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즈비언의 청소년 시절 커밍아웃 이야기 (동글씨 편)
< 원래 있던 브런치 글을 들고 왔습니다. 청소년기 글이 끝나면 현재 레즈비언이 겪는 고난과 역경에 대한 글이 올라옵니다. >
이야기의 시작을 어디서 어떻게 시작할까 제법 고민했다. 일단 말하자면, 나는 레즈비언이다. 연상의 여성을 5년 넘게 좋아했으며 올해 연애를 시작했다. 연애에 대한 이야기는 각설하고, 내가 어떻게 레즈비언이라고 청소년 시절 친구들에게 커밍아웃하였는지 서술해보도록 하겠다.
사람들은 다양하게 자신의 성정체성에 대해 생각하고 깨닫게 되는 듯 하다. 나는 비록 별거 없었지만 말이다. 사실 나는 그냥 별로 차별적인 생각이 없던 축에 속한다. 여자랑도 연애할 수 있는거지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나는 정말로 여성을 사랑하게되었고, 연애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2학년, 친한 친구에게 커밍아웃을 했을때 뼈테로(뼛속까지 헤테로)였던 친구가 약간의 배신감(?)을 느끼며 나한테 잔소리를 하다가-자신이 그런걸로 너를 멀리 할 줄 알았냐는 둥- 무례일지 몰라 고민되는데 혹시 궁금한걸 물어봐도 되겠느냐고 말했다. 그때 들은 질문이 정말 많았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뚜렷한 질문은 이것이다.
여자를 좋아한다는건 어떤 느낌이야?
그러게... 라고 처음에 대답했던 것 같다. 너무 막연한 질문이어서 어떻게 대답해야할지 머뭇거렸던 기억이 선연하다. 딱히 무례라곤 못느꼈었다. 진짜 궁금해서 몇 번을 머뭇거리다 물어본 것을 알기 때문에 아, 진짜 궁금해서 물어봤구나. 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어떻게 대답했었는지 기억은 안나는데 지금의 나라면 이렇게 대답했을 것 같다.
이성애자와 똑같이 그냥 사랑해서 연애할 뿐이야
뭐랄까, 친구는 잘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지만 얼추 알겠다는 표정이었다. 제대로 모르는 듯 했어도 나는 그정도면 됐다고 생각했다. 나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주는게 고마웠다. 혹자는 자신들과 다른 입장의 사람들이 이해를 위해 물어보면 저희를 이해하려고 하지 마세요! 하고 화를 내는 경우도 있는데 사견이지만 그렇게까지 화를 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해라는 단어의 탈을 쓰고 우리를 비난하는 이들은 비판받아야 마땅하나, 진정 이해하고자, 우리에게 상처주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자 하는 이들의 사랑은 비판받을 이유가 없다.
가볍게 시작한 앞부분을 읽고 독자인 당신이 이 글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나는 글을 잘 쓸 줄 모르는 한낱 20살 재수생에 불과하여 독자가 어떠한 생각을 하도록 의도하여 글을 쓴다거나 그런 걸 할 줄 모른다. 그저 당신이 흥미롭게 글을 읽어내려가고 있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정말 사랑하는 고등학교 친구 5명이 있다. 고독한 소다방-실제로는 나의 실명-이라고 고등학교 2학년때 만들어진 방인데 20살이 된 지금까지도 활발하게 굴러가고 있는 카톡방의 친구들이다. 그 친구들과는 제주도 여행도 다녀왔고, 아마 올해 겨울에 나의 재수가 끝나고 또 여행을 갈지도 모르겠다. 사실 정해진 건 없어서 무산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렇듯 내가 한껏 애정하는 이 친구들은 내가 여자친구가 있다는 것을 다 알고 있다. 커밍아웃을 하기 전 한꺼번에 이 5명에게 커밍아웃을 해볼까-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다만 그것은 이루어지지 못했는데, 첫번째로는 다같이 있는 곳에서 이야기 했을 때 분위기가 싸해지며 서로 시선을 교환하는 일이 생긴다면 혀를 깨물고 싶을 것 같았다.-그저 비유일 뿐이다.-
두번째로는 당시에 내가 잘 모르는 친구가 있었다. 잘 모른다는건 친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다. 단지, 내가 이 친구의 성향에 대해 완전히 알고 있는가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내가 내 성향을 말해도 멀어지지 않을 수 있을지 나는 자신이 없었다. 정말 아끼는 친구가 멀어지는 것은 그 누구도 원치 않을 것이다.
세번째로는 나의 삶 속에서 모든 사람이 커밍아웃에 긍정적이지 않았다. 중학교 때 내가 레즈비언이라는 소문이 나서 땀을 뻘뻘 흘리며 해명하고 다녔는데 욕하는 아이들이 많았던 기억이 있다. 다른 친구도 레즈비언이냐는 질문을 아예 직접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 친구가 응. 이라고 대답하자 X발.. 더러워 라고 말했던 친구도 있다. 정말로 다양한 불링을 당해보았고, 세상은 아직 많이 거칠기 때문에 나는 두려웠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5명의 친구들에게 각각 커밍아웃을 했다. 동글씨, 무민씨, 밥씨, 세아씨, 애옹씨에게 한 커밍아웃에 대해 말해보도록 하겠다.
