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의 혁신과 창업정신이 필요
지난 8월 조선일보에 게재된 ‘MZ세대가 창업 1세대 기업가를 불러내다’라는 기사에서 정주영 회장의 “가봤어?”, “해봤어?” 일화를 언급한 내용을 보면서, 평소 생각해 오던 것을 정리해 보았다.
우선 단어의 의미부터 정리해 둘 필요가 있을 듯하다.
'써봤어?'는 무언가를 직접 사용하거나 경험해 본 적이 있는지 물을 때 쓰이며, 수동적이고 소비자의 입장을 나타낼 때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즉, 이미 존재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사용한 경험을 묻는 질문이다.
반면 '해봤어?'는 주도적이고 생산적인 행동을 강조하며, 직접 무언가를 시도하거나 만들어 본 적이 있는지 물을 때 사용된다. 이는 리더나 창조자의 입장을 반영하며,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태도를 내포한다.
변화가 빠르고, 신제품이나 신기술도 워낙 많이 쏟아지다 보니 써보는 것만 해도 벅차고 따라가기조차 힘들다. 거기다가 써보는 것 자체도 난도가 있어 써보는 것과 해보는 것의 차이를 느끼기 어려울 때도 많다.
예를 들면 생성형 AI Tool을 써보는 것과 동영상이나 이미지를 생성해 보는 것은 같은 의미일 수도 있지만, 생성형 AI Tool을 필요한 용도에 맞추어 선택해서 쓰는 것과 용도에 맞는 AI Tool이나 서비스를 개발하거나 만들어 보는 것은 전혀 다른 의미가 된다. 생성형 AI 시대로 접어들면서 이 두 단어의 의미를 새삼 곱씹어보게 된다.
써보는 것은 팔로워(follower)적 사고방식을 반영하며, 제품이나 서비스, 혹은 아이디어를 주도적으로 창출하기보다는, 이미 만들어진 것을 받아들여 사용해 본 경험을 묻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미 존재하는 것에 대한 평가와 피드백을 제공하는 역할이 강하다. 한창 고도성장기에 선진제품을 벤치마킹하고 따라잡기 위해서 ‘해봤어’보다 ‘써봤어’를 많이 사용했던 기억이 있디.
해보는 것은 무언가를 스스로 시도하고, 그 과정을 통해 새로운 결과를 만들어내는 능동적인 태도를 강조하는 것인데, 이때 핵심은 주체적으로 행동하고, 도전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창업 1세대들에게서 많이 보았던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내는 일화들이 이에 해당할 것이다.
이전에 적은 ‘생산자 마인드를 갖자’라는 글에서 언급한 내용이지만, 같은 사실이나 사물을 볼 때 주로 어떤 시각으로 보고 있는지? 앞으로는 어떤 시각으로 보는 습관을 들이면 좋을지에 대해 어쩌면 MZ세대에 던지고 싶었던 이야기이었을지도 모른다.
기술과 정보가 풍부하게 제공되는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주어진 것들을 쉽게 소비하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기에 요즈음은 소비자 중심의 마인드가 생산자 중심 마인드로 포장되기 쉬워져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거나, 더 나은 미래를 개척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도 있다. 진정한 혁신과 발전은 '해봤어?'라는 질문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주도적으로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시도를 통해 생산적인 결과를 이끌어내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고, 바로 창업 1세대가 보여준 리더의 마인드이며, 창조적인 마인드인 것이다.
이건희 회장은 신경영을 선언하면서 ‘자식과 마누라 빼고 다 바꾸라’고 일갈하여 큰 파장을 일으켰다. 당시 한국의 최대 재벌기업이, 가진 것도 많은 기업 오너가 어떻게 다 버리고 바꾸자는 발상이 나올 수 있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었지만, 버리고 바꾸려 함으로써 제2의 창업이라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전 세계가 2000년(뉴밀레니엄)을 계기로 디지털시대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일본은 NTT를 필두로 그동안 쌓아온 아날로그 자산을 버리지 못하고 디지털화를 지연시킴으로써 한국에 뒤처지는 계기가 되었다고, 현지에서 직접 목격한 나로서는 그렇게 판단하고 있다.
한국도 중국에 대해 일본과 같은 전철을 밟고 있을지도 모른다. 디지털자산이 많이 축적되어 네트워크화나 생성형 AI 전환에 주춤주춤 하는 사이 패러다임 변화로, 뒷다리 잡힐 것이 없는 중국이 달려 나가고 있는 것이다.
생성형 AI가 그렇고, 디지털금융, e-Commerce, 전자산업, 게임 산업, 자동차산업까지도 그렇게 되고 있는 것 아닌지 생각해 볼 문제다.
중국이 혁신처럼 보이지 않는 것은 바꾸고 버릴 것이 거의 없어서이다.
기존 도시를 재개발하는 것보다는 빈 땅에 신도시를 건설하는 것이 훨씬 쉽고 효율적이고, 경제적이기까지 하다는 것은 우리가 강남과 강북 개발을 통해 익히 경험했던 사실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직시하면 좋을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특히 젊은 사람들일수록 해외여행과 비즈니스를 하면서, 평소 영화나 드라마를 보거나 상품을 소비하고, 사회인프라를 사용하면서 소비자로 즐기는 것 이외에도, 더 좋게, 더 편리하게, 더 쉽게, 더 저렴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궁금증을 많이 가지는 것부터가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특별한 선견지명이 있거나 천재적인 능력이 있는 인재가 있으면 더 도움이 되겠지만, 특히 MZ를 포함한 젊은 세대들이 해외에서 경험한 더 좋은 상품과 서비스들을 비교하면서 기존의 자산들을 바꾸거나 버리고 새로 해보고 싶다는 분위기가 늘어날수록 혁신이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아날로그나 디지털 시대에도 승자 독식이나 3등까지는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인식은 있었지만, 최근의 생성형 AI 트렌드를 보면 1등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인식이 더 강해지고 있다. 어찌 보면 1등 이외에는 위기인 것이고 1위마저도 항상 불안하다. 그래픽 Chip 전문기업에 불과했던 엔비디아의 부상과 컴퓨터업계의 최 강자이던 인텔(Inte Insidel)의 위기를 보면서, 또한 비영리기업임에도 짧은 기간에 구글의 위상을 끌어내리고 있는 있는 OpenAI를 보면서 이러한 추세는 더 확실해지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창업 1세대가 「보유한 자산이 없고 잃을 것이 없어」 과감한 변신을 이룰 수 있었던 정주영 현대회장의 '해봤어?' 도전정신에 더해, 자산이 많이 쌓여 변신이 어려워진 지금은 제2 창업을 성공시킨 이건희 회장의 ‘자식과 마누라 빼고 다 바꿔라”라는 혁신의 의지와 신념이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 싶다.
‘해봤어?’가 '정주영 병'이란 말도 있다고는 한다. 정주영 특유의 모험주의, 군대식 조직 문화,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내려는 방식을 무리하게 따라 하다가 실패하는 모습을 빗댄 것이라 하는데, 여기에 더해 제2 창업을 성공시킨 이건희의 ‘버리기와 바꾸기’로 대변되는 혁신을 더하면서, 이제는 미국의 창의력에 의한 혁신 성장을 보면서, 버릴 것 없는 중국의 변신도 보면서 위기의식을 가지고 ‘제3의 혁신’을 성공시킬 변화를 만들어내야 할 시점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