는 히피 체코인이 밤에 기타를 연주하고 친구들을 불러서 노래를 부르며 파티했다. 오후 10시 이후부터 다음날 오전 5시까지는 나이트타임이라고 해서, 기숙사 안에서 조용히 해야 한다는 규칙이 있었다. 또한 당시는 계속 비상사태여서, 정부 명령으로 여럿이서 모이면 안된다는 규칙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코로나에 걸렸다 나았기 때문에 상관이 없으며, 친구들도 걸린 적 있으니 괜찮다고 말했다. 나는 몇 번이나 밤 10시 이후에는 조용히 해달라고 부탁했다. 세 번 이야기하고 나서야 조금 조용해졌다. 조금 조용해졌다는 것은 빈도가 줄었다는 거지 아예 안 했다는 게 아니다. 그렇게 되기까지 한 달은 걸렸다. 



왼쪽 방에는  머리가 이상하다는 슬로바키아인인지 체코인인지가 살고 있었다. 진짜 이상한지는 확인하지 못했는데, 같은 층에서 친해진 친구로부터 소문을 여럿 들었다. 공용 베란다에 담배를 피는 사람이 있는데 그 베란다 문을 잠가 버린다던지, 혼자 중얼중얼거린다던지, 주먹으로 복도 벽을 친다던지. 운이 좋게도 거기서 지내는 삼 개월동안 한 번도 안 마주쳤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옆방이라 소리가 들린다는 것이었다. 주말 아침마다 낯뜨거운 소리를 들었다. 무엇보다도 귀중한 주말 늦잠을 방해받은 게 스트레스였다.



이 일련의 기숙사 사건을 통해 하나를 제대로 배웠다. 내가 딱히 뭘 하지 않았어도 역경과 스트레스는 외부에서 끊임없이 들어온다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나는 계속 을 쓰고 있었다. 해야겠다고 생각한 게 있어서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아니었으면 진작 돌아왔다.



기숙사에서 겪은 일들을 이야기하고 나니 이 내용이 어쩌면 '불행 전시'가 될지도 모른다는 경각심이 들었다. 글쎄, 나는 독자 여러분이 내 이야기를 읽고 나를 불쌍히 여겨 주기를 바라는 게 아니다. 불행은 외부로부터 언제든 생길 수 있고, 내가 집중해야 하는 것은 어떻게 대처하느냐다. 그래서 다음 편은 첫 장편소설을 브르노에서 어떻게 쓰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위와 같은 스트레스 상황을 이것으로 어떻게 버틸 수 있었는지에 관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많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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