동글씨
첫 서술은 동글씨이다. 우리 동글씨의 이름이 '동글'이라고 서술된 이유는 눈이 동글동글해서. 동글씨는 내가 이 5명 중 가장 먼저 마음에 들였던 사람이다. 나는 사람을 마음에 들이는게 꽤 오래 걸리는 편인데, 동글씨는 워낙 E성향이 강한 친구인지 아니면 나를 좋아해(ㅎ)준건지 정말 많은 연락을 했고 정말 많이 금방 친해졌었다. 그리고, 동글씨는 가장 먼저 커밍아웃을 든 친구이다.
이 글의 제목인 "동성애는 어떤 느낌이야?"라고 질문한 친구가 동글씨이다. 동글씨에게 커밍아웃했을 때 당시가 정말로 기억에 선연하다. 동글씨가 뒤돌아서 나를 보고 있었고, 우리는 필담과 속삭임 사이를 넘나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와중 연애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나는 고민하다가 동글씨에게 말했다.
"나 사실 여자 사귀는데"(필담)
동글씨는 앞서 말했듯 정말로 배신감을 느꼈었던 것 같다. 두고두고 나에게 배신감이 상당했다고 언급해오고 있다.-제법 웃기고 귀엽다.- 동글씨는 당시 배신감 때문에 "뭐??"라고 말했었고, 상당히 쫄았던 기억이 있다. 정말 고민하다가 말했어서 동글씨의 반응 하나하나를, 표정과 미세한 움직임 하나 마저 살펴보고 있었는데 들려오는 대답이 소리치듯 들려오는 "뭐??"라니. 나는 사실 속으로 좌절했었다. '망했네, 소문만 안났으면 좋겠다.' 라는 심정일 지경이었다. 그렇게 내가 땅굴을 수천 키로미터 파고 있을 때, 동글씨는 특유의 말투로 말했다. "아니아니, 어떻게 나한테 말 안할수가 있나 싶어서"
아, 그렇구나. 너는 나를 소중한 친구로 생각해서 그런 대답을 한 거였구나. 그때 조금 많이 안도했다. 솔직히 울 것 같았는데 스스로를 상여자로 자부하는 본인인지라 도저히 울 수가 없었다. 학교에서 우는 건 중학교 이후로 졸업하고 싶기도 했고.
동글씨와 그 이후로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눴다. 주로 동글씨가 물어보고 내가 대답하는 구조였는데, 동글씨는 뼛속까지 헤테로인 여성인지라 궁금한게 정말.. 정말 많았었다. 또 기억나는 질문은 이런게 있다.
"왜 네가 여자를 좋아한다고 생각하게 됐어?"
사실 이때 좀. 음. 동글씨가 어쩌면 퀴어 혐오자가 아닐까 생각했다. 질문의 의도에 대해 생각하느라 대답을 못하고 있을 때 동글씨는 또 다시 내게 말했다.-지금까지 내가 봐온 동글씨는 오해가 생기는 걸 사전에 차단하고 싶어한다.- "내가 그런 적이 없으니까 진짜 궁금해서"라고 덧붙인 동글씨는 내가 오해할까봐 안절부절하는 표정이었다. 그때의 우리가 아직도 정말 선연하다. 자꾸 선연하다는 단어를 쓰는 것 같은데 다른 좋은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이런.. 내 어휘력은 글을 쓰기 좋은 정도가 아닌가보다. 아무튼, 나는 다시금 대답했다.
"좋아하고 보니 여자였어"
나는 이 대답을 정말 많이 한다. 좋아하고 보니 여자였다, 라는 말. 근데 정말이다. 성별에 상관없이 좋아했고, 그러다보니 그 사람이 우연히 여자였을 뿐이다. 그리고 연애를 하다 보니 아, 나는 여자가 아니면 연애를 더이상 못할 것 같아.가 되었을 뿐이고. 그렇게 나는 레즈비언이 되었다.
동글씨는 그 이후로 나의 진정한 지지자가 되어주었다. 진실된 친구, 라는 말을 동글씨에게 처음 썼던 것 같다. 앞으로 나올 친구들에 대해 이런저런 단어로 정리하여 말할 예정인데, 동글씨는 이렇게 지칭하는게 좋을 것 같다. 5명 중 첫 커밍아웃의 대상자이자 처음으로 마음에 깊게 들였다는 친구, 정도로 말이다.
동글씨에 대해 서술해보니 너무 긴 분량을 쓴게 아닌가.. 싶어져서 다른 친구들은 따로 따로 편을 써볼까 싶어졌다. 그래서 이렇게 나누게 되었는데 친구들에 대한 글을 쓰는 만큼, 친구들에게 보여줄 예정인지라 반발이 일어날 수 있을 듯 하여 걱정이다. 부디 그들이 아무런 반발을 하지 않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중이다. 죽창만은 깎지 않기를.
이 시리즈는 나와 친구에 대한 서술이므로 나는 괜찮지만, 친구에 대한 비판은 받지 않을 예정이다. 봐주심에 매우 감사하며 부디 좋은 하루 되시길.